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의 드넓은 파랑, 시리도록 차가운 바다의 파랑, 청결하고 시원한 느낌의 파랑. 청량감이 느껴지는 파랑이라는 색은 분명 차가움에 가깝다. 그런데 이 영화는 파란색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색이라고 말한다. 색채를 보고 누구나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순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걸 때로 너무 중요시할 때가 있다. 파란색이라면, 차가운 느낌 아니야? 파랑보다는 빨강이 따뜻한 느낌인데? 이 영화는, 이야기를 시작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각을 단숨에 비틀어 버린다.
파란색은 따뜻하다(Le bleu est une couleur chaude).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통통한 입술, 살짝 보이는 토끼 같은 앞니가 매력적인 평범한 여고생이다. 헝클어진 머리, 아무렇게나 걸친 점퍼. 별생각 없어 보이는 학생이지만 그녀는 무엇에든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 문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사랑에 빠지면 무언가가 가슴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을까, 채워지는 것 같을까? 아델은 이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다. 아직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그녀 앞에 온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이 나타난다.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파란 머리의 대학생, 엠마(레아 세이두). 알 수 없이 복잡하고 요동치는 감정에 아델은,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굳어버린다. 그런 아델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이내 스쳐 지나가버리는 무심한 표정의 엠마. 아델은 자신의 방을 찾아오는 엠마를 매일 밤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에 빠져버린 미지의 대상이 파란 머리의 여자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한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는 방식으로.
특히 아델이 엠마를 향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영화 <캐롤>에서 테레즈(루니 마라)가 캐롤(케이트 블란쳇)에게 욕망을 느끼는 장면과 겹쳐진다. 아델과 테레즈는 엠마와 캐롤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여자를 사랑하는 줄도 몰랐던 백지상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녀들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짧은 스침에 온 몸의 감각이 활짝 피어나는 경험을 한 뒤 비로소 알게 된다. 상상도 하지 않았던 종류의 사랑, 그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책의 첫 장이 이제 막 넘어가기 시작했음을. 왜 나는 그녀들의 사랑이 아름답고도 비극적이라 느꼈던 걸까? 세상의 통념에 비켜나있는 사랑이기 때문은 아니다. 사랑의 순간은 반드시 지나간다. 지나가기에 아름답다. 지나가버리기에 슬프다. 모든 사랑은 아름답고 그래서 슬프다.
차갑고 시린 색깔의 파란 머리, 파란 눈동자의 엠마.
엠마를 만나기 전, 아델에게 파란색이 그저 차가운 색에 불과했다면 이제 그 색깔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감미로운 색이 되었다.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파랑이 화면 곳곳을 채운다. 나도 어느새 아델의 마음을 따라가고 있었다. "파란색은 따뜻하다. 보송보송하고 달달함 솜사탕처럼 부드럽다." 아델은 친구들의 비난과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엠마를 뜨겁게 사랑한다. 이미 엠마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자유로운 연애를 해 온 것과는 달리 아델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아델의 사랑은 더욱 순수하다.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단배처럼 위태롭고 어딘가 불안하기도 하다. 아직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도 한다. 아델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뒤 엠마는 아델을 떠난다. 엠마가 없는 아델의 삶은 모든 빛이 꺼져버린 텅 빈 공원처럼 쓸쓸하고 적막하다.
아델은 여전히 엠마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의 빈자리는 영영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사랑에 실패한 뒤 내려다본 우리의 그림자는 사랑을 시작하기 전보다 반 정도 작아져있다. 사랑이 깊어갈수록 연인은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간다. 사랑이 끝난 뒤, 그 사람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자리만을 남겨둔 채 그곳을 떠나버린다. 다시 원래 나였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눈물이 필요한지. 야위어버린 그림자를 바라보며 우리는 외로움에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델을 떠난 엠마는 잘 지내고 있다. 엠마의 전시회 소식을 듣고 아델은 그곳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카메라는 정성 들여 몸을 씻는 아델을 오래도록 비춘다. 그녀는 다시 희망을 갖는다. 커다란 거울 앞에서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아델은 파란 물감을 그대로 들이부은 듯한 파란색 원피스를 골랐다.
아델의 희망이 무참히 부서지리라는 건 자명하다. 그녀가 파란 원피스를 골랐을 때부터. 엠마와 사랑했던 시절, 아델에게 소중했던 파랑은 이제 유효기간이 지난 화장품처럼 빛이 바래 버렸건만. 엠마는 이미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고 그녀와 다시 사랑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아델은 황망히 전시회를 빠져나온다. 아델은 비틀거리며 걷는다. 세상에서 가장 시린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저 멀리, 저 멀리.
사랑에 빠지면 무언가가 가슴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을까, 채워지는 것 같을까. 문학 선생님이 지금 다시 아델에게 묻는다면, 아델은 뭐라고 대답할까? 그녀는 아마 둘 다,라고 말하지 않을까. 아델은 엠마를 만나 가슴이 부풀어 터질 만큼 가득 채워졌다가, 자기 안의 모든 것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경험을 했다. 문학 선생님의 질문 속에는 이미 그 해답이 담겨있다. 사랑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양면적인 것이다. 사랑은 우리를 외로움으로부터 구원하지만, 전에는 알지 못했던 외로움의 심연으로 우리를 잔인하게 밀어 넣기도 한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원제는 <아델의 삶(La vie d'Adèle)>.
삶은 사랑이고, 사랑은 곧 삶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아델의 사랑>이었어도 결국엔 같은 내용의 영화였을 것이다. 시인 로버트 블라이(Rober Bly)는 <사랑에 관한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는 풀을 사랑하게 된다/그리고 헛간도, 가로등도/그리고 밤새 인적 끊긴 작은 중앙로들도. 사랑은 이렇게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파랑이 따뜻하게 느껴진대도 어쩌겠는가. 그게 사랑인걸. 아델의 첫사랑은 끝났지만, 그녀에게 파랑은 여전히 가장 따뜻한 색일 테다. 가슴에 새겨진 따뜻함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겠지, 평생. 그리고 시리고도 따뜻한 그 기억은 삶의 곳곳에서 그녀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