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Romain Gary)

by 이소라



그는 테라스로 나와 다시 고독에 잠겼다.



페루 외딴 바닷가로 새들이 날아와 죽는다. 모래사장엔 이미 죽은 새들이 온기 없이 늘어져 있다. 새들은 죽을 때가 되면 이 곳을 찾는다. 그리고 모래 위로 낙하한다. 삶이 끝나는 곳, 죽음이 드디어 발길을 멈추는 곳. 이 곳에 한 남자가 살고 있다. 생의 모든 따뜻함, 애정, 친밀함이라곤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바닷가에서 그는 고독에 잠길 따름이다. 처음 로맹 가리(Romain Gary, 1914-1980)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었을 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스물 초반, 죽음보다는 반짝이는 생명의 물결 속에서 유영하고 있던 내게 그가 하는 말은 난해 할 뿐이었다. 왜 저 남자는 저기 살고 있으며, 뜬금없이 등장한 여자는 왜 남자를 묘한 분위기로 유혹하는 것이며, 자길 도와준 남자를 훌쩍 떠나버리는 걸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여자는 고독에 절어있는 저 남자 곁에 남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여자는 단지 자기를 속상하게 한 남편에게 심술을 부리느라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이 바닷가로 정처 없이 걸어왔던 것뿐이다. 새들마저 죽기 위해 날아드는 곳에 둥지를 튼 남자는 아마 스스로 세상을 버린 것이리라. 그는 어떤 부드러움도, 사랑도 잊은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여자는 남자의 식어있던 심장에 피가 돌게 했다. 남자는 아주 잠시였지만 기대했을지 모른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다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여자는 남편을 따라 바닷가를 떠나고, 남자는 또다시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야만 한다. 떠나기 직전 여자는 뒤를 돌아보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다. 남자가 서 있던 테라스는 비어 있다.



서른이 넘어 다시 읽은 로맹 가리의 글은 이십 대 초반의 감상과 결이 달랐다.

나는 테라스에 선 이 남자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로워지는 게 두려워 먼저 외로움 속으로 뛰어드는 것. 이제 다 포기했다 말하지만 내심 정말 포기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그런 마음. 기대가 일그러졌을 때의 그 절망감. 그리고 혼자서 또 다짐하는 것이다. 절대로, 다시는 기대하지 말자고. 인간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상처 받는 연약한 존재다. 나는 이제 강인한 눈매와 날카로운 콧대로 그려진 로맹 가리의 얼굴에서 옅은 하늘색 슬픔을 읽어낼 수 있다. 로맹 가리는 알베르 카뮈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가졌다. 남자다운 얼굴이지만 눈동자는 맑고 우수에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눈이 투영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감정을 속이지 못한다.



로맹 가리



로맹 가리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프랑스로 귀화했다.

어머니는 러시아의 무명 여배우였고, 그의 아버지는 유부남이었다. 로맹 가리는 평생 아버지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던 어머니 곁에서 그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하지만 어머니도 채워줄 수 없는 결핍이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다. 아버지 없는 소년, 로맹 가리는 어머니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평생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바라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고 행동했다. 로맹 가리는 프랑스 공군으로 세계 대전에 참전한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전쟁터로 떠난 뒤 몇 달 후 오랜 지병으로 사망한다. 죽기 전 250통에 달하는 편지를 미리 써 전쟁터에 있는 아들이 주기적으로 편지를 받아볼 수 있도록 주변에 부탁해둔 채. 어머니와 만날 날을 고대하며 집으로 돌아왔건만 남은 건 어머니의 빈자리뿐. 황망했을 그의 마음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로맹 가리는 프랑스 역사상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다.

그는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받는다. 프랑스 문학 평단은 상을 받은 이후부터 그의 글이 예전 같지 않다는 비평을 쏟아낸다. 로맹 가리는 그때도 어머니를 생각했으리라. 어머니였다면?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에밀 아자르(Emile Ajar)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74년 에밀 아자르가 발표한 <그로 칼랭>은 프랑스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그로 칼랭은 파리에 살고 있는 서른일곱 독신남 미셸이 기르는 비단뱀 이름이다. 미셸은 고독한 대도시에서 드디어 사랑을 쏟을 대상을 찾은 것이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젊은이의 이름 뒤에서 자유로워졌다. 사람들의 편견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더욱 재기 발랄해졌다. 그의 나이 예순의 일이었다. 다음 해 역시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로맹 가리는 프랑스 사회를 감쪽같이 속이고 다신 없을 영예를 얻었다.






살아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지만 그는 언제나 위태로웠다.

그에게는 자신을 단단하게 잡아줄 뿌리가 텅 비어있었다. 프랑스인이지만 그의 뿌리는 프랑스에 있지 않았다. 러시아 모스크바가 고향인 유태인. 프랑스어를 쓰고 프랑스인으로 살았지만 언제든 이방인이 될 수 있는 경계에 서 있었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아버지는 그의 곁에 없었다. 허상으로만 존재하는 인물. 무언가 있어야 할 자리가 공백일 때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로맹 가리 역시 그랬으리라. 본디 채워져 있어야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공백인 자리를 보며 그는 내내 불안하고 외로워했을 것이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얕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기운다. 그리고 끝내 뿌리째 쓰러지고 만다. 로맹 가리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공허함 앞에서 도망갈 방법까지는 어머니께 배우지 못했다.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 상을 받은 뒤 5년 후, 그는 권총으로 자살한다.

1980년 12월 2의 일이었다. 유서에는 자신이 에밀 아자르임을 밝히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새들은 죽을 때를 알고 페루로 날아간다. 로맹 가리도 자신이 떠날 때를 스스로 정하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끝났다. 빅서 해안은 텅 비어 있고, 나는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

이따금 제비 갈매들이 너무도 가까이 내려와 앉아 나는 숨을 죽여야만 했다.

내 오랜 욕망이 깨어나 내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그러면 새들이 내 얼굴 위에 내려앉고, 내 목과 품 속으로 파고들어 나를 온통 뒤덮을 텐데.

마흔네 살에, 나는 아직도 어떤 본질적인 애정을 꿈꾸는 것이다.




그가 쓴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은 이렇게 시작한다.

중년의 나이에도 순진무구한 애정을 갈구하는 남자. 영원한 이방인. 세계의 끝, 페루의 바닷가에는 한 때 살아있었던 것들이 천천히 풍화하는 중이다. 그곳에 서 있던 로맹 가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곳으로 갔을까. 바다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이전 05화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