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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Dec 03. 2019

얼렁뚱땅 산티아고 순례길 03

아직 정신은 없지만 몸은 적응 중

셋째날.



'4인실을 혼자 쓴 덕분에 마음이 조금 편했다.' 라고 해서 아주 많이 달라진 건 없었다. 코를 크게 골게 될까 하는 부담이 없어진 것과 아침에 배낭을 다시 챙길 때 불을 켜고 할 수 있다는 정도? 침낭은 여전히 말면 말 수록 부풀어 올랐다. 이제 두 번째 경험이라고 포기는 빨라졌다.


옆방의 독일 형님들 깰세라 조심히 샤워를 하고 주인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딱히 아침을 굳이 먹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사람도 없고 시간도 되고 마음까지 편하니 먹어줬다. (광고 문구 같지만)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먹은 날과 안 먹은 날의 순례길 컨디션을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일반적인 3일 차 일정은 대부분의 순례자가 Pamplona를 목적지로 한다. 프랑스길을 시작하고 만나는 첫 번째 대도시이고 일반적인 둘째 날 숙박지인 Zubiri에서 20km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도시는 볼 것도 있고, 먹을 것도 많고, 잘 곳도 많다. 나는 이미 Zubiri에서 6km 이상을 지나서 출발하기 때문에 팜플로나에서 멈추기엔 너무 가깝고 아직 사람 많은 대도시에서 묵을 만큼 마음의 준비(?), 적응이 덜 되어 더 걷기로 했다.


확실히 대도시는 달랐다. 특히 주말을 시작하는 대도시는...  순례길 대부분이 대도시는 옛 시가지, 작은 마을은 그 중심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그 길에는 그곳의 대표 성당이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순례의 참 의미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팜플로나도 구 도심을 통과해야 했다. 정오로 향해가는 도시의 구 도심은 금요일 밤의 뜨거웠던 열기가 미세하게 남아 있고, 그 위로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다시 데우고 있었다.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는 작은 카페에 배낭을 놓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콜라와 크루아상을 주문하고, 브런치를 즐기는 현지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어기적 거리는 걸음으로 두 번째 콜라를 가져왔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오는 것부터 지금까지 유심히 지켜보던 부부가 말을 걸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거예요. 걸어서..'

'정말요? 얼마나 걸리는데요?'

'800km 정도니까 한 달 남짓 걸릴 거 같네요'

'오! 얼마나 걸었어요?'

'이제 3일째? 하하하'

'하하하'



여기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대도시는 관광객도 많고 인구도 많아서 더더욱 그런 것 같았다. 팜플로나를 빠져나올 때쯤부터 한 친구와 자꾸 마주쳤다. 흔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생각보다 작은 배낭을 멘 유럽 청년이랑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도시를 빠져나왔다.


계속 시골길을 걸을 때는 몰랐는데 도시를 지나와 보니 벌판 길이 좀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제 오늘 목적지를 정해야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팜플로나에서 11km 더 떨어진 Zariquierui로 결정했다. (뭐라고 읽을지도 모르는 숙소 두 개 있는 아주 작은 산골 마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마을 간의 거리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걷는 길의 고도이다. 경사가 가파르거나 높은 곳이 포함되면 일반적인 속도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도착 시간 계산에 참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에 만나게 되어 예상보다 늦어지게 되면 도착지를 가까운 곳으로 변경하면 되지만 오후 늦게 마지막 마을 부분에서 언덕을 만나게 되면 자칫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마을에 가려면 높은 언덕 하나를 넘어야 했다.)






오후 3시쯤에 도착했는데 마을에 숙소는 두 개 있는데 주인은 하나, 그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하나뿐인 아주 작은 마을이다. 양쪽 새끼발가락에 생긴 물집을 시술(?) 하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도 시간이 너무 남아 마을을 구경해도 5분이면 끝나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날 거기서 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뿐인 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순례객 메뉴를 시키고 합석을 한자리에서 크리스티앙과 인사를 했다. 둘째 날 쥬비리에서 같이 길을 헤맸던 파파 스머프 수염을 멋지게 기른 스웨덴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날 4인실은 오늘 계속 마주쳤던 잭, 토마스, 달리아와 함께 묵었고 크리스티앙은 다른 방이었다. 순례길 3일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날은 악몽을 심하게 꾸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얼마나 비명을 질렀던지 실제로 목이 아플 정도의 악몽이었다. 분명 잠꼬대를 아주 심하게 했으리란 게 느껴졌다. 젊은 3인방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넷째날.



미안한 마음에 빨리 자리를 비워주려고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겼다. 침낭은 이제 커버에 넣는 건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래도 여전히 어둡고 어수선한 곳에서 배낭을 다시 싸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소음을 방지하고자 배낭과 짐을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배낭을 다 챙기고 혹시 빠트린 것이 없나 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젊은 친구들이 벌써 다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사실 며칠 있어보니 일어나는 시간이나 출발하는 시간에 일종의 패턴을 볼 수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빨리 일어나고 빨리 출발했다. 젊은 친구들은 잠이 많기도 하고 걸음도 상대적으로 빠르다 보니 대체적으로 늦게 일어나고 늦게 출발했다. '이 친구들은 유럽 친구들인데 참 부지런하군' 하고 생각하는데 잭이 '언덕 위에서 일출 보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라고 말을 걸었다.


크리스티앙까지 합세해서 4명이 아마도 오늘 같이 가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 내가 일어나서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한 것이었다. 하루하루가 미지의 세계인데 이들은 그래도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듯했다. 아니 너무 백지상태인 내가 더 이상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들이 특별히 서두르고 일출을 보려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출을 보려는 그곳이 '용서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순례길의 시그니처 중 한 곳이었다. 좁은 산길을 서로 오손 도손 오르기 시작했다. 동이 터오는 여명의 벌판을 등 뒤로하고 숨을 헉헉거리며 도착한 언덕 위에는 옆방에서 주무신 나이 든 어르신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우리도 오늘의 첫 번째 휴식을 취하며 누군가는 간식을 먹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제 사두었던 사과를 한입 베어 먹으며 용서(?)를 생각해 보았다. 사실 이때는 누굴 용서하고 무얼 내려놓고 할 정신이 아직 없을 때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길을 걷기로 결정한 내면의 자아(?)와 고통을 참으며 걷고 있는 육체의 갈등이 조금 누그러져 있다는데 위안을 삼을 정도였다.



용서의 언덕을 넘고 첫 번째 마을까지 같이 걸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바에서 그 친구들은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나는 좀 더 걷기로 했다. 다들 20대의 젊고 건장한 유럽 친구들과 함께 걸으니 내가 불리(?) 했다. 그래서 그들보다 덜 쉬는 방법을 택했다. 어제저녁 먹으면서 오늘의 일정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 게 있어서 특별한 일 없으면 그 마을에서 만날 거라 생각했다. 그곳은 26km 지점의 마을이었는데 도착해 보니 너무 작은 마을이었다.


계획을 바꿨다. 4km 이후에 적당한 마을이 있고 8km 이후에는 도시라고 불러도 될 법한 곳이 있었다. 2시간 더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막바지에 한 시간은 초반의 두 시간에 맘먹는 체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때부터 몸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4km만 걸은 후 나온 마을에서 숙소를 찾았다. 화장실은 공용이지만 싱글룸이면서 저렴한 곳이 있었다. 주방도 사용 가능했다. 마트도 있었다. 평소에도 라면을 좋아하는데 이때는 라면 생각이 최고에 달했다. 드디어 라면을 먹을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휴일의 마트는 굳게 닫혀 열릴 줄 몰랐고 한참을 기다리다 포기한 후 출발 후 처음으로 쌀을 먹는 걸로 위안하며 빠에야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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