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와 함께 생활하는 갈색 푸들 푸돌이는 올해 18살로 어렸을 적부터 처가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던 터라 고집쟁이 도련님으로 불리는데, 때로 말썽꾸러기 사고뭉치처럼 일을 벌여 우리를 당황스럽게 할 적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본인의 성에서 따와 '황푸돌'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개구쟁이 아들을 부르는 듯한 뉘앙스로 외친다.
최근에 황푸돌이 사고 아닌 사고를 쳤다. 전의 글에서 언급했듯 방구가 벽에 머리를 '콩' 박는 것을 대비해 집에 강아지 펜스와 베개로 길을 만들어 다치지 않게끔 꾸며 놓았는데, 황푸돌 이 녀석이 '껑충껑충' 담을 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담을 넘은 푸돌이는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다. 허락되지 않았다기보다는 위험할 수 있어서 다니지 못하게 막아놓은 것인데 황푸돌은 그런 곳에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베개 건너편에 태연한 표정으로 서있는 푸돌이. 나참~~ 너 왜 거기 있니?
처음 이를 발견한 건 어느 날 아내가 외출 후 집에 왔을 때였다. 베개 건너편에서 아내를 맞이하는 푸돌이를 보며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잠시 잠깐 서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아니 왜 푸돌이가 여기 있는 거지!!??'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똑같은 푸돌이의 표정이었다. 나갈 때는 바닥의 이불을 디딤발 삼아 껑충 뛰었으나 다시 들어오려고 보니 장판이 미끄러워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귀여운 표정으로 베개 뒤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다음 날에도 상황은 반복되었다. 아내는 외출 후 반려견 CCTV로 아이들을 살펴보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갈색은 보이지 않았다. 놀란 그녀는 카메라를 요리 조리돌려보다가 한참 웃었다. 이 친구가 또 베개 밖으로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비친 푸돌이, 푸돌이는 어디 있을까요?
황푸돌 '아... 잘하면 요기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가 집에 도착하자 푸돌 도련님은 태연한 표정으로 '어서 나를 옮겨주겠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아니 그러니깐 왜 넘어갔어!!!!!!"라며 두 손으로 푸돌이를 안아주며 꺼내 주었다. 그렇게 황푸돌은 베개 탈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내가 집에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베개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아내는 "황푸도오올!!!!!!!! 안돼!!!!!!!"라고 소리쳤지만, 푸돌이는 못 들은 척 은근슬쩍 넘어오더니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수업 땡땡이치고 뻔뻔히 여기저기 쏘다니는 날라리 모습이랄까. 당당한 모습에 더 귀여웠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푸돌이는 어렸을 적부터 여우 같은 면이 있었다고 하는데 알아들어도 못 들은 척, 못 알아들어도 알아들은 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도련님 기질이 있다고 한다. 방금 베개를 껑충 뛰어넘은 푸돌이는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엉? 문제 있어? 나 여기 자주 왔는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푸돌이가 여기를 넘어와서 대체 뭘 하는지 궁금해서 유심히 쳐다보니 베란다에 과자를 모아놓은 곳의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었다. 18살 노견이라 시각도 후각도 예전 같지 않을 텐데, 확실히 '개'코는 개코다.
킁킁, 여기다! 여기가 바로 젤리 냄새의 근원지야!
젤리 획득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황푸돌,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방구(오른쪽 아래), 방구도 넘어가고 싶은 표정이다.
처음에는 펜스를 베개 뒤에다가 설치해 푸돌이가 절대 베개를 넘지 못하도록 할까 싶었지만, 방구와 달리 푸돌이는 어딜 돌아다니든지 머리를 박거나 자빠질 일이 크게 없으니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황푸돌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게 놔두자는 것이 아내와 나의 생각이었다. 도련님 가시는 길 저희가 어찌 막으리오...
다만 푸돌이가 혹시라도! 호오옥시라도! 다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며칠간 푸돌이를 지켜보니 이는 기우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한두 번이 아닌 듯 위험한 곳은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고 베란다 저 구석까지 들어가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대체 무슨 냄새가 나서 저기까지 가는 건지... 정말... 호기심이 왕성한 녀석이다.
이제는 우리도 포기하고 아예 그곳에 배변패드를 깔아놓았다. 그리고 실제로 푸돌이는 베란다에 있는 배변패드에 쉬를 했다. 쉬를 정말 까탈스럽게 가리는 푸돌이가 베란다에 쉬를 하다니? 와우... 황푸돌 너 정말 여기가 좋구나?!
더 신기한 건 아무리 푸돌이가 동안이라고 해도 18살이면 못해도 사람 나이로 100살이 넘은 노인네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 뛰고 호기심이 왕성할까.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녀석이다. 탈출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 푸돌이지만 그는 오늘도 일탈을 꿈꾼다.
p.s. 참고로 푸돌이를 계속 지켜본 방구는 며칠 뒤 본인도 넘어가겠다고 성치 않은 다리로 베개를 넘어갔다가 자빠져 한동안 누워있었다. 몇 번의 추가 시도 끝에 방구는 이제 베개 건너편으로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우면서 짠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