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발걸음을 끌고 회사로 향하는 길, 졸음이 깨질 않아 걷고 있는 건지 자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삶의 활력소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지 그 답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쯤,
문득 버스 창 밖으로 제 시선이 머문 순간이 있었습니다.
교문 앞에 서있는 어린 딸과 아빠였는데요. 딸은 초등학생쯤 돼 보였고 제 몸만 한 큼지막하지만 귀여운 책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딸은 아빠와 인사를 하고 교문으로 들어갑니다. 아빠는 딸이 들어가자 가던 길을 마저 가려다 고개를 돌려 딸이 잘 있는지 확인합니다.
딸은 이미 교문을 훌쩍 넘어 홀로서기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아빠는 그런 딸을 몇 초간 쳐다보다, 딸이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확인하곤 안도한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덜터덜 갈길을 갑니다. 아마 직장을 향하는 것 같습니다. 딸은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를 만나 재잘거리며 밝게 웃으며 걸어갑니다.
그 모습이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아빠. 그리고 홀로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듯 당당하게 걸어가는 딸아이
그렇게 생각하며 버스는 길을 지나가버렸고 그 부녀의 모습도 제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쉽지 않은 직장생활에도 가끔 해 뜰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이 가끔 있더라구요.
갑작스럽게 누구 대타로 들어간 회의에서 내가 아는 내용이라 의견을 물어봐도 자신 있게 답하고 또 어쩔 때는 예리한 질문도 하고 그렇게 만족스러운 회의를 마친 날,
무슨 용기인지, 평소 관계가 애매모호해 말도 잘 안 섞던 이와 '안녕하세요'하며 밝게 웃으며 서로 인사하는 날,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맑고 일에 집중할수록 모든 술술 풀리는 것 같은 날,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오면 더 좋은 날, 그런 날을 살아갈 때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날도 무수히 많긴 합니다만...
그런 날도 있어야겠죠. 아니 있어야만 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잠시 밖을 나왔습니다.
계속된 회의에, 부장님의 고리타분한 고집에, 지쳐있을 때쯤 시원한 바람이 열기를 식혀줍니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그런 외로운 공간이라 느껴졌던 이곳, 살랑이는 바람에 마음이 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