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부두애 Jan 19. 2021

내가 잘해야 우리 멍뭉이들도 이쁨 받더라고요

가족과 반려견 문제로 어려움이 있는 그대에게

오랜만에 본가에 들렀다. 집에는 11살 말티즈 '베리'와 6살 포메라니안 '보리'가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 이 녀석들은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귀한 손님이 왔다는 듯 폴짝폴짝 뛰고 반가워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다. 몇 개월 만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건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발걸음이 소원해진 무심한 아들 녀석에 속상하실 부모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마냥 격하게 두 멍뭉이가 나를 환영해준다.

격하게 환영해주는 보리(좌측)와 베리(우측)

"오구~~ 보고 싶었어? 근데 너네가 너무 그러면 집에 오랜만에 온 게 티 나잖아"

격한 빵빠레에 오히려 머쓱해진 나는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이 털뭉치들을 쓰다듬어 주며 차례로 안아주는데, 오랜만에 본 보리 녀석은 털이 많이 자라 털이 찐 털돼지가 되었고 노견 반열에 들어선 베리는 전보다 조금 더 말라있었다. '베리... 너도 이제 노견이구나' 속상하게...


그리곤 미리 준비해두었던 반려견용 영양제를 꺼내 반씩 덜어 녀석들의 밥공기 넣어주니 '우걱우걱' 정신없이 먹는다. 얼마나 이런 간식들을 먹고 싶었으면 이렇게 달려들까. 우리 부모님은 이런 걸 뭐하러 사 오냐고 타박 주셨지만 그런 잔소리를 감당하더라도 꼭 이 영양제를 먹이고 싶었다. 특히 노견이 된 베리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부모님과 나는 반려견을 대하는 사랑의 온도가 다르다. 이 온도차로 인해 반려견을 대하는 의견 차이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데 때로 그런 것들이 잔소리처럼만 들려 듣기 싫을 때가 많다.

'왜 엄마 아빠는 내가 이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강아지들을 아껴주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부모님을 타박할 적도 많았다.

너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베리야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그걸 잔소리라고만 치부해버리면, 나만큼 이 반려견 녀석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원망만 하면 결국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는 베리와 보리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 것이다. 그런 잔소리에 오히려 더 살가운 말을 건네고 가족으로서 아들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며 따듯한 마음을 보이는 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들이 사랑하는 이 반려견 녀석들을 엄마 아빠도 사랑하게 될 수 있도록. 그랬으면 하는 바람과 소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점점 자연스럽게 강아지에 대한 사랑의 온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마음은, 사랑은 전염되니 말이다. 뭐 아직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개통령 강형욱 씨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계속 보다 보니 문득 깨닫는 점이 있었다. 강형욱 씨는 사실 강아지를 교육한다기보다는 반려견과 같이 생활하는 보호자를 교육할 적이 훨씬 많았다. 호자의 태도와 상황, 마음에 맞춰 어떤 이에게는 아주 강하고 직설적이게, 어떤 이에게는 부드럽고 따듯하게. 그래서 강형욱 씨를 보면 짜 프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어르신들을 대할 때면 최대한 부드럽고 지혜롭게 잘 설득하려 노력하는데, 옛날 시대를 살아온 그들에게 강아지를 멍뭉이 이상의 반려견의 의미로 인식을 전환시킨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해 보였다. 역시 프로는 달랐다.


<세나개>의 어떤 회차였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시골 강아지 구출 프로젝트 마을의 어르신들을 모두 모아놓고 교육했던 장면이 인상 깊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누구도 이해할 수 있 수 있도록 쉬운 어휘와 표현들로, 또 어르신들을 향한 존중을 담아서. 그 모습이 멋져 보였다. 어르신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교육에 집중하고 있었다.


반려견을 그렇게 끔찍이 사랑하는 개통령이지만 그보다 앞서 그 아이들을 키우는 보호자를 먼저 존중하고 사랑하고 교육시키는 명장면이었다. 물론 때로 강형욱 씨도 어르신을 대하며 어려워하는 모습도 보인. 개통령에게도 사람은, 어르신은 어려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그의 필사적인 노력에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동밀려왔다. 저런 분도 저렇게나 많이 노력하는구나!


그래서인지 강형욱 씨의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라는 책은 제목처럼 이야기의 끝이 사람을 향해있다. 본질적으로 그의 시선은 강아지와 반려견이 아니라 바로 사람에게 닿아있다.


'세상에 나쁜 개가 없다고? 타이틀 한 번 특이하네'

EBS의 <세나개> 프로그램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깊은 철학이 담긴 제목이었다. 진짜 나쁜 개는 없다. 다만 나쁘거나 지나치거나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보호자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작 바뀌어야 할 건 말썽꾸러기 강아지들이 아니라, 바로 나, 우리 인간들이 아닐까.


단,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많은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진짜 프로가 돼야 한다. 강아지만 챙기고 가족에게는 무심하고 상처되는 말만 던지는 이가 어찌 다른 이에게 강아지를 사랑하라고 이야기하며 부탁할 수 있을까. 물론 어려운 일이다. 많이 참고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그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많이 사랑할수록, 더 깊은 그릇일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고개를 숙이자. 더 많이, 더 깊게 그리고 더 멀리. 사랑의 온도가 끓어 넘쳐 주변의 냉기마저 따듯하게 만들 수 있도록.

땡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보리, 귀엽다 귀여워 ㅎㅎ

나부터 본가에 좀 더 자주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푸구할배야! 2020년 한 해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