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커튼을 뚫고 노곤하게 잠든 노견 두 녀석을 깨운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창문을 열자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살 결을 스친다. 참새가 짹짹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부스럭 부스럭’
아내는 얼마 전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개모차를 꺼낸다. 19살 방구와 18살 푸돌이가 또렷이 눈을 뜨고 신기하게 아내를 쳐다본다. “누나 뭐해? 그건 뭐야?”라는 눈빛으로 아내와 개모차를 번갈아 쳐다본다.
오늘 푸돌이는 병원에서 피하수액을 맞는 날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피하수액을 맞고 있는데, 병원 가는걸 어떻게 그렇게 빨리 눈치채는지, 집을 나와 승용차에 타기만 하면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사시나무 떨리듯’이라는 표현이 이런 모습일까?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푸돌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 얼마나 병원이라는 곳이 싫으면 저렇게 벌벌 떨까 싶기도 하다. 병원 싫어하는 건 사람이나 반려견이나 똑같나 보다.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푸돌이
승용차만 타면 병원 가는 줄 알고 무서워하는 푸돌이를 위해 오늘은 개모차에 태워 병원을 가기로 했다. 뭐... 병원 가는 길이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날씨도 좋으니 콧김 좀 쐬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노견이라 노즈 워킹은 못하더라도 개모차 워킹은 가능하니깐 말이다.
출발하기 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우리야 괜찮지만 노견 녀석에게는 이 날씨조차 추울 수 있으니 두툼한 담요 밑에 뜨끈뜨끈한 핫팩을 여러 개 깔아놓고 몸에 얇은 요를 덮어 완성! 개모차 안에 손을 넣어보니 따끈따끈한 열기가 올라온다. 노곤해지는 게 꼭 사우나 같다. 아주 맘에 들어 흡족해하는 아내의 표정, 첫 개모차 세팅이 아주 성공적이었다.
‘으랏차~’ 푸돌이를 개모차 위에 올려놓고 덤으로 방구도 같이 태웠다. 방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나는 왜 데려가? 나는 왜?’하는 어리둥절한 표정. 푸돌이 혼자 가면 심심하니깐 네가 옆에 있어주자!! 허락을 구하는 척 방구를 강제 탑승시켰다.
개모차를 처음 시승해본 방구와 푸돌이는 무언가 어색한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아내와 나를 계속 쳐다본다. 뒷자리에 탑승한 푸돌씨는 뒤쪽 창문을 통해 아내를 확인하고 앞자리 로열석에 탑승한 방구 씨는 앞에 걸어가는 나를 쳐다본다. 혹여라도 불안해할까 자주 눈을 맞춰주니, 이내 녀석들은 편안한지 두 다리를 쭈욱 펴고 누웠다.
평소 아내는 발걸음이 무척 빠른 편인데, 개모차를 끌자 아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천천히 걸으니 얼마나 좋아! 그치 여보?”
아내와 달리 보폭이 느린 나는 개모차 속도로 천천히 걷는 것이 좋았다. 푸구(푸돌이와 방구) 덕에 이렇게 여유롭게 산책도 해보고 개이득이다.
아내는 개모차를 끌며 아주 조심조심 노견 어르신들이 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는데, 방지턱 앞에서 ‘덜컹’ 거리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량 브레이크를 밟듯 멈춰 서서 아주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깜박 거리는 횡단보도 파란 불 앞에서도 다음 차례를 기다리자며 서두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나를 툭 치며 쿨하게 “뛰어”하며 후다닥 건너갔을 텐데, 참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었다. 푸구는 아내를 바꾼다. 그렇게 성질 급한 아내를 말이다. 고맙다 푸구야, 감사합니다 개모차.
약간의 덜컹거림이 오히려 잠을 재촉하는 건지 녀석들은 오는 길 내내 깊이 잠들었다. 따사로운 햇살, 향긋한 풀내음, 개모차의 따끈한 환경이 잠들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육아 중인 부모처럼 개모차를 끌며 여유롭게 집에 돌아왔다.
두 노견은 마치 자기들 발로 산책한냥 스르륵 잠들었다. 잠투정이 심한 방구도 찡찡거림 하나 없다. 걸은 건 우리인데, 피곤한 건 두 멍뭉이인 모양이다. 개모차를 탄 것만으로도 많이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미동조차 없다. 아내는 종종 개모차에 푸구를 태우고 산책을 돌아다녀야겠다며 아이들 재우기에는 딱이라고 개육아 팁을 얻었다고 좋아한다.
개모차 첫 시승을 무사히 마친 아내는 오늘 개육아 조기 퇴근에 신이 났다. 그런 모습이 귀여운 나는 꼭 글로 남겨주겠다고 다짐한다.
꽤 쏠쏠한 아이템을 얻은 우리는 개모차를 더 자주 애용할 생각이다. 헤헤. 오늘도 한없이 평화로운 푸구&두부두애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