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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Oct 25. 2020

아직도 가끔 네 생각이 난다, 유기견 써니 이야기①

[우리가 구조했던 유기견 써리(써니)]

1년 전쯤, 19.8월에 있었던 일이다.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는 것 보면 아주 잠깐이었지만 네가 우리 부부에게 참 많은 것들을 주고 간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지금은 좋은 곳에 입양을 간 대형견 써리(써니) 이야기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저녁, 아내와 나는 외출을 마치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울프독 또는 시베리안 허스키 계통의 강아지 한 마리를 보았다. 옆에는 한 부부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강아지가 부부에게 치근덕되며 친근한 듯한 모습을 보여 그분들의 반려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강아지가 다가오자 남편이 임산부인 아내를 끌어안으며 보호해준 것이다. 이상했다. 아내와 나는 파란 불의 신호가 들어오기 전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사람이 좋아서 그 부부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덩치가 꽤 큰 녀석이 갑자기 달려드니 그 부부가 놀랐을 법도 했다. 특히 임신한 경우는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황급히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부부와 이를 멀찍이 바라보는 강아지. 그 모습에 아내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나는 그 날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어서 본방을 사수하려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려 했다. 드라마를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있는 나와 달리 아내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주차를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까지 아내는 계속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어보니 아까 보았던 그 강아지가 눈에 계속 밟혀서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했다. 그 당시에 나는 지금과 달리 강아지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유기견을 집으로 데리고 오자니, 꽤나 난감할 것 같았다.


설거지를 하며 계속 고민했던 나는 먼저 얘기를 꺼냈다.

"여보 그럼 한 번 찾아보자. 그 아이가 진짜 유기견이 맞는지 주인을 잃어버린 건지 알아보자"

드라마를 못 봐도, 그래도 괜찮겠냐는 아내의 말에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때는 그 녀석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터전이 어떻게 변할지 감히 상상도 못 해서 호기롭게 나선 것일 수도 있다.


방금 전 목격했던 그 장소로 갔지만 녀석이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길은 비에 젖어 웅덩이가 깊게 파인 곳이 많아 강아지가 걸어 다니기에는 매우 혹독한 날씨였다. 게다가 사람만 졸졸 따라다니는 그 녀석이 차가 다니는 길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어 우리는 서둘러야 했다.


우리는 이쪽저쪽으로 흩어져서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기미가 안보였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주변 아파트를 한 번만 더 돌아보자고 했다. 사람이 좋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으로 유추했을 때, 아파트 단지에 갔을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빙고! 놀랍게도 단지 쉼터에 녀석이 있었다. 산책 나온 아파트 주민들 곁에서 꼬리 치며 어린아이들과 공 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어른들이 집에 들어가려고 어린아이들을 부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큰 강아지는 아이들이 멀어지는 모습에 껑충껑충 뛰어가며 쫓아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은 멀어져 갔다.


사람들이 떠나고 이 녀석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가까이서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길거리를 돌아다녔는지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고 털은 비에 젖어 얼기설기 얽혀있었다. 도저히 이대로 놔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게가 있는 강아지라 아내는 내게 아이를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소형견만 안아보다가 대형견을 처음 안아보니 무게에 당황스러웠고 시큼한 냄새가 내 몸까지 배기는 것 같아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를 데리고 가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그때부터 애정이 생겼던 것일까


아내와 나는 혹여 애타게 찾는 주인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인근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혹시 아이 몸에 등록된 칩이 있을까도 검사해볼 마음이었다. 안타깝게도 등록된 칩은 없었고 수의사 선생님의 진찰 결과 상태를 보았을 때 유기된 지 적어도 한 달은 되어 보인다고 설명해주었다. 혹시 이 아이를 보호해줄 수 있냐는 우리의 물음에 단호히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긴 유기된 강아지를 어떻게 다 받아줄 수 있을까. 급하게 이 아이를 씻길만한 샴푸와 패드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다른 병원도 수소문해보려 했지만 밤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내일 연락을 돌리기로 결정하고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집에 도착해 이 아이를 씻기기 위해 화장실로 데려가 물을 트는 순간 난리가 났다. 따듯한 물이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공간이 주는 어색함과 낯선 사람이 자기 몸을 씻긴다는 생각에 많이 무서웠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도 이 순한 아이는 결코 물거나 짖지 않았다. 오자마자 적응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샤워를 시키는데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놀랐을법한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나치게 긴장한 아이는 변기 뒤편으로 도망가며 그곳에 쉬를 하고 응아를 했다. 어욱! 그 구석진 곳에서 빼내오기도 힘들었지만 볼일을 본 것을 치우는 것도 상당한 일이었다. 1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아이를 가까스로 씻길 수 있었다. 대형견을 처음 겪어보니 만만치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강아지 샴푸를 한 통이나 다 쓰고 몇 번이나 헹궈주고 다시 씻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에게 나는 특유의 길거리 냄새가 다 없어지진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계속 속이 안 좋은지 꾸룩 꾸룩 거리며 설사를 계속했다.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불결하고 쓰레기 같은 음식을 주워 먹었을지 상상되었다. 다행히 소량의 지사제를 먹은 아이는 조금씩 설사가 잦아들었다.

고단한 길거리 생활을 마쳤다는 안도감이었는지 편안하게 누워있는 녀석을 보며 우리는 당장 내일의 출근 걱정되기 시작했다. 좁은 아파트에 이 불안정한 아이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사정상 쉴 수 없는 아내는 내게 조심히 부탁했다. 내일 혹시 연차를 써서 이 아이를 돌봐주면 안 되겠냐고. 나는 갑작스러운 연차 얘기에 당황스럽고 난감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결국 내가 휴가를 내어 이 녀석을 돌봐주기로 했다. 이 친구가 안쓰러운 것도 있었지만, 아내가 슬퍼하는 모습에 위로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이유였다. 지금의 나라면 흔쾌히 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아내는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가장 미안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그리 깊지 않았던 나였기에 불편한 티를 팍팍 냈을 것이다. 결국 아내는 펑펑 울고 말았다. 버려진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남편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모양이다. 나는 괜찮다고 견딜만하다며 아내를 다독여주려 했다. 아내말로는 그때의 위로는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하


아내는 새벽 내내 한숨도 자지 않고 반려견 카페 등 각종 커뮤니티에 이 아이 대해 수소문하고 주인을 찾는다는 글을 올리고 다음날 오전 인근의 동물병원에 전화를 전부 다 돌렸지만 어느 한 군데도 강아지를 찾는다는 문의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써니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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