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거기 그대로 있더라

시간은 느슨해지기도 하고 다시 바라 볼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by 셈프레

6년 만이었다. 때로는 생각만으로도 아련한 기억들이 있고, 때로는 꺼내보기에도 아프거나, 안타깝거나 아쉬운 기억들도 있다. 나에게 통영이 그렇다. 날씨만큼이나 추웠고 쓸쓸했던 그 기억을 이제는 용기 내어 꺼내보기로 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통영은 그리 멀지 않다. 그때는 서울에서 출발해서였는지 참 멀게만 느껴졌었다. 내가 지방살이를 선택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떠나고 싶을 땐 언제든 떠나자는 것. 예전처럼 먹고사는 일에 목숨 걸지 않고, 그냥 지쳤다 느껴진다면 눈치 볼 것 없이 떠나자는 것. 그래서 아프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그저 행복하자고 다짐했었다. 문득 그런 날이었다. 떠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날. 그 바다가 보고 싶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나 나는 여전히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마음에 오늘은 그저 그 시간들과 마주하고 그 기억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코코는 여행을 좋아한다. 서너 시간씩 차를 타고 이동해도 얌전하다. 어디든 그렇게 껌딱지로 다니니 제대로 된 혼삶러의 여행 동지를 만난 것 같아 참 좋다. 통영까지 두 시간 반, 마산 부근을 지나면서 그때의 여행에서 불안했던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6년 전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극도로 불안했던 나의 멘탈과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가 새해 해돋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었고 무겁게 떠났지만 가볍게 돌아오기를 소망했던 여행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 인생에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무게의 배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나 설악산 종주를 하면서 몸이 마음을 이겨주기를 바랄 때였다. 그때의 그 마음이 되살아나 조금은 복잡한 마음으로 동피랑으로 갔다. 어딘가 세련되게 변한 것도 같은 동피랑의 작은 골목들 사이로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건 그때 내 마음을 끌었던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낮은 지붕으로 산비탈에 조용히 앉아 있던 게스트 하우스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 여행자로 사는 것, 여행자를 만나는 것, 이런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하나 하면서 이런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몸은 결국 그해에도 나의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다. 운전을 하는 것도,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것도, 숨을 쉬는 것조차도 괴로운 날들이 계속되었고, 결국 떠나면 편안하고 돌아오면 불안한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스케줄을 4일만 비울 수 있으면 가까운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말만 들리지 않으면 숨을 쉴 것 같아서 일부러 관광지를 들르지도 않고 일본의 소도시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으며 그런 여행들을 통해 만나지는 새로운 인연들과 경험과 생각과 사고와 결심과 용기, 그리고 치유가 지금의 나를 여행자의 마음으로 사는 프로 혼삶러로 만들었다.


아주 작은 카페와 함께 있었던 동피랑의 그 게스트하우스는 그냥 사라진 게 아니라 거의 부서져있었다. 어쩌면 코로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듯하다. 부서지고 무너졌던 그때의 내 마음 같았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옥상에 앉아 그때의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의 마음이 그때의 그 마음을 바라보니 아주 살살 아려 오는 듯했다. 코코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신이 났다. 그래도 이제는 추억인지 기억인지 모를 그 시간들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통영에 다시 오기까지 6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게 그 시간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은 때때로 사람을 느슨하게도 하며, 한때는 결코 넘어가지 못할 것 같았던 순간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것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욕심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많이 조급했다.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훌쩍 중년을 넘어버린 것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이다 보니 남들이 보여주는 성공은 성공대로, 행복은 행복대로, 그리고 돈과 명예와 인격과 기타 등등 모든 것이 내 손에 잡혀야 된다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내 그릇과는 상관없이 사람도, 일도, 관계도, 돈도, 모든 것을 원하였으나 그것에 반 비례하여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시기였던 것이다.


코코를 끌어안고 숙소에서 밤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얼마 전 아는 언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사는 게 너무 괴로워. 마음속이 지옥이야. 평화를 얻고 싶어서 매일매일 성당에 나가고 있어"라고 말하며 그간의 상황들을 이야기했다. 내가 아는 그 언니는 사회적 명예도 성공도 부도 다 누려 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나는 혼삶러의 삶이 참 외로워서 오랜만에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건데 뜻밖의 하소연을 듣고 보니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괴로운 것과 외로운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하는 게 나을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외로운 것이 낫다에 한 표를 던진다. 6년 만에 다시 온 통영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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