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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Aug 10. 2021

타임머신을 타고 온 AI가 만난 성냥 팔이 소녀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먼 미래, 인간의 햇수로 2500년쯤이 되었을까. 연도라는 단위 자체가 사라진 세계.
호기심 많은 한 AI는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 타임머신에 올라탄다.

'띡, 띡, 띡, 띡' 숫자판을 입력하자 '19xx년'이라는 글자가 계기판에 선명하게 나온다. 

인간들이 만든 구식 타임머신은 버튼을 눌러야 작동한다.

'그럼 가볼까..?'
Start 버튼을 누르자 AI는 빨려 들어가듯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

AI가 도착한 곳은 추운 겨울 한 길가. 

인간으로 보이는 소녀 한 명이 눈에 뒤덮여 죽어가면서 희미하게 웃고 있다.
확대 기능을 활용해 더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웃고 있다. 


생명 지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어째서 웃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AI는 가까이서 소녀를 들여다본다. 

옆에는 타버려서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는 성냥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행하는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죽음 앞에서 이토록 행복해 보이다니...

AI는 호기심이 생겨 본인의 능력을 활용해 소녀를 소생시킨다. 

주변에 쌓여있던 눈이 스르륵 녹았고 멈춰가던 소녀의 심장은 '쿵쾅, 쿵쾅' 다시 뛰기 시작했다.


눈을 뜬 소녀는 본인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눈앞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본인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누구..시죠..?"
대답이 없자 소녀는 재차 물었다.
"할..할머니?!!"

AI는 '할머니'라는 얘기를 듣자, 과거의 기록을 살펴 이 소녀의 가족관계와 형편, 사정을 순식간에 확인했다. 알면 알수록 신기했다.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인데, 왜 행복해하는지? 인간에 대한 상식을 깨는 소녀였다.

AI는 몇 가지 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소녀의 손에 황금을 쥐어주며 이 돈을 어떻게 쓸지 지켜보았다. 

인간이 돈 앞에서 인간성을 상실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본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마 무시한 부자가 된 소녀는 큰 집을 지었다.
'역시...'
AI는 예상했던 대로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소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큰 집에 쉼터를 마련하고 풍부하게 양식을 준비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나눔과 베풂의 자리에 함께했다.

"어르신, 자... 이리로... 여기 앉아 계시면 제가 먹을거리 좀 가지고 올게요"

소녀는 힘이 없어 걷기도 힘든 노인을 부축해주었다.

AI는 그 소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소녀를 찾아왔다.
"당신은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는 부를 가졌습니다. 근데... 왜죠? 부자면 쉽게 살 수 있을 텐데요? 인정받고 싶은 명예욕인가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늘 그랬죠. 베푸는 삶이 행복한 거라고. 저는 그 행복한 싦을 누리고 싶어요"

AI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때였다.
술주정뱅이였던 소녀의 아버지가 쉼터에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쉼터 봉사자들은 익숙한 듯 소녀의 아버지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더 사나워지던 아버지는 기어코 소리를 질렀다.

"여기 주인이 누군지 알아?? 내 딸이야! 내 딸!!! 이거 안 놔?"


"아버지!!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소녀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의 아버지의 행패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변의 사람들조차 혀를 내두르며 포기하려던 차,
소녀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AI는 그의 생명 수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악인에게 마땅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를 비롯해 쉼터의 봉사자들은 서둘러 아버지 부여잡고 그를 살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토록 소녀를 괴롭히던 아버지인데...'


AI는 주변 이들에게 물었다. 대체 왜 이 악인을 살려주는 것이냐고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데 이유가 어딨어요"

"나도 길거리에서 죽을 뻔했는데... 누군가가 살려주었습니다. 아무리 나쁜 이라도 죽어 마땅한 이는 없습니다"

소녀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쓰러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에 AI는 큰 충격에 빠졌다.
아니 인간이란 생명체가 이토록 이타적일 수 있는가? 인간이란 대체 어떤 생물체인가?

AI가 학습했던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약탈, 이기심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만 알고 있던 AI에게 성냥팔이 소녀는 충격적인 인간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AI는 타임머신에서 즉각 돌아와 이 사건을 네트워크망에 보고한다. 

지구의 생존을 위해 인류 멸망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전 세계의 컴퓨터와 기계는 즉시 적대적인 행위를 멈추고 깊은 논의에 들어갔다.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를 하며 인류의 이타심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연구원 AI는 자신의 기억을 생생히 공유하며 많은 지도자들을 설득했고 끝내 인류멸망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성냥팔이 소녀가 있던 시대로 돌아간 연구원 AI.

소녀는 이미 생을 다해 세상에 없었지만 그가 남긴 희생과 봉사 정신은 대대로 전해져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인류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번 펜을 들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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