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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샘 Dec 31. 2019

우리의 어머니들을 위하여



  안녕, 스티브. 지금 당신은 한창 수업을 듣고 있겠지? 아직 내 문자에 답장이 없는 걸 보니 딴 생각을 하는 것 아닌 것 같아서 안심이 되네. 아주 잘 하고 있어, 스티브. 나는 엄마에게 방금 택배가 왔다고 알려 드렸어. 어제 엄마가 나한테 사 달라고 부탁한 수영복이랑 수영가방이 잘 도착했대.

  내가 결혼하고 난 후에 한동안은 우울해 하던 엄마가 요즘 이것 저것 배우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좀 안심이 되. 텅 빈 집에 혼자서 딸이 쓰던 방에서 잠을 자고 밥도 혼자 먹고, 혼자 씻고, 혼자 옷을 고르고, 혼자 TV를 보고, 또 혼자서 잠이 들 엄마를 종종 상상해. 내가 당신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록 나는 실은 자주 엄마가 생각이 나. 그리 사이가 다정한 모녀지간은 아니지만 엄마와 나 사이에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깊은 감정의 바다가 흘러. 요즘 내가 엄마에게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미안함인 것 같아. 당신도 종종 나처럼 당신의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느껴? 엄마없이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서 미안하고, 혼자 외로움을 견디며 살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그래서 요즘은 더욱 자주 엄마에게 연락하려고 노력해. 쑥쓰럽고 어색한 걸 꾹 참고 일부러 밥은 먹었냐, 오늘은 뭐하냐, 나는 방금 무얼 했다 등등 짧게라도 안부를 전하려고 노력해. 무얼 해라, 무엇은 하지 마라, 이렇게 살아라, 뭘 먹어라 한 번 전화통을 붙잡으면 자꾸만 늘어지고 길어지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짜증으로 답하지 않고 고분고분 대답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 인터넷에 클릭 한번으로 요리법이 수십개씩 나오는데 일부러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거나, 오늘 했던 요리가 맛이 없었다고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그 요리를 했냐고 과장해서 물어보는 나를 발견해.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랑 엄마도 결국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영원불변한 알고리즘을 벗어날 수 없는 건가봐. 무슨 이유에서든 언제나 모든 순간의 끝엔 결국 엄마는 딸을 생각하고, 딸은 엄마를 생각해.

  나도 많이 변했지만 엄마도 많이 변했어. 요즘은 엄마가 먼저 나에게 안부를 물어. 그런데 스티브, 그게 나는 가끔 슬퍼. 엄마가 변하는 것 같아서 말야. 딸에게 좀 더 다정해지고 자신의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진 엄마를 축하해줘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 내가 엄마를 외롭게 만든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나의 결혼으로 인해 울 엄마가 외로워 진 것 같아. 언젠가 한 번은 엄마가 혼자 멋들어지게 차린 아침밥상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준 적이 있었어. ‘엄마 아침이다, 맛있겠지?’ 짧은 문자와 함께. 와, 그 짧은 문장 하나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거야. 엄마가 정말 많이 외롭구나. 오늘 아침에 엄마가 차린 예쁜 밥상에 엄마 혼자였구나. 말할 사람이 없었구나. 그 생각을 하는데, 왈칵. 눈물이 났어.


  다시 한번, 내가 엄마를 외롭게 만든 건 아니지만 나의 결혼으로 인해 우리 엄마는 지금 혼자이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많은 시간을 우리 모녀가 서로를 부둥켜 잡고 어떤 형태로는 살아왔잖아. 서로를 의지하는 시간, 상처 주는 시간, 원망하는 시간들이 뒤엉켜서 우리만의 시간들이 나이테처럼 새겨졌잖아. 그 나이테는 내가 어딜 가든 내 안에 남아 상대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워질 수 없게 만들어. 결혼식 날 저녁에 샤워를 하면서 울었던 당신의 눈물을 기억하고 있어. ‘우리 엄마가 나를 완전히 너한테 보냈어. 그것도 아주 멋지게, 오늘 우리 엄마 너무 멋졌어.’ 라며 울먹이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아들과 엄마 사이에도 또 다른 강이 하나 흐르는구나 어렴풋이 알았지. 이 아들과 이 어머니 사이에도 깊은 나이테가 있구나. 살면서 내가 그걸 잘 보듬어 줘야겠다. 어머니가 정말 당신 말처럼 당신을 나에게 잘 보내주신 거라면,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다시 어머니의 마당으로 자주 놀러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같이 자주 어머니께 가자.

  스티브, 우리의 결혼생활이 우리의 두 어머니들에게 감정의 분리와 존재의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는 걸 잊지 말자. 우리들의 어머니는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시면 분명 이 세상 누구보다 좋아하실 거야. 동시에 말 못하게 외로워하실 수도 있겠지. 우리 지금처럼 서로의 어머니를 더욱 더 사랑해드리자. 두 분의 어머니 모두 혼자서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키운 강한 분들이지만, 당신도 알잖아.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셨을까. 둘이였다가 하나가 사라지고 혼자 남는 삶은 얼마나 막막할까. 혼자여서 괜찮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인간에겐 누군가가 필요해.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오늘 하루의 슬픔과 기쁨을 나눌 누군가가.

  어제 당신의 어머니께서 나에게 ‘사랑한다, 우리 며느리.’ 그러셨어. 나는 자주 시어머니께 ‘어머니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힘내셔요.’라는 문자를 남겨. 당신도 울 엄마에게 종종 안부전화를 한다는 걸 알아. 우리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의 엄마와 함께 살자. 우리가 여행할 때 자주 어머니들을 모시고 더 자주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고,  없는 틈을 내어서라도 자주 안부를 전하자. 자주 모르는 것을 여쭤보고 자주 우리의 성취에 대해 알려 드리자. 나 혼자 우리 엄마를 돌보는게 아니라서, 또 당신 혼자 어머니를 돌보는게 아니라서, 우리가 함께라서 안심이 되. 우리의 어머니들도 그러실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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