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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Aug 29. 2017

삶이 지닌 아름다움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어제도 나는 살아있었고  오늘도 살아있기에

내일도, 5년 뒤, 10년 뒤에도 당연히 살아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5년 후에 뭘 하고 있을까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5년 후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건강할 수도 있다.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 중에서-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는 36세의 나이에 암이 자신의 폐를 온통 뒤덮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1년 남겨 놓은 시점이었다. 칼라니티는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먼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왔다. 레지던트를 마치고 20년은 의사이자 과학자로, 그 후 20년은 작가로 살고자 했다. 그런데 불현듯 닥쳐온 죽음에 그는 자신의 5년 후도 감히 예상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칼라니티는 결국 암에 걸린 지 2년 뒤 세상을 떠난다. 은퇴 후 쓰려던 글을 당장 쓰기 시작했지만 책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죽음은 그를 찾아왔다. 그래도 책은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갑자기 뚝 끊겨버린 그의 마지막 문장에 가슴이 저며왔다. 그가 마무리하지 못한 이야기는 아내가 대신 이어간다.





클림트, <죽음과 삶>, 1908-1916.


누구에게도 삶은 영원하지 않고 그 끝은 반드시 다가온다.

황금빛의 에로틱한 그림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e Klimt, 1862-1918)도 생과 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을 깊이 느꼈다. 10만 명이 사망한 시칠리아 대지진, 약 1500명이 사망한 타이타닉호의 침몰. 클림트가 <죽음과 삶>을 그리던 당시 발생한 사건들은 삶의 유한함과 삶 뒤에 종이 한 장 차이로 붙어 있는 죽음에 대해 인식하게 했을 것이다.



1862년 오스트리아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난 클림트는 귀금속 세공사였던 아버지가 만든 수공예품들에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냈다. 열네 살이 되던 1876년,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해 다양한 장식 기법을 배웠고 이후 빈 역사박물관의 장식을 맡아 유명세를 얻는다. 이때 그의 나이 열여덟이었다. 타고난 예술적 감각으로 단번에 예술계 정상에 올라선 클림트. 화려하고 세밀하며 에로틱한 그의 그림들은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갈고닦아 온 기반 위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클림트는 전통적인 미술을 거부하고 시대에 걸맞은 예술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렇게 그가 주축이 되어 1897년 결성한 것이 '빈 분리파( Vienna Secession)'였다. 전통과의 분리를 외쳤던 빈 분리파는 예술의 위계질서를 부정했고 예술의 자유를 노래했으며 본능적 삶을 탐구했다.



적나라한 에로티시즘으로 패륜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클림트의 그림은 우리를 달콤한 관능의 세계로 이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름답고 육감적인 여인들, 눈부신 색채의 꽃들과 생기 넘치는 황금빛의 향연. 그러나 그를 단지 황금빛의 화가, 에로틱한 화풍의 화가로만 기억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 클림트가 남긴 유화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화려하고 장식적인 그림들 속에서도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다. 남녀의 사랑, 나체의 여인, 풍만하게 넘쳐흐르는 빛 등 그림의 주제와 주된 색채의 이미지는 세속적이지만 클림트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속세를 초월한 삶과 숭고함이었다.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절정의 황금빛은 세속적 욕망의 극단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초탈한 경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숭고한 빛인 셈이다.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서 경이로운 신성함이 느껴지듯이 말이다.   



클림트가 말년에 그린 <죽음과 삶>에도 명상적인 분위기와 숭엄한 황금빛이 감돈다. 검은 십자가, 보랏빛과 푸른빛, 생기를 잃은 초록빛이 뒤섞인 음침한 옷을 입은 사신이 무언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밝고 생기 있는 기운이 똘똘 뭉쳐 있는 삶이라는 것. 두 눈을 감은 채 미소 짓고 있는 여인은 포동포동한 아기를 안았다. 다홍빛 볼의 아기는 우윳빛 피부의 소녀와 얼굴을 맞댄 채 꿈나라를 항해하고 있다. 근육질의 남자는 그 아래 고개 숙인 뽀얀 피부의 여인을 감쌌다. 생명의 덩어리 한가운데, 파란색 모자를 쓴 이는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움푹 파인 볼, 듬성듬성한 머리. 그에게는 죽음이 한발 더 가까워 보인다. 사신은 삶의 빈틈을 노리고 있지만 굳이 앙상한 손에 든 방망이를 휘두를 필요가 없다. 삶은 반드시 죽음이 될 테니까.



그럼에도 클림트는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가 일생동안 사랑했던 찬란하고 아름다운 인간들의 생이 죽음으로 영원히 끝나버린다면 이 세상은 암흑이 되고 말 것이다. 그는 삶 뒤에 죽음이 온다는 진리를 잊지 않았지만 그가 잊지 않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죽음 이후에는 또다시 삶이 온다는 진리. 우리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운다. 클림트가 붙인 그림의 제목을 다시 한번 보자. <삶과 죽음>이 아닌 <죽음과 삶>이다. 삶이 반드시 죽음이 되듯이 죽음 또한 반드시 삶이 된다고 그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클림트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1918년 2월 6일의 추운 겨울, 세상을 떠난다. <죽음과 삶>을 완성한 지 2년 만이었다. 클림트 평생의 연인 에밀리 플뢰게가 임종을 지켰다. 자신에 대한 글을 일체 남기지 않은 클림트였지만 다행히 짤막한 글 하나가 우리에게 전해 온다.



나에 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물론 화가로서의 나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뿐이므로)

내 작품을 보고 찾아내면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클림트는 죽었지만 그의 아름다운 그림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눈 속에, 마음속에 살아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 (Leopold Museum)


구스타프 클림트의 <죽음과 삶>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레오폴드 미술관은 오스트리아 빈의 무제움스크바르티어(MuseumsQuartier)에 위치하고 있어요.

무제움스크바르티어는 빈의 노이바우 지구에 형성된 미술관 지역을 말하는데요.

다양한 양식으로 지어진 미술관들이 모여 있는 문화 예술 공간이랍니다.


레오폴드 미술관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는 물론 에곤 실레의 작품들도 볼 수 있어요.

이 곳의 에곤 실레 컬렉션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클림트는 자기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자신의 작품을 보라고 했었죠.

클림트의 인생과 예술이 궁금하시다면, 언젠가 이 곳에 꼭 한 번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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