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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Aug 22. 2017

불타는 초록빛 희망

반 고흐 <사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


주기적으로 우울함이 찾아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울함과 무기력함이다. 대개 한 달의 마지막 주쯤. 평소엔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것들도 마냥 부정적으로 보인다. 또 한 달이 지났네. 돌아보면 한 것은 없고 시간만 흘렀다. 나름 걷고는 있는데, 이게 정말 걷는 게 맞는지 올바른 방향이긴 한 건지 끝도 없는 의심이 가슴을 박차고 튀어 오른다. 매달 마지막 주쯤 찾아오는 이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를, 홀로 마주한다. 그래, 사람이 어떻게 늘 긍정적이고 밝을 수 있겠어? 이런 마음으로 그 시기를 견뎌 나간다. 



별다른 방법이 없더라. 

나를 자극시킬 무언가를 해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을 일부러 찾아서 보기도 하고. 그러나 한 번 내게 찾아온 그 검고 끈적한 기운들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이제야 좀 깨달았다.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릴 그 감정들을 먼저 없애버리려고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다는 걸. 그러나 평소에 하던 것들을 평소처럼 하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마음속 동굴에서 '다 싫다!'는 목소리가 메아리쳐도 지금껏 해왔던 것들을 묵묵히, 억지 부리듯이 해야 한다. 그러면 나를 덮었던 무기력함은 서서히 옅어지다 이내 내게서 완전히 떠난다. 마치 구름이 걷히며 파란 하늘이 조금씩 넓어져 가듯.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내 이야기가 아니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동생 테오(Theo van Gogh, 1857-1891)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대목이다. 고흐의 비극적인 삶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살아생전 그가 팔았던 그림은 딱 한 점. 평생 동생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던 비운의 화가. 그런 고흐에게 우울함과 무기력함은 한 달에도 수차례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고흐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붓을 놓지 않기 위해. 편지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래도 계속 싸워나가야 해.

때가 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1882년 1월 7~8일<고흐의 편지>, p.195.




고흐도 통렬히 깨달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Van Gogh, 두 여인과 사이프러스 나무, 1889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그로트 쥔더르트에서 태어났다. 동물과 꽃을 좋아했던 장난꾸러기 소년은 한 가지에 몰두하며 노력할 줄 아는 아이이기도 했다. 그의 끈기는 가톨릭이 지배적이었던 네덜란드 남부 지역에서 개신교 목사로 꿋꿋하게 활동했던 아버지의 성정을 물려받은 것이리라. 고흐는 네 살 터울의 남동생 테오와 함께 보낸 마을 교구 목사관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회상한다. "밀밭과 벌판과 소나무 숲이 배경이었던 그 시절". 그러나 아름다운 한 때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리고 우리들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괴로움, 외로움, 투쟁이 복병처럼 숨어 있는 덤불숲으로 돌연 들어서게 된다. 지금 우리가 고흐와 관련해 흔히 떠올리는 우울하고 어딘지 비정상적이며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가 갖게 된 성격일 것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둔 고흐는 16세에 화랑의 수습 직원이 되었지만 그 일은 천직이 아니었다. 23세가 되던 해 화랑을 그만둔 고흐는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늦은 감이 있었지만 신학 대학 입학시험을 공부하며 전도 활동에 매진한다. 신학이 그의 적성에 딱 맞았다면 지금 우리는 반 고흐를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고흐는 신학을 포기한 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880년 브뤼셀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진정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다니는 청춘의 시간들. 반 고흐의 이십 대도 그런 고민들로 점철된 날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정했을 때 그는 자신의 모든 걸 바쳐 그 길을 걸었다. 모든 걸 바쳐 자기 인생을 살아나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고흐는 동생 테오의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열정적으로 그림 공부에 매진했다. 전시회를 조직하기도 하고, 당대 이름 높았던 화가들인 고갱(Paul Gauguin, 1848-1903),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 등과 교류하며 자신의 화풍을 확립해 나갔다. 그에게는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그림 전시와 판매로 얻는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1888년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에 정착한 고흐는 그 꿈을 실현시키려 노력했고 '노란 집'이라 이름 붙인 공동체 화실을 꾸렸다. 고갱을 초대해 잠시 동거하기도 했지만 둘은 애초에 함께 살 수없는 사람들이었다. 고갱과의 다툼 때문에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른 사건은 유명하다. 이상이 높았고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고흐였지만 현실은 매번 빗나갔다. 공동체를 꿈꾸며 단장했던 노란 집에 그는 홀로 남았다.



그러나 고흐는 절망에 가득 찬 삶 속에서도 희망을 찾은 사람이었다. 

그의 그림 속 노랗게 불타는 해바라기는 바로 그런 희망을 상징한다. 끊임없이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처럼 그도 자기 인생에 언젠가 동그랗게 떠오를 노란 해를 찾아 헤맸다. 1889년 이후 고흐가 찾은 또 다른 희망의 상징은 사이프러스 나무였다. 고흐는 자신이 '사이프러스 나무에 푹 빠졌다'라고 테오에게 고백한다. "사이프러스는 이집트의 뾰족탑처럼 균형 잡힌 아름다운 나무야." 하늘을 향해 힘차게 치솟아 오른 사이프러스는 그에게 강한 생명력과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뾰족이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로 다정히 산책하는 두 여인, 나무 너머로 보이는 넓은 하늘과 나지막한 산, 아늑한 집, 싱싱하게 만발한 꽃들과 샛노란 들판. <사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는 고흐의 다른 어떤 그림보다 밝고 다정하다. 주변의 이해를 받지 못해 늘 외로웠던 그에게 그림 속 풍경은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1889년 9월 7일, 고흐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이 시기 고흐는 넓은 들판에 우뚝 선 초록 빛깔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리며 자기를 짓누르는 부정적인 마음과 맹렬히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일기를 쓴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은 1890년 7월 27일, 고흐는 들판으로 나가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고 이틀 후 사망했다. 고흐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한 이는 동생 테오뿐이었다. 형이 죽고 6개월이 지난 1890년 1월 25일, 테오도 세상을 떠난다. 두 형제의 시신은 나란히 묻혔다. 고흐가 테오에게 남긴 편지는 600여 통에 이른다. 고흐는 스무 살부터 죽을 때까지 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진정한 생각들, 감정들을 솔직히 내보일 사람은 동생뿐이었던 것이다. 편지 속에는 온갖 고통이 구석구석 도사리고 있는 인생의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는 자의 목소리가 빼곡하다.  


세상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불모지에서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길 바랐지만 고흐에게 주어진 삶은 가혹한 것이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입구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은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아마 굉장히 생소한 이름의 미술관일텐데요.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네덜란드 오테를로에 위치한 곳으로

데호헤 벨루에(De Hoge Veluwe) 국립공원 내에 있답니다.

크뢸러 뮐러라는 인물의 개인 컬렉션을 바탕으로 1938년에 개관했습니다.

소장품은 800여점에 이르며 그 중 고흐의 그림이 100점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고흐의 가슴 속에 회오리치던 희망이 키워낸 초록빛 사이프러스 나무.

언젠가 온 몸 가득히 그 생생한 기운을 채워보고 싶네요.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는 고흐의 유명하고 아름다운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도 만나 볼 수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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