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스토리텔러에 지원하고자 쓴 글로서 강아지 소재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돌아온 벤지(Benji)'의 리뷰를 담았습니다. 스포일러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있습니다]
지금껏 꾸준히 반려견에 관한 글을 써온 내가 넷플릭스의 어떤 작품을, 어떻게 리뷰해야 할까 고민하며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문득 커서가 멈춘 곳이 있었다.
뭐랄까... 털이 질서 없이 휘날리는 주인공 강아지 벤지의 모습이 우리 노견 멍뭉이 방구와 닮아서 그랬던 건지, 포스터와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고 '이거다' 싶어 얼른 재생 버튼을 눌러보게 되었다. 러닝타임은 약 90분 정도로 영화치곤 비교적 짧은 시간이라, 오랜 시간 집중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내게 딱 좋은 작품이었다.
출처 : 넷플릭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더없이 훌륭한 강아지 연기였다. 어떻게 이렇게 연출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멍뭉이의 연기가 정말! 정말! 너무 자연스러워 한마디 대사 없이도 이 갈색 털뭉치의 심리 상태와 속 깊은 마음이 자연스레 이해가 될 정도였다.
사실 이 부분을 어떻게 잘 풀어내느냐가 강아지를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의 흥행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강아지에게만 오롯이 집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물 중심으로만 서사를 풀어내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러한 완급조절을 잘 해낸 듯 보였다.
또한 반려견 장르물에 빼놓을 수 없는, 시의적절한 감동 포인트를 잘 잡는 것도 무척 중요한데,어쩌면 강아지 벤지의 마음을 대변하는 사람의 목소리나 대사 더빙이 없는 것이 오히려 내면의 마음 상태를 더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정말 강아지를 강아지답게 표현하고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초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 개털이 된 주인공이나 주변 토박이 강아지들에게 내쫓긴 벤지의 모습이 서로 중첩되었을 때, 그리고 그들이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묘한 기류가 흐르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순간 '아 이 뻔한 클리쎄!(Cliché : 뻔한 표현, 전개, 스토리 등을 의미함) 이제 눈이 맞아 우정이 싹트는 건가?'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맞다. 이 영화는 클리쎄의 연속이다. 하지만 클리쎄도 어떻게 연출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곤 한다. 이 영화가 그 클리쎄를 잘 풀어낸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강아지라는 동물이, 반려견이라는 가족이 우리 삶 속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이들의 보호자가 된다. 하지만 때로 역으로 이들이 우리의 보호자가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처량한 처지의 둘의 첫 만남에서 그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뻔한 전개가 오히려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출처 : 넷플릭스
주인공의 가정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혼자 힘겹게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가정으로, 삶이 버거워 이 갈색 털뭉치까지 책임질 수 없는 엄마는 벤지를 내쫓게 된다. 이 장면이 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살랑살랑 녹이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엄마에게 화가 잔뜩 났지만 벤지와 같이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어 비 오는 거리에 이 멍뭉이를 놓아주며처량하게 울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과 이러한 상황을 눈치챈 벤지 녀석이 알아서 조용히... 거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이 참 애잔했다. 어두운 밤거리를 걷고 있는 벤지의 모습에 내 마음마저 너무 쓸쓸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우...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작년에 우리 부부가 비 오는 날 구조해주었던 유기견 써니가 생각났다. 물론 영화처럼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들은 없었지만 써니가 느꼈을 방황의 감정들, 쓸쓸한 감정들이 이랬겠거니 싶어 더 속상했다.
그리고 벤지를 어쩔 수 없이 놓아주는 주인공의 그 아픈 마음을 보며, 처음 써니를 구조했을 때 우리가 감당할 수 없어 난감해하며 울컥했던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써니는 지금 좋은 곳에 입양을 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영화는 이렇게 짠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중후반부에 들어서면 강아지 액션, 성장드라마로 장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주인공과 벤지의 우정이 싹트고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특히 중후반부부터는 벤지가 온몸의 털이 휘날리도록, 잠시도 털이 가만히 앉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종횡무진 활동하는데, 중간중간 어려움에 봉착하면서도 꿋꿋이 헤쳐나가는 벤지의 모습에서 책임감, 의젓함이 보여 기분이 좋았다. 떠돌이 강아지에서 어린아이들의 보호자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뿌듯한 마음이었다.
벤지가 범인이 있는 장소를 알려줘도 이를 시간낭비라 여겨 오히려 강아지를 쫓아내는 어른들의 모습에 벤지가 얼마나 속상했을는지... 억울하기도 참 억울했을 텐데, 이를 꾹 참고 넘어가는 모습에 나보다 더 훌륭한 멍뭉이다 싶어 왠지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또한강도에게 납치당한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블록버스터급 강아지 액션 추격신을 보여주며 악당들과 악당 강아지를 멋지게 골탕 먹이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진짜 '개'똑똑하다라는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영화의 막바지, 조금은 유치하지만 히어로물의 전형적인 서사를 따라가며 '피식'하며 웃을 수 있는 해피엔딩을 맞이하는데, 아무도 어린아이들을 구출하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벤지 홀로 악당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그 과정 중에 죽은 줄 알았던 벤지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는 이 뻔한 결말이 이상하게 꽤 잔잔한 감동을 줬다. 오히려 벤지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면 너무너무 슬펐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주인공 벤지와 더불어 악당 강아지, 조연 강아지 이렇게 2명의 강아지가 더 나오는데, 이 모든 아이들이 대사 한마디 없이 어쩜.. 그렇게 캐릭터에 잘 맞게 구성돼있는지 놀라웠다. 특히 후반부 악당과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는 벤지의 모습에서 영화 '분노의 질주'가 생각나기도 했다. 하하... 나름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에 액션 쾌감을 사알짝~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우리 집 노견 멍뭉이 푸돌이가 TV를 보는 장면, 너도 같이 영화 볼래 푸돌아?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강아지들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연기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샘솟았다. 구조물을 테트리스로 쌓아 2층 창문으로 들어가는 장면 (물론 이건 연출이겠지만), 특유의 귀여운 표정과 앙증맞은 양발을 사용해 때마다 적절한 제스처를 취하는 등의 연기는 정말 흠잡을 데 하나 없었다. 물론 훈련사와 상황을 연출해 제작한 것이겠지만... 그 실제 제작 과정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강형욱 씨의 반려견 중 경찰견 출신인 '레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훈련받으면 실제 사람도 구조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런 연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면서 여러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나만 궁금한 거 아닐 텐데... 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돌아온 벤지(BenJi)'에 대한 리뷰를 마친다. 반려견을 좋아하는 이라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해드린다. 미소가 절로 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