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급식기가 밥을 내놓는 소리에 방구가 눈을 뜬다. 그러곤 비틀비틀 거리며 급식기의 밥주머니로 얼굴을 파묻고 '우걱우걱', 중간중간 얼굴을 들어 우리를 향해 한 번 쳐다본다. 맛있다는 눈짓인가. 그 모습이 귀여운 아내와 나는 방긋 웃는다.
소화기관이 약한 노견이라 흡수되는 영양분이 적어서인지, 이 두 할배 강아지들은 수시로 밥 달라는 신호로 입맛을 다신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과 저녁으로 주는 사료 외에, 자동 급식기를 통해 하루에 네 번나눠서 물에 불린 사료를 주고 있다.
희한하게도 푸돌이가 깊은 잠이 들었을 때 급식기에서 밥이 나올 적이 많은데, 그런 모습을 볼 적이면 아내는 "푸돌아~~ 어떻게 해~~~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사실 둘 중 누가 먹든 상관은 없다. 밥을 매끼마다 꼬박꼬박 잘 챙겨 주고 있고 급식기의 사료는 출출할 때 먹는 간식 정도이기 때문이다.
웃픈 현실은 그렇게 급식기 앞에서 밥이 나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푸돌이가 곯아떨어졌을 때만 밥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 불쌍한 녀석! 급식기가 푸돌이를 싫어하나? ㅎㅎ
어슬렁어슬렁~~ 밥 없나~~
심지어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숨겨져 있는 밥을 먹으려 얼굴로 밥 통을 미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할 적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급식기 안의 밥 통이 강제로 끌려 '드르륵' 소리가 난다.
분명 사료 냄새는 나는데 입에 닿는 밥은 없으니 푸돌이는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허얼~~!' 치매를 앓고 있는 18살 노견 녀석이 이렇게 영리하게 행동하다니, 아내와 나는 기가 막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순간이었다.
얼굴로 밥 통을 밀어내고 있는 푸돌이, 소리를 켜보면 중간에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이 급식기는 19살 흰색 노견 방구의 분리불안 치료용이었다. 사람이 없을 때도 시간마다 밥이 나오니 방구에게 보호자가 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식탐이 없던 푸돌이가 몇 번 급식기 밥을 맛보더니 그 후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사자처럼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면 요상한 소리와 함께 나오는 밥이 신기한 건지, 급식기의 밥을 빼먹는 재미가 나름 쏠쏠했던 모양이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안절부절못하는 푸돌이의 모습에 우리는 녀석이 쉬가 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 갑자기 급식기 앞으로 허겁지겁 달려가서 한참을 킁킁거리더니 '뭐야 왜 없어!'라는 표정을 짓는다. 안타깝게도 아직 급식기는 밥을 내놓지 않았다.
'오잉? 쉬가 마려운 게 아니었나?' 푸돌이는 이내 촐랑촐랑 소변 패드로 가서 쉬를 조로로록~ 거나하게 싼다. 밥은 먹고 싶고 쉬는 마렵고 어찌해야 하나 싶었나 보다. 그만큼 급식기의 밥을 빼먹고 싶은 푸돌이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밥 통을 밀고 있는 푸돌이와 이를 지켜보는 방구, '뭐 좋은거 없슈??'라고 말을 거는 듯하다.
급식기 주변에 서서 다음 밥을 기다리고 있는 푸돌이 옆에 방구가 달라붙었다. '뭐 좋은 거 있슈???'라고 말하는 듯한 방구의 모습이다. 간혹 방구가 얼쩡거리며 급식기 안 쪽으로 얼굴을 들이 밀면 푸돌이가 몸통으로 '퍼억' 밀쳐낸다. 물론 우리 집은 사방이 푹신해 어느 한 녀석이 치더라도 다치지 않는다. 얼떨떨할 뿐이다. 한 방 맞은 방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렇게 하염없이 급식기만 기다리는 푸돌이가 안쓰러워 다섯 알 정도의 사료를 급식기에 내려다 주니 이게 웬 횡재냐는 표정으로 우걱우걱 먹는다. 아내는 "천천히 먹어 푸돌아~! 누가 보면 우리가 너 굶기는 줄 알겠다~!! 어쩜 이렇게 식욕이 늘었지?"며 신기한 표정을 짓곤 한다.
그러곤 또 잠이 든 녀석들. '위이이잉' 소리에 이번에도 방구가 깬다. 매번 이렇게 타이밍 좋게 방구만 눈을 뜨는지.. 노견이라 귀가 거의 안 들리는 두 녀석이지만 방구는 참 운도 좋다! 푸돌아 이번에도 실패야~ㅠㅠ
아내는 다음날을 위해서 또 밥을 세팅한다. 푸돌이와 방구의 눈치 싸움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 먼저 잠든 쪽이 지는 거야! 알았지? 푸돌이 화이팅!!" 아내의 화이팅 손짓에 푸돌이가 끄덕끄덕하는 것만 같다. 진짜 말을 알아듣는 건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한없이 귀여운 녀석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밥을 더 많이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노견이되면 먹는 것도 마음대로 먹기 힘들다. 세월이 한이다. 그래도 이렇게 식욕이라도 왕성했으면 좋겠다. 밥 먹고 싶어서 '쩝쩝'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오래 보고 싶다. 오래오래~말이다. 그래 줄 거지 얘들아?
왜 그렇게 둘이 나란히 똑같은 포즈로 자는 거야 ㅎㅎ
P.S.
아 참고로 우리 집에서 쓰는 급식기는 납작한 둥근 모양 형태로 일반적인 자동 급식기와 다르게 미리 5개의 구역으로 나눠진 곳에 밥을 놓으면 시간마다 좌우로 돌아가면서 밥이 나온다. 자세한 그림은 하단의 이미지를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