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무시당하는 개호구 아내

노견이 보호자를 다루는 방법

by 두부두애

'부스럭부스럭' 출근 준비를 하는 나의 분주함에 아내가 눈을 뜬다. 아내도 직장인이지만 재택근무라 조금 늦게 일어나도 괜찮다. 아내의 에 누워있던 내가 출근하면, 조그마한 노견 두 녀석 푸돌이와 방구가 그 자차지한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거실에 있는 두 노견을 아내의 옆자리로 옮겨주, 그 모습을 아내는

"두부(글쓴이의 애칭, 남편)야 푸구로 바뀌어랏! 호잇!"이라고 말하며 장난을 친다.


그렇게 침대에서 아주 편안하게 뻗어있는 두 노견 멍뭉이가 부러워 한참이나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출근한다.

톡톡톡, 일어나세요~

'톡톡톡'

아내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 침대에 누워있는 이 두 녀석을 깨워본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19살 흰색 방구는 그래도 들은 척은 하지만 18살 갈색 푸돌이는 아예 척도 안 한다. 모를 리가 절대 없지만 듣고 싶지 않은 알람을 무시하는 듯 무반응이다. 이 멍뭉이... 뭐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 녀석

평소에 영리하게 행동하는 푸돌이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봐도 모른 체하는 게 확실하다. 개들한테 개무시당하는 개호구 아내의 모습이 웃기다.


1월 가스비 청구서가 날아왔다. 16만 원? 허걱? 평소의 2배가 넘는 금액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 멍뭉이들이 추울까 봐 하루 종일 보일러를 뜨끈뜨끈하게 틀어놓아서 그런가 보다. 아깝진 않았다. 푸구(푸돌이와 방구)가 행복해야 아내가 미소 짓고 나도 웃는다.


어느 날이었던가, 일기예보를 미쳐 확인하지 못하고 밤새 보일러를 약하게 틀어놓았더니 푸구 두 녀석 모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 크게 놀란 아내는 이후 각별히 온도에 신경을 썼다. 그러곤 얼마 안 있어 뜨끈뜨끈한 전기장판을 녀석들의 침실 공간에 깔아 주었다.

뜨끈한 곳에서 몸을 지지고 계시는군요!

이 전기장판 위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누워있으면 잠이 솔솔 오는데, 잠투정이 심한 방구를 재우기 위해 같이 누웠다가 내가 잠든 적도 있었다.


'아니 내가 언제 잠들었지?' 싶었는데 방구는 이미 잠에서 깨 돌아다니고 있었다. 안 그래도 푹신푹신한 곳에, 따끈따끈한 전기장판까지 깔아놓으니 강아지든 사람이든 잠들기에는 딱이었다.


'하아아암~~'

주말에도 방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여보가 먼저 자겠는데? 방구를 재우랬더니 두부가 자겠네?"라며 농담을 던졌다.


어우 더 있으면 정말 잠이 들 것만 같아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하마터면 잘 뻔했다.


푸돌이는 방구에 비해 추위를 덜 타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다음날 아침이면 전기장판에서 반쯤 내려와 누워 있다. 반은 전기장판에 반은 일반 매트 위에서 자고 있다. 밤새 조금 더웠나 보다.

전기장판에서 반 쯤 나와있는 푸돌이

그 모습을 보니 아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가끔 보면 이불을 반만 덮을 적이 있는데, 다 으면 덥고 걷어내자니 추워서 이리저리 이불을 굴리다 일부만 덮은 것이 생각났다. 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웃는다. 푸구는 누가 키웠는지 참 닮은 면이 많다.

아내 옆자리에 누워있는 방구

껌딱지 방구는 아내가 재택근무를 할 적이면 유독 더 심하게 칭얼거린다.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는 아내를 향해 몸을 돌리며 안아달라고 조른다. 앞에서 주저앉아 '히엉~ 끼엉~'거리며 시선을 끈다. 얼마 안 있어 못 이긴 척 품에 안아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그러곤 잠이 든다.


이 녀석은 사랑을 차지하는 방법도 잘 안다. 19년을 헛으로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졸릴 때 낑얼낑얼 소리 내면 아내가 성큼 달려와서 재워줄 것을 안다. 오랜 내공으로 개호구 아내를 아주 잘 활용한다.


사실 아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이상하게 잠이 솔솔 온다. 나도 가끔 잠이 안 오면 아내에게 머리 좀 쓰다듬어달라고 한다. 나도 아내의 손길을 잘 활용하고 있다.

"푸구야 누나 손 좀 나눠쓰자! 형아도 누나 지분 있다구..."

소파 껌딱지 푸돌

반면 푸돌이는 방구와 달리 굉장히 얌전한 편으로 소파에만 올려주면 세상 좋은 표정으로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


혹여 우리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소파에서 어져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여태껏 단 한 번도 소파에서 내려오려고 시도한 적도, 원한 적도 없었다. 신기한 녀석, 푸돌이는 소파 껌딱지다.


요새는 아내가 방구 흉내를 기가 막히게 잘 낸다. 울음소리도, 잠투정도, 낑얼낑얼거리는 소리도... 가끔 보면 아내가 소리를 내는 건지 방구가 내는 건지 헷갈릴 적도 있다.


"여보 왜 방구가 되어버렸어?"

아내가 요새 잠을 잘 못 드는 적이 많은데, 그럴 적이면 본인을 좀 재워보라고 방구처럼 우는 척을 한다.


'월~~~ 낑얼낑얼'

바로 옆에 있는 아내가 거실에 있는 방구 소리를 흉내 낸다. 내 옆에 있는 이가 진정 내 아내가 맞는지... 어쩜 그렇게 방구 소리하고 똑같은지, 반려견 성대모사의 달인이.


나는 방구 재우듯 아내의 등을 토닥토닥거리며 '코코네네~'를 노래 부르지만, 아내는 잠이 안 온다는 신호로 이번에는 '끙얼끙얼'소리를 낸다. 이럴 때면 재미없는 역사 얘기를 중얼중얼 계속하면 꽤 효과적이다. 개호구 아내에게 역사 이야기는 수면제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맨날 역사 공부 좀 더해와서 본인한테 더 들려 달라고 한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참내... 개호구였던 아내가 이제는 멍뭉이가 된 건가... 하하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평범한 날일지라도, 우리는 행복한 두부두애이자 푸구의 누나, 엉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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