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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Jan 10. 2020

두번의 슬라이딩 도어즈 - 대만 - 단수이

말할 수 있는 비밀

바쁘다.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쁘다. 내 맘을 아는지 대만의 고속철 THSR도 무척 바쁘게 달려가 준다. 세 번째의 대만 방문. 드디어 타이베이에 간다. 매번 타이베이라고 하기엔 미안한 타오위안 공항만 찍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타이베이를 간다.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을까? 대도시의 장점인 편리한 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곳을 고민한다.

'그래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2007년에 만들어진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주걸륜'이라는 배우를 확실히 인식시켜준 영화다. 주걸륜은 이 영화의 감독, 주연은 물론 피아노 연주까지 직접 해냈다고 했다. 그 영화의 주 배경인 주인공들이 다녔던 학교가 타이베이 인근 단수이에 있다. 실제로 주걸륜이 다녔던 학교라고 했다. 단수이는 타이베이 지하철 노선 중 빨간색 노선인 2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종점까지 가면 된다. 그곳에서 버스나 걸어서 찾아갈 수 있다. 다만 학교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학생들이 하교하기 전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어차피 지금 가도 늦은 시간이다. 마음을 비우고 그냥 가보기로 했다.

고속철에서 내리는 타이베이 메인 역은 빨간색 라인이 지나는 곳이다. 바로 지하철로 갈아타기만 하면 된다. 어디서 내릴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짧은 자투리 여행을 하기엔 최고다. 퇴근시간이 되기에 약간 이른 시간 이어서 사람도 많지 않다. 지하철 문가 쪽에 자리를 잡고 서서 이어폰을 꺼낸다. 아무리 그래도 외국이니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밖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볼륨을 유지한다. 지하철은 어느새 지상으로 올라와 도시 위의 레일을 달린다.

머리는 멍하니 이어폰의 음악도 약간은 멍하니 흘리던 중 지하철 안내방송의 이상함이 느껴진다. 다른 역들 보다 방송이 길다. 얼핏 갈아타라는 이야기도 들린 것 같다. 찰나의 갈등 후 닫히려는 문 사이로 재빠르게 내렸다. 혹시 실수여도 이왕 늦은 거 다음 차 타면 되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빨간색 라인을 자세히 보니 중간에 살짝 삐져나온 핑크색 선이 있고 하나의 역이 딸려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방금 내린 지하철이 그곳에 가는 것이었다. 이런 행운이..






다음 열차를 기쁜 마음에 타고 단수이 역에 내렸다. 평소의 여행이었다면 당연히 걷는 걸 선택했을 텐데 짧은 여행의 이유로 버스를 선택했다. 버스도 이곳이 종점인 듯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도 하차문 근처의 자리는 다 사람이 있다. 문가에 서서 상황을 봐서 내리는 게 좋은데 자리도 많은데 서 있기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게 불편하다. 뒤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마음은 문가에 가있다. 버스 앞쪽 상단에 다음 정차역의 이름이 흘러가는데 너무 빨리 지나간다. 사람이나 많으면 대부분 내리는 데서 같이 내리면 될 텐데 슬쩍 훑어보니 다들 동일한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다음 정차역을 내가 이해하고 내리기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지도를 실행하고 gps로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목표지점으로 다가가는데 버스가 거의 우리나라 시내버스 수준으로 달린다. 차분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버스가 섰다. 중국인 관광객 세명이 내린다. 촉이 왔다. 뒷자리에서 총알같이 달려 나가 닫히는 버스 문을 뚫고 내렸다. 내려서 정류장 표지판을 보니 목적했던 곳이 맞다. 30명 중 한 명을 뽑는 사다리를 타도 걸리는 나인데 세상에나 이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의 찰나의 선택이 완벽하다니. 이런 완전 행운이..

이 정도의 운이라면 학교 문 닫았지만 들어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찾아간 담강중학교는 내 운이 다 한 걸 알려주듯 경비 아저씨에게 저지당했다. 아쉬움을 달래려 그 옆의 또 다른 촬영지인 진리대학을 구경했다. 돌아오는 길은 걸어서 단수이역까지 왔다. 주변에 단수이강 쪽으로 카페나 식당들도 많았고 대만의 상징 먹거리와 시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다음에 온다면 굳이 마음 졸이며 버스는 타지 않아도 될 듯했다.

전날 내 인생의 운을 다 쓴 이유인지 수많은 비행기 탑승 중 늦잠으로 처음 비행기를 놓칠뻔했고, 하필 이번 대만행이 출장이었던 것은 말할 수 있는 비밀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4188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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