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과 예상 밖의 성과
나는 세일즈 코디네이터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까지 오게 되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직접 영업을 해야 한다니 막막했다.
실리콘 밸리 영업소엔 나와 B 이사님, 단 둘뿐이었다. 이사님은 엔지니어 출신답게 기술 상담과 품질 이슈 대응에는 능했지만, 영업에는 큰 관심이 없으셨다.
“자네, 이번 주 바이어 미팅은 잡았나?”
“아직… 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글쎄, 뭐 굳이 나서서 할 필요는 없어. 문제 생기면 내가 가면 되니까.”
그런 분위기였다. 배울 사람도, 적극적으로 기회를 열어주는 환경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덜컥 “제가 해 보겠습니다” 하고 나서는 것도 어딘가 어색했다.
정리하자면, 나는 아직 ‘현장 영업’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실패만 한 건 아니었다.
� 첫 번째 성과: 미수금 회수
어느 날 회계팀에서 장기 미수금 리스트를 넘겨받았다.
B 이사님은 늘 기술 대응에만 바빠서, 수금 같은 건 신경을 못 쓰셨다. 수표를 잃어버리거나, 주소가 바뀐 줄도 모르고 미뤄둔 건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특유의 꼼꼼함으로 기록들을 샅샅이 뒤졌다.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으면 곧장 전화를 걸었다.
“Hello, this is Jenny from ○○ company. I found an overdue invoice…”
몇 년씩 묵은 미수금이, 내 손에서 하나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한 달도 안 돼 ‘올 클리어(All Clear)!’
회계팀이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에 복귀 했던 사수님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대리,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에 취직해도 되겠어.”
� 두 번째 성과: 한류 덕분의 수주
또 한 번은 점심 자리에서의 우연한 대화가 성과로 이어졌다.
아시아계 여성 바이어였는데, 자연스레 K-드라마와 K-팝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어요. OST도 자주 들어요.”
“정말요? 앞으로 누가 가장 뜰 것 같으세요?”
그녀가 묻자,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RAIN이요. 비.”
내 대답에 그녀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는 점심 내내 드라마와 음악 얘기로 수다를 떨었고, 그 만남은 결국 첫 수주로 이어졌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영업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일이 아니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남겨라’라는 말처럼, 영업의 시작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데 있었다.
실리콘 밸리에서의 내 주재원 생활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좌충우돌 속에서 이런 작은 성과들이 쌓이며 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