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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un 15. 2023

외롭지만 슬프지 않아

에드워드 호퍼 <주유소>

<소소한 갤러리>


첫번째 그림

에드워드 호퍼 <주유소>





이런 곳에 사람이 살까, 하는 곳에도 집이 있고 슈퍼가 있고 학교가 있다. 

어떤 차도 갑자기 기름이 부족할 것 같지 않은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주유소를 본 적 있을 것이다. 기름 넣으러 오는 차가 별로 없어, 주유소 아저씨도 누렁이도 지루한 표정으로 도로만 바라보고 있는 그런 주유소.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가 그린 주유소도 딱 그렇다. 깊은 숲을 앞둔 곳에 고립된 채 홀로 불을 밝힌 곳. 호퍼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곳의 쓸쓸함과 고독감을 예민하게 포착했다. 도로변 식당, 버스정류장, 외곽의 모텔. 그래도 그런 곳엔 적어도 하루 혹은 몇 시간은 머무르지만 주유소는? 기름만 넣으면 곧장 떠날 곳이 된다. 


에드워드 호퍼, <주유소>, 1940, 캔버스에 유채, 66.7*102.2cm, 뉴욕 현대미술관



호퍼는 20세기 초 뉴욕에서 활동한 애쉬킨 화파(Ashcan school)의 멤버였다. 이들은 도시인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린 화가들로 도시생활의 어두운 면 까지도 가감 없이 표현했다. 호퍼가 평생 두 눈으로 좇은 것도 바로 그런 장면들이었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 속, 고독함에 절어 있는 개인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호퍼의 그림이 현대인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는 그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얻기 때문 아닐까. 외로운 사람의 마음은 외로운 사람이 더 잘 안다는 그런 비논리적인 근거를 굳이 가져와본다. 여기 외로운 나, 저기 외로운 너, 우리 둘은 어쩌면 서로에게 다른 그 무엇보다도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

 


검정 넥타이에, 정장 조끼까지 걸친 주유소의 남자는 하루 종일 뭘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언뜻 보이는 옆모습은 무표정하고 피곤해보인다. 저 멀리서부터 차차 어두워지는 숲 속에서 주유소의 레몬색 불빛은 밤새 홀로 일렁일 것이다. 차를 몰고 우거진 숲 속을 달리던 누군가는 기름이 그리 부족하지 않은데도 일부러 이 주유소에 차를 세울지도 모른다. 뿌연 안개와 함께 곧 짙은 어둠이 덮쳐 올 밤길을 이제 한참 더 달려야 하니까. 새벽빛이 밝아올때까지 외로운 여정은 계속될 테니까. 사람의 온기가 옅게나마 느껴지는 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야 그나마 기운을 보충할 수 있겠지. 깔끔한 옷차림을 한 주유소 아저씨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얻는 누군가가 있었을 터다. . 



20세기 초 뉴욕은 상상 이상으로 활기차고 시끄럽고 분주한 도시였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호퍼의 마음이 향한 하나의 컷은 어둔 배경 속에 골똘히 서 있는 어느 여자이고 남자였다. 그는 그들을 섬세하게 화폭에 담았다. 호퍼는 내향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따지자면 내면의 소리에 민감한 사람. 호퍼의 그림은 당시 뉴욕을 현실적으로 묘사했지만 관조적이거나 차갑지 않다. 내면으로 고요히 침잠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진실함이 그림 속에 따뜻한 온기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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