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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Jan 05. 2021

푸구할배야! 2020년 한 해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

21년도 아내의 곁에, 우리의 곁에 있어줘

나이가 들어 다리 관절에 힘이 없어진 노견 푸돌이는 더 이상 침대나 소파에서 잠을 자기 어려웠는데, 오르락내리락하는 강아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16년 내내 보호자와 침대에서 잠자는 것이 익숙했던 푸돌이 갑작스러운 반려견 쿠션 생활 성에 차지 않는지, 수시사람 소파나 침대에 올려달라 원했다.


혹여라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라 불안한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푸돌이는 소파나 침대에 한번 올라가면 안한 자세로 오랫동안 누워있는다. 그리곤 본인을 바닥에 내려놓을까 노심초사 눈치를 볼 적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머리만 살짝 내놓고 '빼꼼' 쳐다보는 푸돌이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아내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휴대폰을 들어 영상으로 기록을 남긴다.

빼꼼~~~
빼꼼~~~222

특히 푸돌이는 우리 부부가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가려면 급하게 뛰어와 안방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처량한 표정을 짓는다. 본인도 데리고 가 달라는 간곡한 애원이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이렇게 뛰어왔을까... 그 귀여운 눈빛에 녹아 거실에서 자고 있는 방구 몰래 이 녀석을 번쩍 들어 올려 침대로 데리고 오곤 한다.

소파가 그렇게 좋아 푸돌아?

올빼미 스타일 푸돌이는 낮에는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자고 저녁에 활동하는 반면 아침형 스타일의 방구는 새벽에 일어나 초저녁이 되면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드는 편이다.


그 생활 패턴의 중간 시간대, 방구와 푸돌이의 교대(?) 시간이라고 부르는 저녁 6~7시쯤 되자 방구는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자고 있는 푸돌이의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아슬아슬하게 푸돌이를 건드리지 않고 털썩 주저앉아 꾸벅꾸벅.. 그러곤 옆으로 픽 쓰러진다. 드디어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헐! 육아 탈출하나 했더니 이제 너야?"

"시간대별로 누나 전담 마크하기로 했오?"

그렇게 방구가 잠이 들자 푸돌이기가 막힌 타이밍에 눈을 뜬다. 그리곤 아내를 쳐다보며 졸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밥을 달라는 신호다. 낮에는 내내 자느라 코 앞에 사료를 가져다줘도, 한참을 멍 때리며 식사하기까지 버퍼링이 필요한 푸돌이는 초저녁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끼니 챙기기가 그 첫 시작이다. 그렇게 아내의 육아 탈출은 또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으구 이 웬수들"

"여보는 맨날 말로만 웬수래"

사랑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푸돌이를 물고 빨며 예뻐하는 아내를 보는 게 나의 저녁 일상이 되어버렸다.


"마침 잘됐다 깬 김에 약 먹자"

어느 날 저녁,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 방구를 부여잡고 아내는 꾸역꾸역 약을 먹인다.

'케엑.. 켁... 켁' 손 쓸 틈도 없이 입에 쓴 약을 들이켠 방구는 온몸을 다해 반항하며 '찌릿' 아내를 쳐다보다가 입에 들어온 사료를 넙죽 받아먹는다. 그러곤 금세 기분이 좋은지 아내를 졸졸졸 따라다닌다.  


이런 상황은 낮에도 반복되는데 푸돌이가 눈을 뜨면 버퍼링 타임을 노려 후다닥 약을 먹인다. 잠이 덜 깨 어리벙벙할 이 시간이 아내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순식간에 털어 넣은 약의 쓴 맛이 입 안에 채 가시기 전에 아내는 사료 몇 알을 푸돌이에게 연이어 먹인다. '냠냠냠' 역시나 방구처럼 푸돌이의 표정이 금세 풀린다.

"너네는 쫀심도 없니? 나였으면 진작에 삐쳤어!"

"응~ 우린 두부(필자의 별명)랑 달라~" 아내가 푸구의 마음을 대신해 나의 장난에 대답한다


'탁~탁~탁' 새해 첫날 새벽에도 늘 그랬듯 매트를 걷는 방구의 발걸음 소리가 아내를 깨운다. 아내는 아무리 깊이 잠들어도 녀석들의 발걸음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거실로 나간다. 어떻게 이 녀석들 발소리만 나면 바로 알아차리는지 유독 이 녀석들의 소리에 민감한 아내가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새벽종을 울리는 꼬끼오 닭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아침잠이 없는 녀석들인지... 원... 사람이나 강아지나 나이가 들면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나 보다. 새해라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질 게 있겠냐만서도, 1월 1일만큼은 아내가 근심 걱정 없이 달콤한 아침잠을 잤으면 하는 남편의 소박한 바람이 와르르 무너졌다. 웬수 녀석들!


TV를 보는 어느 날 문득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멋진 커리어 우먼이 그랜저 뒤에 쓸쓸히 놓여있는 노견을 구조하는 모습,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사무실에서의 대화.


"노견, 은근히 손 많이 갈 텐데" (광고 속 멘트)

"은근히? 아니 대놓고! 많이 가" (아내의 대답)

"그래도 키워야지!"

"맞아! 당연히 키워야지!"


아내가 이렇게 TV광고에 호응할 적이 많지 않은데, 타이밍 좋게 추임새를 넣었다. 기사에 의하면 이 광고는 그랜저와 노견의 이미지를 매칭 시켜 가족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홍보마케팅이란다.


마케팅 효과에 대한 심층적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에게 노견을 키우는 멋진 선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건 사실이다. 특히 그쯤이야 당연히 감당할 수 있다는 주인공의 쿨한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내의 모습과 많이 닮아서였을까


두 멍뭉이가 노견이 되고 나이가 들어가니 아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내의 품이 요람이다. '두애(아내의 별명) 요람' 나도 저 품에 마음껏 안긴 적이 별로 없는데, 부롭다 애들아! 

두애 요람에서 편안히 누워있는 방구

2020년이 다 갔다. 사람이었으면 주민등록증이 나올 나이가 된 이 아이들이 다행히 잘 버텨주어 올 한 해도 무사히 넘겼다. 물론 몇 차례나 위기가 있었고, 그래서 눈물 흘릴 적도 많았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이 이 아이들을 지금까지 견디게 했다.


어려운 상황을 함께 넘긴 담당 주치의 선생님도 이 아이들이 그래도 2020년을 무사히 넘겼다고 방긋 웃어 보인다. 그러곤 21년에도 잘 버텨주기를 바란다며 간곡히 부탁한다. 부탁은 정작 우리가 해야 하는데... 주치의 선생님의 따듯한 마음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감사 인사를 드린다. 푸돌이와 방구는 복이 많다. 이토록 아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이미지는 앱 아이디어스의 판매자 'odeo0503'님에게 액자를 구매하며 받은 파일이다.

새해 첫 출근길, 역시나 방구가 새벽을 알린다. 아직 해가 채 뜨지 않은 캄캄한 새벽인데... 이 웬수 같은 녀석들!! 그러나 이 웬수 같은 녀석들이 21년에도 아내의 곁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털뭉치들을 웬수라 반어적으로 부를 수 있는 그 시간들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나의 곁을,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말이다. 그게 21년을 맞는 나의 기도이자 아내를 위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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