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카셋 <오페라 극장에서>
직장 생활에 찌든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작년 겨울, 따뜻한 정종을 함께 마신 이후로 처음.
거의 반년 만이었다. 많은 것이 변한 것 같기도,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기간.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 할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연락도 잘 주고받지 못했다. 신경을 빼앗는 일들은 언제나 그렇듯 꾸준히 리필되니까. 한편으론 그녀를 만나지 않아도 즐거운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 그녀 또한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네이비색 코트와 아이보리색 머플러로 중무장했던 반년 전 친구의 모습은 어느새 옅은 라벤더색 린넨 원피스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그늘만 찾아 바삐 걸으며 시원한 카페로 들어섰다.
가벼운 유리 재질의 테이블. 얼음이 가득한 카페라테 두 잔과 쫀득한 무화과 브라우니를 앞에 두고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우리는 한 살의 나이를 더 먹었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조금 더 다양해졌으며 그 불만에도 개의치 않을 만큼의 쿨함을 조금 더 장착했다. 어느덧 배가 고파왔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냉모밀과 스시. 녹다 만 얼음이 바닥에 가라앉은 커피잔을 뒤로한 채 카페의 테이블에서 일어나기 전,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남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살자.
내 인생, 한 번 돌아가면 다시는 안 온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겁이 나서 포기한 수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친구와 나는 이렇게 선언한 것이다. 우리 나이에, 여자가, 지금 이 상황에, 등등. 그토록 다양한 제한 조건들은 대체 누가 만든 거니? 우리는 약간 억울한 마음에 누군가에게라도 그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잘 알고 있다. 그런 쓸데없는 제재 따위 가볍게 무시하면 될 일이란 걸.
연노랑 바탕에 빨간 무늬가 새겨진 부채를 손에 쥔 한 여인이 조그만 망원경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떠들썩함, 서로를 알아보고 나누는 인사 소리, 곧 시작될 무대에 대한 기대감까지. 그 열기들은 극장 천장에까지 닿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활기찬 분위기에도 여인은 아랑곳 않는다. 망원경을 쥔 오른손의 손목에 푸른 핏줄이 불거져 보일만큼 그녀는 집중하고 있다. 앙다문 입, 부드러운 콧날,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칼. 동그란 귓불에 은은하게 반짝이는 하얀 진주 귀걸이. 우리는 그림을 마주하자마자 이 아름다운 여자에게 시선을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라. 이 그림 속에는 무언가에 매우 집중한 '또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왼쪽 상단의 남자 또한 행여 놓칠세라 한 대상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발코니 밖으로 몸이 반쯤 튀어나와 아슬아슬할 정도다. 발코니 난간에 걸친 팔로 망원경을 꽉 쥔 채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남자는 우리가 그림을 보자마자 가장 처음 매혹당한 여인을 쳐다보고 있다. 그는 한마디로 그녀에게 꽂혔다. 그러나 여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저 정도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남자가 있다면 그 시선을 느낄 만도 한데. 아는지, 모르는지 여인은 조그만 망원경 너머의 대상에서 눈을 뗄 의향이 없다. 분명 그녀에겐 누가 자신을 쳐다보던 말던 상관 않는 도도함이 흘러나온다. 그래서일까. 페미니즘 미술사학자 그리젤다 폴록(Griselda Pollock)은 검은 옷의 이 여인이 남성 시선의 대상이 되지 않는 주체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오페라 극장에서(1879)>.
19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셋(Mary Cassatt, 1844-1926)의 작품이다. 미국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화가를 꿈꿨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강했던 시대, 인정받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카셋의 꿈은 이루기 힘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금지선 앞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보기로 결심한다. 고향인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가 구름같이 부푼 희망을 안고 모여드는 파리에도 '여성 예술가'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자유분방한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조차 여성은 홀로 거리를 걷거나 카페의 테라스에서 여유를 즐길 수 없었다. 프랑스 유일의 공적인 미술 교육기관인 에콜 데 보자르( 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할 수 없음은 당연했다.
카셋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루브르 미술관에 걸린 거장들의 작품을 따라 그리며 기초를 닦았고, 자기만의 화풍을 완성해나갔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걷던 그녀에게 동료가 생긴 것은 천운이 아니었을까.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 Gas,1834-1917)는 카셋을 인상파 그룹에 소개했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인상파 전시에 참여한 유일한 미국인 여성 화가가 된다. 카셋의 그림들은 매우 서정적이고 포근하다. 아기를 목욕시키는 엄마, 소중하게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 조그만 소파에 기대앉은 소녀 등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장면들이 화폭에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도시를 마음껏 활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제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 속의 빛을 중시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를 담아내고자 했던 인상주의의 목표는 어찌 보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남성 화가들의 전유물 아니었을까.
<오페라 극장에서>는 대다수 카셋의 작품들과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공적인 공간에서, 남성이 보내는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자발적인 행위를 하는 여인. 그러나 이러한 사실보다도 더 도발적인 가능성이 이 그림 속에 숨어 있다. 여인이 쥐고 있는 망원경의 각도가 힌트다. 그녀는 1층의 공연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리와 거의 일직선상의 어떤 곳을 주시하고 있다. 그곳에는 미지의 인물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짐작해볼 수는 있다. 그녀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저 왼쪽 상단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꽂힌 것' 아닐까. 그녀 마음에 쏙 드는 멋진 남성일 수도, 세련된 패션의 아름다운 여인일 수도 있다. 대체 이것이 왜 도발적이냐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 그것은 검은 상복이다. 여인은 상중(喪中)에 오페라 극장에 와서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녀가 잃은 사람이 남편이라면 이야기는 더 발칙해진다.
엄마와 아기, 가정적인 여자, 아늑한 공간들을 주로 그린 매우 여성적인 화풍의 화가로 알려져 있는 메리 카셋. 하지만 그녀가 진정 어떤 생각들을 지니고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녀가 남긴 <오페라 극장에서>로 짐작해보건대, 메리 카셋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거나 적어도 그런 욕망에 관대했던 여인 아니었을까.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카셋은 1994년, 프랑스의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을 받았다. 생을 마감한 지 80년 뒤의 일이었다.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은 미국 3대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시카고의 시카고 미술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함께 말이죠.
미국 독립 100주년인 1876년에 개관한 유서깊은 미술관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앞서 우리가 만나 보았던 존 싱어 사전트는 물론,
반 고흐, 클로드 모네, 폴 세잔 등 유명 작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답니다.
메리 카셋도 보스턴 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남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는 검은 드레스의 여인,
그 묘한 매력을 직접 마주했을 때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