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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Jul 20. 2021

바이러스와 인간, 생명이라는 것

아무리 의료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결국 생명은 신의 영역인가

바이러스는 인종과 나라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침투한다

작년 초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시아를 거쳐 몇 개월 만에 유럽, 아메리카 등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에 흑암의 그림자를 드리우자 전 세계가 셧다운이 되었고 모든 활동이 멈춰 섰다. 선진국이라 하여 이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던 미국의 뉴욕 역시 코로나로 큰 상처를 입었다.


'팬데믹'이라 명명되는 이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속도와 그 영역을 살펴보면 정말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든다. 칭기즈칸도, 알렉산더 대왕도, 히틀러도 이루지 못한 전 세계 정복을 코로나19는 기어코 해내고 말았다. 한 치의 자비 따위는 없는 아주 무서운 '죽음'의 얼굴을 한 채 말이다.


손만 잘 닦으면 사라지는 바이러스, 몸에만 들어오면 치료제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짜 무서운 것은 치료제와 완벽한 백신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2차, 3차 변이까지 생기면서 그 공포가 날로 더해지고 있는데, 뭔가 획기적인 치료제와 백신을 기대했던 우리들의 바람과 달리 현시점까지도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은 마스크를 잘 쓰고 손발을 수시로 깨끗이 닦는 것이다.


'그게 다인가...?' 싶을 정도로 막연한 해법에,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손에 묻어있는 온갖 더러운 바이러스와 세균들만 물로 잘 닦아내도 질병의 7~80%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편, 흐르는 물에만 씻으면 해결되는 이 코로나가 몸에만 들어오면 치료제가 없는 심각한 바이러스가 된다니 놀랍고 역겹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조그마한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을 만나기 전까지는 무기력한(?) 존재였다가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으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슈퍼 전염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된다는 게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차라리 넷플릭스 <킹덤>처럼 좀비라도 나오면 무찌르면 그만이지만, 바이러스는 무찌를 수도 없다. 아주 약하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조그만 바이러스가 이토록 거대한 시스템인 국가와 민족을 흔들어 놓는 것을 보면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생명(LIFE)이라는 것

메디컬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인데, 드라마에는 종종 이런 장면이 나온다.


숨이 다해가는 환자의 보호자들, 주인공인 의사에게 감정이 격해져 불평하듯 이야기하는데...


"왜 하라는 데로 했는데 죽어가는 거냐고요! 왜!! 당신이 책임져!"


물론 재미를 위해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의사라면 충분히 실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또는 관계된 사람이 죽거나 죽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그걸 그냥 멍하게 바라보겠는가. 누군가는 그 슬픔과 아픔을 담당 의사에 대한 분노로 쏟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건 분명 옳지 않은 것이지만, 죽어가는 이를 향한 마음이 그토록 애달프겠거니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헌데 또 하나 공통점으로 발견되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하는 대답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죽을병에 걸리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죽을 수밖에 없다. 자연의 생리인걸. 너무 잔혹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정말 그게 사실이다. 임종이 코앞인 한 인간에게 명의가 온들, 최첨단 의료기기 온들 별다른 소용이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평안한 길이 되길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기도 아닐까. 그게 바로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마음의 준비인 것 같다.


과학은 인간의 생명 끈을 엄청나게 연장시켜 100세 시대를 열었다. 놀랍다. 다만 그 기술 역시 한계가 있어 때로는 신이 만든 인간의 자가 치유력에 의지해야 하고 때로는 의료적으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바라야 할 적도 있다.


자가 면역력이라는 것은 참 신기해서 아직 의료 기술로도 다 밝히지 못했다. 코로나만 보아도 누군가는 자가면역으로 치유되고 누군가는 극복하지 못하고 신체에 심한 피해를 입든가 아니면 안타깝게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어떻게 치유가 되었는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아직 우린 정확히 알지 못한다. 오직 신만이 이를 알 뿐


나의 어리석은 생각, 반성과 회개

코로나 사태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바라보며 참 많이 반성하고 회개했다. 코로나가 처음 터졌을 때, 회사는 어려움에 처했고 월급은 깎이고 일은 늘었다. 과로로 너무 힘이 들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차라리 코로나 병에 걸려서 집에서 쉬었으면 하는 멍청한 생각이었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물론 그만큼 힘이 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지만 나와 내 가족, 나의 지인들, 회사 동료들, 그리고 내가 다녀간 모든 발자취를 생각하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얘기지만 <유 퀴즈:시즌3> 1편에서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받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인터뷰를 시작으로 코로나 맵 개발자,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분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분들의 인터뷰가 방영되었다.


보는 내내 펑펑 울었다. 특히 의료진들이 담담하게 자신의 희생을 "괜찮다"라고 말했을 때, 하염없이 울었고 대구시 의사회장인 이성구 교수가 눈물 어린 호소로 올린 편지글을 보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아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것인가...?'

그 순간 진심으로 이 땅에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속히 없어지길 기도했다.


 줌의 기도, 소망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는 등 희망적 이야기도 들려오지만 저 멀리, 아니 어쩌면 아주 가까이 들려오는 변이 소식에 다시 소름이 끼친다. 언제쯤이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치료제는 언제 나올까. 치료제가 나오기는 하는 것일까?


이런 암울한 상황에 단순 사무직 노동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신에게 기도할 뿐이다. 기적이 일어나길. 나는 비록 개발자도, 의사도, 공무원도 아니지만 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사람이기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명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신의 영역이라면, 

나의 기도 역시 밤낮으로 코로나와 사투하는 분들과 맞먹을 만큼 중요할 것이다. 


한 줌의 기도이지만 그 한 줌의 기도가 쌓여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힘이 되길. 이 땅을 주관하는 신께서 우리에게 선한 뜻과 따뜻한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기도는 바람이 되고 바람은 소망이 된다. 그 소망이 언젠가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이 글은 의학 전문적인 글이 아니고 그간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본 에세이 글로, 의학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 사진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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