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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Jul 27. 2021

직장 생활은 멘탈싸움이라던데

멘탈이 강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굳은살이 생긴다는 건가

[코로나 발생 이전 작성 글입니다]


감기가 낫질 않는다. 의사는 쉬어야 낫는다는데... 그럼 안 낫는다는 건가?


야근 2주 차,

"눈 좀 뜨고 걸어"
"깜짝이야, 언제 왔어요?"

출근길에 친한 대리님을 만났다.


"젊었을 때 딴 데 가라 어서, 빨리!"

이건 누가 봐도 진심이다.

"저도 그러고 싶죠. 정말. 대리님은 왜 다른데 안 가요. 경력도 있으시면서"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아무 데도 안 뽑아줘"

이 분은 현장 서비스직에서 시작해 올해 10년 차다. 대단하다. 이런 회사에서

"어제는 야근 안 하시던데요?"
"어, 어제는 일찍 들어갔어. 너는?"
"뭐 10시죠. 집에 가서 안 자려고 버텼는데 눈 떠보니깐 아침이더라고요?"

어젯밤 씻고 스피커에 벅스 앱을 연결하고 음악을 튼 기억은 있는데 그다음 기억은 흐릿하다.

분명 1초가 지난 것 같은데 음악이 바뀌어있었다.


잠결에 들었던 와이프의 이야기가 웃프다.


"잠이 잘 안 오네, 이제 자야겠다" (분명 내 기억으로는 잠들지 않은 1~2초였다)
"여보, 여보 지금까지 코 드렁드렁 골면서 잤어"
"어? 내가? 나 안 잤는데...?"
"ㅋㅋㅋ 여보 자주 그러잖아. 코 골면서 안 잤다고"
"또 그랬나... 으응... 자야겠다. 사랑해~"
"응~ 잘 자 고생했어 여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와이프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나는 애기처럼 잘 잔다. 희한하다. 나는 진짜 와이프가 좋은가보다


과장님들은 먼저 출근해있다. 눈에 힘이 풀려 보인다. 졸리기도 엄청 졸려 보인다. 수면 부족에 스트레스에 몸이 말이 아니겠지. 아까 출근길에 만난 대리님이 날 저렇게 봤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나도 누구 걱정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이 거 빨리 수정해봐, 표 이렇게 옮기고 이거 숫자 바꾸고"


컴퓨터 바탕화면이 이제 막 화면에 떴는데, 커피도 한잔 못 내렸는데, 서글프다. 앉자마자 폭풍 일 시작이다. 에 쉼터에서는 다른 팀 사람들이 조식을 먹으면서 웃고 떠든다. 오늘 난 조식 먹을 시간이 없다. 젠장


"10년부터 14년도 그래프 이게 맞아? 다시 확인해봐"

상무의 짜증 섞인 이야기에 팀장은 또 다급해진다. 그 다급함은 그대로 나에게 전해진다. 내가 봐도 불안했던 그래프가 역시나 지적당했다. 만들면서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자료였다.


사실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우리 팀에서 2번째로 이 팀에 오래 있었는데, 그래 봤자 2년 좀 넘었을 뿐이다. 다른 과장님이나 팀장님도 이 회사에는 오래 있었을지 몰라도 이 팀에는 오래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10년 전 데이터와 그래프 자료를 정확하게 가지고 있을? 같은 연도이지만 숫자가 다른 파일이 우수수 쏟아진다. 냉장고에 어지럽게 쌓아놓았던 냉동식품이 밖으로 쏟아지듯 엉망진창이다.


'이거 원... 어느 숫자가 도대체 맞는 거야'

"과장님 이거 숫자 앞뒤로 그냥 맞춰야 하지 않을까요? 파일마다 다 안 맞는데"
"아... 확실한 숫자가 지금 없는 거지? 어떡하지... 그럼 그냥 맨 뒷장에 있는 그 장표 숫자에 다 맞추자. 그걸로 해줘"


특정 정보를 보관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회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데이터는 엉망인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엑셀로 정리했던 숫자들이 2~3년만 지나도 어떤 것이 가장 최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마저 담당자가 바뀌거나 퇴사하면 답이 없다. 


"그래. 이 그래프가 맞네. 이렇게 하고 다른 건 확인됐어? 빨리 해야지! 보고는 타이밍이라니까!"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잘 넘어갔다. 그 숫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득 가능하게끔 논리적 숫자가 잘 만들어졌나 보다. 그럼 된 거다. 


누군가가 그러던데 회사원은 결재를 올릴 수 있는 명분만 만들어지면 된다고.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회사원의 반대가 자영업이면 반대로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자영업자에게 명분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정해진 시간 내에 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이상하게 회사는 참 명분을 중요시한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벌써 6시다. 사람들이 짐을 싸고 인사를 하고 퇴근한다. 우리는 야근이다. 한숨을 안 쉬려고 해도 한숨이 나온다. 과장님과 후배 사원, 나 이렇게 셋이 모여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과장님은 대단하신 것 같아요. 우리 둘(사원 둘)은 이미 멘탈 깨지고 몸도 지쳤는데 과장님은 멀쩡하잖아요"
"응. 이렇게 한 3년만 살면 버틸 만 해. 난 솔직히 전에 팀이 훨씬 힘든 것 같아"


지금 이 상황이 버틸만하다고 한다. 진심인지 아니면 후배들 앞이라 좋은 말만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의 푸석한 피부와 풀린 눈을 보면 지쳐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래도 멘탈을 잡고 있는 건 인정할만하다. 대단하다.


"그럼 과장님은 강철 멘탈이네요. 우리는 유리멘탈인데(웃음)"
수백 번, 수천번 다녔을 출근길 버스정류장, 얼마나 더 많이 이 버스 정류장을 오가야 강철 멘탈이 될 수 있을까


배가 고파 저녁을 먹고 일하고 싶은데, 점심시간과 달리 저녁 시간은 칼 같지 않다. 상무가 저녁을 먹을지 안 먹을지가 중요하고 먹게 된다면 그의 저녁시간에 맞춰야 한다.


'어차피 일할 건데 밥 좀 먹고 합시다. 쫌'

정 안될 것 같아 몇 번 혼자 저녁 먹으러 갔지만 자주 그러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일과의 싸움도 괴롭지만 배고픔과의 싸움도 만만치 않다. 몸이 배고프다고 소리 지른다! 젠장.


그렇게 늦은 저녁을 먹고 10시가 넘어 퇴근한다. 후아~ 그래도 퇴근 후 밤공기는 상쾌하다. 출근 후 처음 맡아보는 바깥공기인가. 머릿속에 과장님과 좀 전에 나눴던 얘기들이 떠오른다. 계속 그렇게 버티다 보면 버틸 수 있다는 말, 진짜인가.


'강철 멘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이 흔들려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게 흔들리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깊은 회의감이 든다. 


그 과장님처럼 7년 넘게 회사 생활하면 그렇게 무뎌질 수도 있는 걸까. 숙련된 노동자의 손에 촘촘히 박힌 굳은살처럼 숙련된 사무직의 마음에도 굳은살이 덕지덕지 생겨야 하는 건가. 나도 강철멘탈을 가지고 싶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촉촉한 감성 멘탈을 잃고 싶지 않기도 하다. 회사원으로서는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뭐 이런 고민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도 아파하고 고민하다 굳은살이 배기겠지. 에이 모르겠다~ 집에 가자!


(사진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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