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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Nov 19. 2020

아내가 유기견 방구를 처음 품에 안은 날

길바닥 출신 방구가 개호구 아내를 만난 날

"여보 내가 방구를 처음 만난 날, 그날도 기록으로 남겨줘"

어떤 글을 쓸지 먼저 제안한 적 없던 아내는 그 날은 꼭 기록으로 남겨줬으면 좋겠다며 이야기했다. 같이 생활한 지 17년이 넘은 방구를 처음 만난 날을 아내는 아직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방구와 아내의 인생이 바뀐 운명 같은 그 날은 2004년 겨울쯤이었다. 고등학생이던 아내는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봄 방학식을 앞두고 교실에 앉아 있었다. 행사를 기다리는 와중에 갑자기 교실 한 편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돌려 보니 흰둥이 강아지가 친구들 품에 안겨있었다. 그때는 알았을까, 방구와 아내의 인연이 이렇게 길어질 줄?


"꺄아아아~ 귀여워~~~!!!"

아내가 있는 교실은 4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방구는 여기까지 올라와 교실에 슬그머니 들어온 것이었다. 고등학생 소녀들은 돌고래 톤의 환호와 함께 너도나도 안아보고자 방구를 들었다 놨다 했다. 방구도 그런 관심이 싫지 않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당시 추정나이 2 방구는 똥꼬 발랄한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녀석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품에 안겨 한창 이쁨을 받던 방구는 돌고 돌아 아내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그때 교내 방송이 나오며 봄 방학식을 진행하니 대강당에 모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학생들은 우르르 강당으로 몰려갔지만 이 흰둥이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애초부터 아내는 개호구였던 것이 분명하다. 길어봐야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잠깐 본 강아지인데 그새 마음을 빼앗버리고 말았다. 길을 잃은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방구와 아내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어쩔 수 없이 방구를 안고 강당을 향하던 아내는 다행히 학생회 소속이라 방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반 대열에 서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강당 구석 한 편에 숨게 된 아내와 방구는 이렇게 첫 추억을 쌓게 되었다.


방학식을 마친 아내는 이 흰둥이의 주인을 꼭 찾아주겠다는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동물 병원을 모두 돌아다녔다.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사람이 있는지, 혹시 애타게 찾는 이가 없는지 재차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도 그런 연락도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정이 많고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아내는 이 아이를 안고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비록 직접 보지 못했지만 아내가 얼마나 돌아다녔을지 그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교복을 입고 있는 조그마한 소녀가 이 흰둥이의 주인을 찾겠다고 돌아다니는 귀여운 아내의 모습이 상상돼 혼자 웃었다.


끝끝내 주인을 찾지 못한 아내는 우선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아빠와 엄마에게 (현 장인어른과 장모님) 어떻게 이야기할지 한참을 고민했다는 아내는 의 강아지인데 일주일만 보살피기로 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것에 꽤 출중한 능력이 있는 아내의 기질이 십분 발휘된 순간이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내는 방구를 찾는 주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일주일만 더 있으면 된다고 뻥을 쳤다. 그렇게 일주일 더, 일주일 더 하다 보니 한 달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내는 그렇게 방구와 버티기에 돌입하고 있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귀여운 고등학생 아내의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된다.  


다행히 꾀죄죄한 방구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장인 장모님도 혀를 끌끌 차며 별 말없이 넘어가 주셨고 버티기를 하는 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장모님은 그냥 우리가 키우자고 먼저 얘기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방구는 가족이 되었다. 유기견 방구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지 아니면 딸이 그렇게 애쓰는 모습이 속상하셨던 건지 다 알면서 속아주신 장인 장모님의 쿨함이 지금 돌이켜봐도 참 감사하다.

가족이 되고 1년 뒤 찍은 방구와 아내의 사진. 싸이월드에서 캡처한 유물과도 같은 사진이라 화질이 많이 깨진다.

물론 당시 처가에서 키우던 푸돌이가 장인 장모님의 이쁨을 받고 있어 강아지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도 한 몫했다. 게다가 6개월 정도밖에 안된 아기 푸돌이 역시 방구의 등장을 싫어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도련님 푸돌이 성격에 방구는 안중에 없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하... 어쩌면 방구가 우리 가족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푸돌이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굴러온 돌인 방구는 박힌 돌 푸돌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텐데 17년이 지는 지금도 친하지 않으니 이거 원... 참 재밌는 녀석들이다.


지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장모님 방구에게서 몇 달 동안 꾀죄죄한 냄새가 났다고 이야기하신다. (아내는 전혀 그런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한다) 형님은 그래서 방구를 길바닥 출신이라고 짓궂게 장난치곤 한다. 물론 형님은 나보다 더한 개호구 클라쓰이니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새 식구가 된 방구는 처가댁에 금세 적응하기 시작했다. 눈치가 빠르고 배변훈련 잘되어있는 걸로 보아 아마 엄한 집에서 생활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방구는 화장실에서 알아서 쉬를 했고 '손'이라는 신호에 맞춰 사람에게 응석 부릴 줄도 알았다. 그래서 아내는 이 아이를 누군가가 버렸다기보다는 혼자 빨빨 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가족이 된 방구는 살도 찌고 번지르르 해졌다.

그렇지만 아내를 만난 방구는 참 행운아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던 길바닥에서 아주 제대로 된 개호구 보호자를 만났으니 말이다. 나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 아내처럼, 방구와의 첫 만남도 또렷이 기억하는 아내는 방구와 함께한 17년의 세월이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늘 말한다. 삶의 곳곳에 방구와 함께한 흔적들이 가득한 아내처럼 아마 방구도 그러하겠지?


아내가 1년 어학연수를 다녀온 시간을 제외하면 16년 동안 내내 방구와 아내는 함께했다. 그래서 아내가 이 아이들 때문에 결혼을 망설인 것도, 결혼을 해서 예전만큼 더 정성스레 돌봐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같이한 세월이 남편보다 더 오래된 방구가 아내에게는 무척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만약 아내가 방구를 내려놓고 대강당에 갔었다면, 방구가 4층에 위치한 그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방구의 견생은, 아내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 둘의 인생은 해피엔딩이다. 얼마 남지 않은 방구의 여생도 그렇게 해피엔딩이 될 것이다.

"방구야 너 개호구 아내 참 잘 만났다!!! 그렇지? 인정하지?"

"응! 개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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