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더라
일곱째날.
경험이란 건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지레짐작해서 사기를 떨구는 단점도 있다. 오늘은 첫 번째 마을 Navarrete까지 12.23km, 거기서 두 번째 마을 Najera까지 16km이다. 마을 두 개를 가는 데만 28km가 넘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번째 마을에서 묵는다는 뜻이다.
보통 군에서는 완전군장(대략 20kg의 군장)으로 1시간에 4km를 걷는다. 여기서도 그 정도 무게는 아니지만 배낭을 메고 걸어보니 대략 비슷했다. (물론 배낭 없이 걸으면 더 많이 걷는다.) 그런데 길이 좋거나, 마을이 적당한 거리에 있거나, 재충전할 쉴 곳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으면 평균보다 조금 빠르고, 언덕이 있거나 중간에 아무것도 없는 지루한 길이 길면 당연히 느려진다. 거기에 컨디션까지 추가하면 평균과 차이가 많이 난다.
오늘의 거리 28km를 4로 나누면 걷는 시간만 7시간으로 계산하고 중간에 휴식시간, 식사시간과 더불어 무척 지루한 길임을 감안하면 8시간 이상이 나온다. 오늘도 역시 마음이 급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조급해했을까? 즐기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번 그냥 흘러가는 대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길 위에 있음에 충실했으면 순례길 초반의 그 조바심과 힘듦이 조금은 나아졌을까?
나름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길 위에 사람들이 많다. 대도시는 보통 진입도 오래 걸리고 벗어나는데도 오래 걸린다. 마을의 끝부분의 공원 벤치에 앉아 에너지바로 가벼운 아침을 때운다. 그 잠깐 사이에 많은 순례객들이 지나쳐간다. 다시 배낭을 멘다. 채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배낭은 벌써 돌덩이다.
버리지 못하는 벌이다. 예상대로 마을 간의 거리가 멀 수록 평균 걷는 거리는 줄어들고 더욱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사람들에게 추월을 당할 때다. 특히 나보다 훨씬 어르신들에게. 물론 그분들은 배낭을 메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좌절감에 다리 힘이 쫙 빠져버린다.
걷는 것이, 다리를 옮기는 것이 내 의지가 아니고 그저 관성처럼 움직인다고 느끼며 두 번째 마을에 들어섰다. 나름 몇 번 쉬지 않고 부지런히 왔다고 생각하는데 벌써 마을의 숙소 앞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다음 마을까지는 5.75km 지금 속도면 2시간을 더 가야 하는데 지금이 벌써 3시.
딱 멈출 타이밍이었다. 더구나 다음 마을은 꽤 작은 마을이고 숙소도 몇 개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내일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될 것이고 불편한 마음이 계속될 것 같았다. 결단을 내렸다. 쉬지 않고 마을을 벗어났다. 다음 마을에 분명 늦게 도착할 것이고 숙소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Najera를 벗어나자마자 나오는 언덕은 이미 기운을 다 소비한 자에게는 에베레스트의 느낌이었다. 발을 땅에서 최소한으로 올리며 끌다시피 언덕을 넘고 2시간여를 가서 드디어 Azofra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음에 찜했던 소규모 숙소는 순례길 메인에서 벗어나 있었고, 이제는 거기까지 찾아갈 힘이 없어 처음으로 공립 숙소(공립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피레네를 넘은 날만 빼고 아직은 대규모 숙소를 이용해 본 적이 없어 두려움에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완전 너무 좋았다. 방에 2명만 사용하고 1층 침대 두 개다. 거기에 바닥에 보일러까지 들어온다. 순례길 걷기 최고 기록을 세운 보상을 받는듯했다. 룸메이트는 캐나다에서 오신 80은 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 자신 인생에서 피레네를 넘은 날이 가장 힘들 날이었다고 하신다.^^
어제 산 한국 라면은 좀 더 아끼기로 하고 동네 작은 슈퍼를 가니 중국 라면이 있었다. 작은 라면 2개를 사서 돌아왔는데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3일째에 같이 용서의 언덕을 넘었던 잭, 크리스티앙, 달리아를 만났다. 비슷한 곳을 걸은듯한데 한 번도 못 보다가 4일 만에 보니 너무 반가웠다. 토마스가 안 보여 물어보니 어제까지만 걷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같이 잠깐 걸었다고 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나의 순례길 유일한 친구들이기 때문에..
(순례길의 숙소는 공립 숙소, 사립 숙소, 좋은 숙소~ 등으로 구분되고 동네마다 숙소의 질이 많이 차이 난다. 대부분은 사립이 비싸고 깨끗한 편이지만 때론 공립이 저렴하면서도 시설이 좋은 곳도 있다. 공립은 가격이 저렴하거나 금액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개인별로 적당한 금액을 기부하도록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유료 중에 가장 저렴한 곳은 5유로부터 시작한다.)
여덟째날.
오랜만에 보일러의 기운을 받아 개운한 잠을 자고 길을 나섰다. 두 시간여를 걷고 첫 번째 마을의 바에서 이제 고정 메뉴가 돼 버린 콜라, 오렌지 주스, 크루아상을 먹고 있는데 잭과 크리스티앙, 달리아가 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같이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쉬는 곳이 계속 겹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곳에서 쉬었다.
이 친구들도 다들 이 길 위에서 서로 만났는데 나이도 20대로 비슷하고, 걷는 속도도 비슷하니 계속 같이 다닌다고 했다. 이야기해보니 나까지 모두 같은 날 출발했는데 내 나이를 듣더니 무슨 운동했냐며 왜 이렇게 잘 걷냐고 한다. (잘 걷는 게 아니고 마음이 안 편해서 자꾸 마을 하나 더, 하나 더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말은 안 하고) 너희들 쫓아가는 중이라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쉬는 중 달리아가 양말을 벗었는데 발이 마치 화상 입은 듯 온통 물집으로 뒤덮여 있었다. 저 발로 어떻게 걸었는지 도저히 상상이 안됐다. 달리아에게 그냥 터트리기만 하지 말고 물집 가운데에 실을 넣어 놓으라고 일러주었다. 달리아는 오늘 다리 상태 때문에 20km 지점의 큰 마을에서 쉬어야 할 것 같다 했다.
20km를 넘으면 마을이 몇 개 있긴 한데 다들 작은 마을이고 그다음 괜찮은 마을까지는 17km를 더 가야 했다. 20km이냐 37km이다. 나와 크리스티앙은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 정도는 가 줘야 뒤에 오는 사람들과 거리가 제법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덴마크에서 온 크리스티앙은 바이킹의 후예답게 키가 190이 넘었다. 그 긴 다리로 몇 번 성큼성큼 걸으면 나는 거의 뛰듯 걸어도 벌써 저 앞으로 가버렸다. 그러다 잠시 후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함께 걷는 것을 포기하고 쉬지 않고 열심히 걷다 보면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나타난다. 크리스티앙이다.
어딘가에서 쉬다가 다시 나를 앞질러 가는 것이다. 나는 다시 또 한참을 걷다가 보면 뒤에서 또 크리스티앙이 나타난다. 쉬는 것까지 포기하고 그보다 빨리 가려고 했던 욕심을 버렸다. 내가 아무리 안 쉬어도 그는 쉴 거 다 쉬면서 나를 앞지를 수 있는 토끼였다.
아무리 그래도 16km는 그에게도 무리였던 것 같다. 원래 가려던 마을까지 가는 중에 거치는 마지막 마을을 지날 때쯤 뒤에서 크리스티앙이 또 나타났다. 더 이상 가는 걸 포기하고 이 마을에서 자려고 했는데 숙소가 안 열어서 할 수 없이 다시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둘이서 한 시간여를 같이 걸었다.
순례길이라는 것의 특성상 서로 배려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야기해보고 같이 걸어보니 참 괜찮은 친구였다. 나에게는 일주일 만에 누군가와 처음으로 같이 걸은 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마의 마지막 한 시간을 잘 넘겼고 또다시 데일리 베스트를 기록했다. 37.85km. 미쳤다.
붙임성이 좋은 크리스티앙이 여러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오랜 시간 자리를 함께 했다. 덕분에 이 마을이 순례길에서도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할리우드 거리의 영화배우 손도장처럼 순례길을 걸은 유명인들의 손도장, 발도장이 있었다. 그중 내가 알아본 인물은 '지옥의 묵시록'에 나왔던 '마틴 쉰'의 것이었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배경인 'The way'란 영화에 나왔다. 그 영화의 감독은 그의 아들인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만들었다. 할리우드의 악동인 '찰리 쉰'도 그의 아들이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자리는 9시가 넘어도 계속되어서 크리스티앙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침대로 갔다. 이곳은 한 방에 (방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크지만) 침대가 20개도 넘는 거대한 수용소였다. 어수선하고 불편했지만 눕자마자 기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