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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Nov 01. 2020

캠핑보다 소중한 우리 어르신

[노견 방구 이야기] 인생의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취미 딱히 없던 나는 아내와 결혼하게 되면서 부부 공동의 취미로 캠핑 흥미를 갖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처음에 어설펐던 모습에서 이제는 꽤나 진지한 캠퍼로 거듭나고 있었다.


우리는 이번에 노견 방구를 데리고 동반 캠핑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캠핑의 내공이 늘고, 큰 쉘터에 따듯한 난로와 함께라면 방구에게도 집과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캠핑을 갈 때마다 매번 다른 가족들에게 방구를 부탁하고 맡기는 게 아내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었고, 우리가 자리를 비울 때 혹여라도 아프거나 잘못될까 봐 늘 신경 쓰이곤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방구는 아내랑 있을 때 가장 안정적이었다.

 

그렇게 방구와 함께하기로 한 캠핑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한정적인 반려견 동반 캠핑장, 기 콘서트 티켓 버금가는 예약 성공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타공인 금손 아내는 기어코 예약에 성공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방구와 함께 캠핑을 간다는 생각에 아내는 상당히 떠있었다. 우리 곁을 떠나가기 전 공기 좋고 물 좋은 푸르른 자연이 가득한 곳 방구와 함께 갈 생각을 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싱글벙글하는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구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아내를 쳐다보곤 했다.

캠핑장 가자!! 방구와!!

하지만 캠핑장에 도착하자 난관 봉착했다. 원래는 캠핑 준전문가인 아내가 나를 리드하 전체적인 캠핑의 방향성을 알려주지만 방구를 안고 달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 혼자 쉘터와 텐트를 설치하게 되었고 힘도 시간도 2배로 들었다.


그나마 방구를 풀밭에 산책을 시켜주면 노즈 워킹을 하며 좋아했지만 약한 체력으로 긴 시간 산책은 어려웠.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불안하고 지친 아이를 보며, 아내는 좀 더 일찍 캠핑을 알았더라면 방구도 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노즈워킹하며 산책하는 방구

텐트를 설치하며 애를 먹는 내 모습에 아내는 나를 도와주려 방구를 잠시, 준비해둔 펜스에 내려놓으려 했지만 껌딱지인 방구는 결코 아내를 떠나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다시 안아달라고 소리치는 것 마냥 낑낑되었고 아내가 안아줄 때만 비로소 울음을 멈췄다. 낯선 곳이라 그런 것인지, 추워서 그런 것인지 어느 때보다 심하게 아내를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텐트가 만들어지고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나니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햇볕이 없어지니 기온이 내려가 꽤나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의 캠핑 텐트는 큰 쉘터 안에 작은 텐트를 따로 설치하는 구조였는데, 방구 우선 따듯한 텐트 안에 재워보기로 했다. 이너(inner) 텐트 난방 매트를 서둘러 깔아  틀어놓고 조그마한 온풍기계속 돌렸다. 우리는 추워도 되지만 19살 노견 방구는 감기에 걸리면 무척 곤란했 때문이다.


그리고 내 눈에는 추위에 컨디션이 떨어진 아내의 모습도 같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낮부터 방구를 신경 쓰랴 캠핑을 준비하랴 이중으로 힘이 들었을 것이다. 아내와 방구 위해서라도 서둘러 장작불을 피우려 노력했지만 습기를 먹은 장작 탓에 평소보다 불이 잘 붙지 않았고 까맣게 재로 변해가는 장작처럼 내 속도 타들어갔다. 유독 불이 붙지 않는 장작이  미웠다.


잠시 잠이 든 방구는 잠에서 깨자 이내 신경 증상의 일환 '빙빙 돌기'가 시작되었는데 조그마한 텐트에서 동그랗게 돌면서 철푸덕 넘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텐트가 갑갑한지 낑낑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밖을 나오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였다.

빙빙 돌기 시작하는 방구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우리는 다시 방구 집중 케어 모드에 들어갔다. 눈을 들면 하늘 위로 별이 총총 떠있고 앞은 멋진 호수가 펼쳐져있는 그림 같은 캠핑장에서 우리의 시선은 오직 방구에게만 쏠려있었다. 바람과 비가 캠핑을 방해할 적도 많았지만 이번 캠핑은 결이 다른 어려움이었다. 낭만 캠핑을 생각했지만 정리가 마저 채 되지 않은 우리 텐트의 모습에 흡사 난민촌 같았다. 이 리 없는 방구는 아내가 어딨는지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찾고 있었다.


잘 시간이 지나서도 계속해서 하울링 하는 방구를 보며 아내 모든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었고, 본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 방구 힘들게 하는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시 시간은 저녁 9시. 1시간 뒤면 캠핑장 내 차량 이동이 불가한 매너 타임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여보 집에 가자"


2박 예약이니 우선 텐트는 그대로 놔둔 채로 방구를 데리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알고 보니 아내는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런 고민을 해왔다고 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방구가 너무 신경 쓰여서 캠핑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방구와 함께한 첫 캠핑은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어쩌면 방구와 함께하는 마지막 캠핑 될 수도 있기에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 아이와 우리 부부의 취미를 공유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불안해하는 방구를 안아주고 있는 나의 모습

집에 와 돌이켜보니 얼마나 정신없고 바빴으면 아내와 방구가 캠핑장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일 매 순간 방구의 일상을 모아두는 아내를 생각할 때 둘의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 한편에 아려왔지만 따듯한 봄이 되면 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위로했다. 다음 캠핑 때는 내가 꼭 까먹지 않고 방구와 아내의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겨놓을 것이다. 아내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달에도 예약해놓았던 캠핑장 취소했다. 정말 힘들게 예약한 것이었지만 추운 날씨에 고생한 방구에게 더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둘만의 취미를 위해 방구를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후련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몰려왔다. 캠핑 때마다 방구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전전긍긍하던 마음이 해소되며 후련했지만 진작 방구랑 이런 곳을 자주 다닐걸 하는 아쉬움 마음도 들었다.


그 날 아내는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

일, 개육아, 베이킹, 캠핑. 요 4개로만 반복되었던 최근 일상
그중 캠핑과 베이킹을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의 취미인 캠핑은 겨울 첫 장박을 준비 중이었지만,
아픈 방구를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즐기기엔 마음이 너무 힘들어
올해는 이번 캠핑으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홀가분하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온전히 푸구와 나누려 한다. (중략)

나이가 들어서인지, 결혼을 해서인지 삶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변화를 혐오할 정도로 싫어하는 나지만,
두부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다.
나도, 우리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 글을 보고 울컥했는데,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캠핑을 포기할 정도로 방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내는 지금도 없어서 못 사는, 힘들게 구매한 새 캠핑 난로를 미련 없이 중고장터에 팔았. 렇게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며 준비했던 겨울 캠핑은 끝이 났다.


때로는 소중한 것을 위해 인생의 다른 부분을 포기해야 할 적이 있다. 이번 결정이 그런 순간이었는데 우리는 이 선택에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난로야 돈을 좀 더 얹고서라도 구할 수 있고 캠핑이야 언제든 다시 갈 수 있지만 이 아이와는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함께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순간 한순간이 모두 마지막인 것처럼 소중했다.


내년에 방구캠핑을 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날씨도 따듯 방구도 행복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방구와 함께하는 캠핑은 꽤나 수고스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이 아이가 함께하는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방구야~ 듯한 봄이 오면 지금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꼭 함께 봄 캠 가는 거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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