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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Oct 27. 2020

이제는 받으며 누리며 살아갔으면, 유기견 써니 이야기②

[우리가 구조했던 유기견 써리(써니)]

(유기견 써니 이야기 1편에 이어서)


허스키 특성상 눈을 좋아하는 강아지라는 점에서 '눈 설'의 한자 雪(설)을 연음으로 설→서리→써리로 불렀던 것이 계기가 되어 '써니'가 녀석의 이름이 되었다.

어젯밤 이 아이를 구출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아내는 문득 안방 문 앞에서 인기척 느다. 써니였다. 이 곳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녀석은 거실과 빈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신기한 게 많은지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안방은 차마 들어오진 않았는데 대신 문 앞에서 '빼곡' 고개를 반만 내밀고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와 눈이 딱 마주친 써니는 꼬리를 흔들면서 반갑다는 표시를 보였고 그 모습이 애처로우면서 귀여던 아내는 성큼 다가가 안아주었다. 하루도 채 안되었지만 써니와 우리 부부는 벌써 정이 들었다. 이렇게 착한 순둥이인데 어쩌다 길거리에 내버려진 건지... 아내는 오랫동안 녀석을 끌어안고 있었다.


어젯밤 피곤해 곯아떨어진 나는 아침 늦게 눈을 떴고 아내는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여는 순간 커다란 녀석이 눈 앞에 있었다. 새벽에 아내에게 했던 것처럼 내게도 꼬리를 흔들면서 반가운 티를 냈다. '아... 이 녀석이 있었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실의 냉장고를 향해 걸어가던 중 눈 앞의 모습에 기겁하고 말았다.


선반에서 떨어져 사방팔방으로 흙이 흩날려 있는 화분, 바닥에 뒹굴고 있는 각종 물건들, 그리고 엎질러진 물그릇으로 흥건해진 바닥... 오 마이 갓!!


대형견과 같이 생활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한 우리의 잘못이었다. 써니가 앞다리를 살짝 들기만 해도 대부분의 물건은 아주 손쉽게 닿았다. 소형견 기준으로만 생각한 우리의 오판이었다. 정갈하고 깔끔하게 꾸며놓았던 우리 집은 개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나마 깨지기 쉽거나 위험한 물건들이 건드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잠이 확 깬 나는 바삐 움직였다. 지저분해진 집을 정리하고 써니의 손이 닿지 않도록 높은 곳으로 옮기며 깨지기 쉬운 물건들은 안방 서랍으로 옮겼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거실이 허전~해졌다. 반나절만에 우리 집이 이렇게 바뀌다니 써니가 지나간 자리는 깊은 자국을 남겼다.

이쯤이야 점프 한 번에!

심지어 식사를 하기 위해 임시로 의자와 쓰레기통을 붙여 긴 울타리를 만들었는데도 녀석은 의자 사이의 틈을 요리조리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일까. 미워하기에는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한 아내는 써니가 갖고 놀만한 조그마한 리본 모양의 인형을 사 왔다. 써니에게 던져주니 얼마나 개구쟁이처럼 잘 놀던지... 덩치만 컸을 뿐 사실 이 아이는 아기였다. 순수하게 함께 놀고 싶고 이쁨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것이었다. 그 마음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와 짠한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졌다.

원피스에 구멍을 낸 써니, 그래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녀석이다.

써니는 개구쟁이답게 아내가 아끼는 원피스에 구멍을 내는 사고를 쳤다. 아직 아기 강아지인지라 힘 조절을 잘 못해 원피스가 찢어진 건데, 그런 것도 모르고 써니는 '헤헤' 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운 아내는 써니의 양 볼을 비벼주었다. 미워할 수 없는 이 아이를 더 꽉 안아주니 써니는 기쁜 마음에 꼬리를 더 세차게 흔들었다.


아침까지 아내는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임시보호처 한 군데를 찾았다. 천안에 위치한 유기견 카페였는데 위탁 임보 비용을 지불하면 입양 전까지 책임지고 임시보호를 해줄 수 있는 곳이었다. 60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는데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결코 비싸지 않은 비용이었으며 더한 금액이어도 써니를 위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아내는 내게 30만 원이라고 비용을 절반으로 속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내 입장에서는 30만 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나를 잘 알고 대처한 것이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60만 원 그 이상이라도 지불할 의향이 있겠지만 말이다.


임시보호처를 찾는 과정 중에 상품성 있는 대형견을 입양해 학대하며 새끼를 강제로 낳게 하는 악덕업체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동물이지만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이고 나쁜 일을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지 강아지에 애정이 깊지 않던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다행히 우리의 소식을 온라인상에서 접한 어느 분께서 피해야 할 곳들을 친절히 알려주셨다. 덕분에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접근하는 이들을 걸러낼 수 있는 좋은 정보가 되었다.


우리는 내일까지 연차를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바로 천안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커다란 녀석을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순간 그렇게 해맑고 밝았던 써니는 꼬리가 내려가고 슬픈 눈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또 가야 한다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 모습에 덩달아 아내도 슬퍼지기 시작했다.


천안으로 향하는 길, 슬픈 모습의 써니

하늘에서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둥까지 동반한 폭우로 '쿠르르쾅쾅'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폭우에 자동차 앞 유리가 덮여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힘겹게 헤쳐나가며 천안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써니는 아내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들었고, 한없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 아이를 또 다른 곳에 맡긴다는 미안한 마음에 아내는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아이를 안전하게 임시 보호해줄 장소에 도착했다. 써니를 구조했던 날과 비슷하게 비는 오고 땅은 젖어있었다. 하늘도 아내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지 슬픈 비를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써니를 안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10마리가 넘어가는 강아지들이 써니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왈왈왈!!' 누가 보면 이 아이들이 텃세를 부리는 건 아닌지 착각할 만큼 얼마나 억세게 짖던지... 써니를 다시 데리고 와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였다. 사장님과 첫인사를 나누며 아이를 내려놓았다.


써니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주변 강아지들이 냄새를 맡으려 우르르 몰려왔다. 써니는 기가 죽어 꼬랑지를 내리고 시무룩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곤 우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정들었는데, 또 어딜 가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 모습에 한동안 아내는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써니와 함께 있다가 사장님께 거듭 잘 부탁한다며 그곳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아내는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 아내를 안아주는데 덩달아 나도 울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저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짧은 사이에 이 아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남겨주었는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써니는 우리 곁에 아주 잠시 머물다 떠나갔다.


그리고 그 날 인스타그램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비 오는 밤, 길도 축축한 곳에 사람이 좋아 이곳저곳 차도를 위험하게 돌아다니던 이 강아지가 우리와 함께한 시간은 길어봐야 이틀.

누가 널 내팽개쳤는지 어떤 연유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네 운명이 너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는 책임지는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길 바랄게. 종종 소식 들었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 도종환, 꽃씨를 거두며


임시보호소에 맡긴 지 며칠 뒤 다시 연락해보니 써니는 그곳의 핵인싸가 되어있었다. 텃세를 부릴 것 같았던 강아지들과 많이 친해진 모습이었고 그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고 인사하고 있었다. 녀석은 우리의 염려와 달리 잘 지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뛰놀며 지내고 있었다. 물론 사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써니는 거기서도 사고뭉치였다고 한다. 하하.


핵인싸 써니!!!

이후 한 두 달쯤이 지났을까 우리는 천안에 써니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오직 써니를 보기 위해 그 먼 걸음을 달려갔고 써니는 한없이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사고뭉치를 받아준 마음씨 착한 사장님과 스태프들과 함께 말이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현재 써니는 임시보호처를 떠나 아주 좋은 곳에 입양 가서 산책도 자주 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나서 잠깐 글 쓰는 것을 멈추었다. 참 웃긴 일이다, 그때는 그렇게 처치곤란이었던 그 아이가 이렇게 날 울리다니... 단 이틀이었지만, 우리를 스쳐간 흔적은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써니를 처음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아이를 구출해 어쩔지 몰라했던 아내의 모습, 나의 마음들, 이 모든 것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임보 전 건강검진 중인 써니. 의젓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지 않은가!

써니야!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주 소식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또 어쩌면 우리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만, 네가 잠시 잠깐이라도 우리와 함께여서 참 행복했었다. 널 만난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너의 여생도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랄게. 이제는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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