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편과 다투었다. 남편은 세상과 싸우고 있고, 나는 아이들과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으니 우리 부부 사이에는 간극이 늘 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건 응당 나일텐데, 지금껏 내멋대로 살아온 성질이 아직 불끈불끈 제멋대로 튀어나온다. 남편이 요즘 힘들다는 걸 잘 안다. 그가 자주 짜증내고 한숨쉬고 세상을 한탄하는게 달갑진 않지만 이해한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이 오죽 힘들면 저럴까. 좋은 쪽만 보아서 그렇지 요즘 세상살이가 팍팍하지 그지 없다는 것은 가정주부인 나도 느끼고 있다. 물가는 비싸고 노인인구는 늘어나고 빈 집은 남아돌고 인프라는 일부 지역에 몰려있다. 아이들은 자라고 있는데 아직 내 집마련을 못한 우리 부부의 현실적인 고민은 날마다 이어진다. 정착할 것인가, 떠날 것인가, 어디로 떠나서 얼만큼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가, 노후 준비는 잘 되어있나 등등 당장은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에 관해 우리는 끝없이 얘기를 나누고, 그럴때마다 조금씩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며 잠자리에 든다. 아이를 넣기 전에는 어린애같이 남편에게 응석을 부려도 그가 내 푸념을 잘 받아주었고 사소하고 쓸데없는 아무 이야기에도 우리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헌데 이제 우리 두 사람에게는 각자 한 몫을 해내야만 하는 '부모의 자리'가 생겼고, 집, 교육, 건강 등 굵직한 삶의 주제들이 우리에게 어른의 신중함을 요구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과 투닥거리다 등원 준비를 마치고 신발장앞에 서니 첫째 아이가 뭔가를 발견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어, 내 운동화에 '사탕'이 있네? 아이들의 떼묻은 운동화 속에 막대사탕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어제 분명 술에 취해 빵을 잔뜩 사들고 귀가한 그는 정신없이 곯아 떨어졌는데, 새벽에 출근하면서도 아이들 선물을 몰래 두고 갔을 그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오늘 새벽 그가 출근준비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일어나질 않았다. 어제의 부부싸움이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기에 내 쪽에서 먼저 화해의 제스쳐를 취하기에는 알량한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평소라면 잘 다녀오라고 배웅인사를 했을 텐데 오늘은 오기로 버텼다.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그는 냉장고문을 열어서 뭔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냈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에 왁스를 발랐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2:8 가르마에 왁스를 바르고 다니는 사람이 남편이다. 그는 머리를 단정하게 만지는 것을 출근 전 마음을 다 잡는 증요한 의식으로 여겼다. 그의 루틴은 하루도 빠짐이 없었다. 그렇게 출근준비를 마친 남편은 오늘 새벽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기 전에 가방속에 넣어둔 막대사탕을 하나씩 꺼내 아이들의 신발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런 남편앞에서 나는 오늘도 작아지고 겸손해지고 반성한다. 그가 나보다 나은 인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없는 농담던지를 나보다 더 잘하고,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지만 분명하다. 그는 나보다 어른이다. 그리고 어른의 무게에 합당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