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버닝(Burning)

by 이소라



영화 <버닝>에서 종수(유아인)는 시종일관 진지하다. 소설가가 꿈이지만 현실은 지난하다.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는 종수에게 세상은 부조리할 뿐이다. 재미없고 의미도 없으며 쓸만한 이야깃거리도 없는(종수는 아직 소설로 쓸만한 주제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 장소. 땀에 전 회색 티셔츠에서 퀴퀴한 종수의 인생이 영사된다. 말수가 적고 표현이 서툰 종수는 같이 술 한잔 할 친구도 없는 것 같다. 진지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도 굳이 진지함을 유지하는 남자. 돈 많고 여유로운 남자 벤(스티븐 연)이 보기에 종수의 진지함은 약간 우스꽝스럽다. 이창동 감독의 지난 영화 <시>, <밀양>이 완벽히 문학적인 영화였듯 <버닝> 또한 숨겨진 메타포가 그득한 미스터리 문학이다. 나는 학교 영화관에서 혼자 이 영화를 관람했다. 새빨간 의자에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어둠을 밝히는 실내등이 켜졌을 때 오랜만에 아주 배 부른 느낌을 받았다.




2018년 5월 17일. 비 오는 날.

학교에서 <버닝>.



다이어리를 뒤적여 그 날의 짤막한 기록을 찾았다.

비가 제법 왔었다. 학교에 논문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어딘지 헛헛한 마음에 영화관을 찾았었다. 일 년 내내 매달렸던 논문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심사만이 남아있던 그 해 봄. 7월 중순쯤 출간하기로 돼 있었던 책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석사를 시작하고 앞만 보며 달려왔던 시간들이 끝나가는 중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결실을 맺어 기뻤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에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재가 되어 식어버린 느낌과 비슷했다. 달리는 동안에는 다른 의미를 찾을 이유가 없다. 결승점을 향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던 선수는 결승점에 들어오고 난 뒤, 약간 당황한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고 비틀거리면서 잠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212.jpg 그레이트 헝거 춤을 추는 해미



해미는 종수와 벤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레이트 헝거 춤을 춘다.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하늘 향해 두 손을 쳐들고. 붉은 석양이 해미의 하얀 몸을 뜨겁게 비춘다. 해미는 살아갈 이유를 찾아 헤매지만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혀 계속 추락하고 마는 작은 새를 닮았다. 그녀의 날개를 꺾는 것들은 도처에 있다. 종수는 해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하늘에 있는 신에게 자기를 봉헌하듯 진심을 다해 춤을 추는 해미에게 종수는 고작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어디서 그렇게 옷을 벗어. 창녀같이." 해미는 종수를 쳐다보지 않고 그를 떠난다. 이후 해미는 이 세계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다. 종수는 해미의 흔적을 찾아 헤매지만 그는 결코 해미를 찾을 수 없다.



나도 언제나 그레이트 헝거이고 싶었다. 당장 충족해야 할 욕망에 사로잡혀 매일을 살아가는 리틀 헝거가 되기는 싫었다.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글을 쓰고 원하는 일들을 이뤄가면서도 항상 무언가 비어있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점점 커져간다고 느꼈다. 한 때 나는 착각했었다. 얻으면 채워질 것이라고.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해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여자애였다. 그럼에도 갖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는다. 그녀는 알고 있다. 만에 하나 무언가 갖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은 채울 수 없는 허기 때문에 괴로워하리라는 걸. 벤과 그의 부유한 친구들은 그레이트 헝거 춤을 추는 해미를 따분하게 바라보며 비웃는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해미는 일단 배고픔을 달래줄 먹을 것부터 찾아야 하는 리틀 헝거일 뿐이다.



해미는 밝고 막무가내이며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녀는 외로운 영혼이다. 홀로 생의 의미를 갈구했지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고 끝내 그레이트 헝거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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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종수에게 '귤껍질 까기' 팬터마임을 보여준다.

상상 속 귤을 하나 집어 들고 조심스레 껍질을 깐 뒤 한 조각 한 조각 맛있게 먹는 것이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해미는 진짜 귤을 까먹는 것처럼 그 동작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종수에게 말한다.



간단한 거야.

여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그뿐이야.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해미는 이미 삶에는 거창한 의미 따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걸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살아가야 할 의미는 어쩌면 저 높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따분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상에 있는 것일지도. <버닝>은 '없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살아갈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말을 해미를 통해 내게 전달하고 있었다. 지난 5월, 도대체 뭘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괴로워했던 내게 <버닝>이 전한 메시지를 이제야 깨닫는다. 삶에 해답은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에 또 다시 한 발 한 발, 살아왔던 것임을. 그리고 나는 지금 이렇게 새로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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