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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Oct 31. 2019

인생의 고비(苦悲),고비(高飛),고비(GOBI)-몽골

몽골 - 고비사막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흔적마저 남기지 않고 사라지지만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흔적을 남기며 영원히 그때의 아픔을 상기시켜 준다. 육체뿐 아니라 삶의 생채기도 마찬가지이다.


장마도 아니었고 찌는듯한 무더위가 시작되지도 않았던 지극히 평범한 초여름의 날씨였던 듯하다.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그저 회사의 신규 프로젝트로 인해 하루 종일 회의실에 틀어박혀 있던 날이었다. 어떤 전조도 없이, 어떤 준비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 사건은 평범했던 일상과 무난했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예기치 못한 커다란 슬픔과 맞닥뜨려졌을 때의 그 고통에 견줄만큼 힘든 건, 나와 동일한 아니 그보다 더한 무게의 슬픔을 견뎌야 할 누군가에게 내 입으로 그 사실을 전달해야 할 때이다.


내가 나중에 묵게 될 줄은 몰랐던 몽골 울란바타르의 어느 방에서 하루를 정리하고 계셨을 부모님은 수화기 너머의 내 목소리로 그날을 맞으셨다. 이틀 후 부모님은 간신히 표를 구해서 날아오셨고 결국 어머니는 그날 이후 다시 그곳으로 가지 못하셨다.


그 사건은 우리 가족의 생활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생각까지도 모두 바꾸어 놓았고 그것은 마치 살얼음이 깨져오듯 내 마음의 다른 고민들까지도 연쇄작용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고비(苦悲)가 찾아왔다.




얼마간의 옷과, 얼마간의 물건과, 얼마간의 돈을 들고 어느 정도의 안정된 직장과, 어느 정도의 안정된 생활을 뒤로한 채 나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뚜렷한 목적지들도 정하지 않고,

명확한 목적도 세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비행기를 탔다.

타조가 커다란 몸뚱이는 놔두고 머리만 감추듯이


그때의 고비(苦悲)는 나를 비행기를 타고 높이 날게 만들어 주었고 그 고비(高飛)는 나에게 약간의 희망과, 약간의 목적과 더 많은 고민을 안겨 주었다.


잊을 수 없는 그날과 그때의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몽골이 떠올랐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고비(GOBI)사막이 떠올랐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고비사막에 왔다.


일반적인 사막이 주는 풍경과는 다른 풀밭과, 메마른 땅과, 갈라진 땅과, 모래언덕이 공존하는 거대한 고비사막 앞에 섰다. 사막의 모래언덕을 가기 위해 낙타를 탔다. 그런데 낙타에 고삐가 없었다. 내 의도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고삐가 있어야 하는데 고삐가 없다. 그저 가이드 꼬마가 인도하는 대로 끌려가야 하는 코뚜레만 있다.


문득 낙타 위의 내 모습이 지금의 인생과 같다고 느꼈다.




“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생의 고비(苦悲)가 아닐까 하고, 나는 오래전부터(라고는 해도 서른 살이 지난 후 부터이지만) 줄곧 생각해 왔다. 특별히 뭔가 실제로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또는 마흔 살을 맞이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미리미리 예측하고 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마흔 살이란 하나의 큰 전환점이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무엇인가를 뒤에 남겨 두고 가는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그런 정신적인 탈바꿈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좋든 싫든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시험해 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이란 앞으로만 나아가는 톱니바퀴라고 나는 막연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정신적인 탈바꿈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마흔 살이란 분수령을 넘음으로써, 다시 말해서 한 단계 더 나이를 먹음으로써, 그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그 나름대로 멋진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얻는 대신에 그때까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중에서 -




40이 되면 하루끼의 말처럼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인생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고삐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 낙타처럼 아직 인생의 고삐가 없이 끌려 오고 있었다.



고비(苦悲)를 겪고, 고비(高飛)를 하고, 고비(GOBI)에 왔건만 여전히 인생을 이끌어갈 고삐를 찾지 못했다.


마치 사막의 낙타처럼.





뒤에 혹 없는 낙타를 타게 되었다.







화장실과 사막은 멀수록 좋다(??)



사막의 발이 되어주는 러시아제 승합차 '푸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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