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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Apr 15. 2021

"지켜보고 있는 거 다 안다"

견생 만렙 19살 노견 방구와 누나의 눈치게임

출근을 앞두고 있는 아침. 막 집을 나서려는 찰나 19살 노견 방구 녀석이 현관문 쪽으로 쫄래쫄래 걸어온다. 걷는 것도 성치 않는 녀석이 힘겹게 걸어와선 아련하게 쳐다보고 있다. '엉아, 어디가?' 하는 표정으로.


'어라? 이러면 곤란한데'

노견 할배들에게 안 걸리고 집을 나서려던 계획이 실패했다.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방구를 번쩍 들어 안아 다시 본인 자리에 눕혔다. 편안한 듯 꿈벅꿈벅, 졸린 눈을 감는 방구. 조금 더 쓰담쓰담해주고 싶지만 시간을 보니 이제는 정말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다행히도 방구가 잠든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뒤로 옮기며 등을 돌린 순간, 느낌이 쎄하다.

 

"어..?"

뒤를 돌아보니 잠들었던 방구가 고개를 까딱 들고 쳐다보고 있다. 이.. 이런... 어색한 눈 맞춤이 민망하다.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기자, 어르신 방구께서는 힘겹게 이불을 걷어차고 친히 걸어 나온다.


"어르신.. 마중 나오실 필요 없다니깐요"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방구에게 장난 삼아 연신 손사래 쳤지만 역시나 방구는 들은 척도 안 한다. 이 녀석... 이러면 문밖을 나가기가 너무 미안한데..


"방구야!! 좀만 기다리면 시터분 오시니깐 잘 있을 수 있지?!!"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집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출근한 아내에게 온 카톡.

"여보, 내가 카메라(반려견용 CCTV)로 방구 보는 거 눈치챘나 봐, 얘 계속 카메라 쳐다봐..."

"에이 우연이겠지"

"아니야 이게 한두 번이 아니야 여보"

고개를 꺾어 카메라를 살펴보는 방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CCTV 앱을 켜자 방구가 휙 시선을 돌리며 카메라에 눈빛을 쏘아댄다. 그리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왈~!!!' 목청껏 짖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통해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방구가 알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CCTV를 또렷이 응시한 채 짖는 모습이 의아스러웠다.

"누나 어딨어!  방에 있는 거 아니었어? 설마 나 두고 나갔냐??? 엉아는 왜 없어? 아니 엉아는 없어도 누나는 있어야지! 다들 이러기야? 흥! 왈!!!"

방구의 그 모습을 아내가 위트 있게 해석해주었는데,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방구의 표정, 모습과 잘 맞는 것 같아 '킥킥' 소리 내어 웃었다.  


또 다른 어느 날. 나와 둘이 있게 된 방구가 아내가 집에 없다는 것을 금세 눈치챈 건지, 갑자기 카메라를 보고 짖기 시작했다. '왈!!'. 마침 아내가 푸구(푸돌이와 방구)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CCTV를 켰을 때였다.


그 모습에 놀란 아내는 "와 씨 깜짝이야! 여보! 방구가 나보고 짖네. 또 걸렸어..."라며 서둘러 CCTV를 끈다. 아내는 마치 몰래 훔쳐보다 걸린 사람 마냥 당황한 모양새였다. 방구와 아내의 그런 '밀당(?)'이 귀여웠던 나는 이번에도 아내에게 방구의 속마음을 해석해달라 부탁했다.

"누나! 누나 오디 가써!!! 왜 두부(필자)만 두고 나가써!! 누나!!!! 정말 이러기야?"
 

방구의 마음을 짐작컨대 이번에도 정말 그럴싸한 해석이었다. '씩씩'거리는 방구를 잘 달래주고자 안아주니... 녀석, 놓으라고 썽질을 부린다.


방구가 이렇게 투정을 부릴 때면 아내는 "아니 19살이나 먹었는데 누가 이렇게 땡깡부려? 어? 어느 멍뭉이가?"라며 얘기하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정말 우리가 반려견을 키우는 건지 애기를 키우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뭐 그 둘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도 아내에게는 큰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다.


누나를 향한 방구의 사랑은 정말!! 어지간하다. 어떻게 보면 남편인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방구가 아내를 찾는 갈구함이 더 깊은 것 같을 때도 많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카메라로 방구를 훔쳐보다 걸린 아내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여보, 방구 많이 화났데, 와서 잘 달래주길 바래^^ 난 이제 모르겠다? ㅎㅎ"

그 얘기에 아내는 "웅..기분 풀라 그래 짜식..."이라는 말과 함께 꼬리를 내린다.

아내를 너무 좋아하는 방구 덕분에 아내는 집에 오면 또 개육아 시작이다. 하하.  


아니 근데 방구야, 엉아 너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나로는 충분하지 않니?

그렇게 물어보면 "엉. 엉아는 돼쏘"라고 답할 것만 같다. 차라리 안 물어보고 말런다.

쳇!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지만 우리 부부와 이 귀여운 두 할배멍멍이의 일상은 성큼 다가온 봄 날씨만큼이나 따스하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오랫동안 이 평온함으로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눈칫밥 줘도 되니까 우리 오래 함께하자 방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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