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a Mar 06. 2018

결핍된 자들을 위해,
The Shape of Water

현실과 이상세계를 넘나드는 물의 유연성

오랜만에 정말 인상깊은 영화가 하나 나왔다. The Shape of Water. 이 영화는 결핍된 현실과 결핍없는 이상세계를 특이하게도 ‘물'을 활용해 대비시킨다. 등장인물과 공간의 분석을 통해 영화에서 드러나는 메시지를 좀 더 재밌게 느껴보자.


*본 리뷰는 스포일러 내용이 있습니다.



등장인물, 결핍의 코드


영화 곳곳 결핍의 코드가 등장한다. 일라이자가 버스를 기다릴 때,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케이크는 whole cake에서 단 한 조각만 빠져있었다. 


등장인물 대부분도 무언가 결핍되어있다. 일라이자는 기본적으로 농아이며, 말을 할 수 없다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라이자는 농아라는 물리적 장애보다, 남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자신을 봐 주지 않는 것에 대한 결핍이 더 크다. 


자일스에게 그를 구하러 가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장면에서, ‘그는 나를 아무 장애도 결핍도 없는 그냥 그 자체로써 나를 바라 봐 준다’고 울부짖는다. 그가 바로 일라이자의 결핍을 해소 해 준 인물이며, 이로 인해 그를 사랑하게 됐음을 알 수 있다.


정작 그는 일라이자가 결핍이 있는 지조차 알지 못했다


일라이자의 결핍을 정반대로 바라본 인물이 바로 스트릭랜드다. 스트릭랜드는 언제나 일을 완수해내지만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결핍이 있다. 


Creature(극중에서 그를 이렇게 지칭했는데, 이하부터 C라고 지칭하겠다)와 다르게 스트릭랜드가 일라이자에 끌린 이유는 농아라는 결핍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더군다나 그를 사랑해서가 아닌 해소 및 쾌감의 도구로써 활용하려 했다. (부인과의 잠자리에서도 그는 부인의 입을 막았다.)


스트릭랜드 관련하여 한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영화에서 드러난 스트릭랜드의 손가락과 C의 관계이다. 스트릭랜드는 C에 의해 손가락이 잘린 후 C를 잃는다. 애써 수술한 손가락은 회복되지 않고 검은 색으로 변해 썩어갔지만 스트릭랜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그는 C를 되찾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스스로 손가락을 끊어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제 더이상 그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없애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던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릭랜드 역을 맡은 Michael Shannon의 호연에 박수를



물의 공간


다시 일라이자 중심으로 돌아가자. 일라이자는 C를 계기로 점차 결핍을 극복하며 성장하는데, 재밌는 것은 변화하는 '물의 부피'다. 물을 담고 있는 공간(부피)이 커질 수록 일라이자의 결핍도 점차 사라진다.


물의 공간이 커질 수록 일라이자는 행복 해 했다


욕실 전체를 물로 채우고 사랑을 한 뒤, 일라이자의 세상 행복한 표정은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1에서 2로 가면서 사랑에 대한 결핍을 극복했고, 3 이후에는 (상상이지만) 육성으로 노래하며 장애를 이미 넘어섰음을 드러낸다. 


4에서는 심지어 C를 통해 다시 살아나 물 속에서 숨쉬는 모습까지 나오며 인간의 한계도 초월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꽤 열린 결말인 영화기에, 마지막 씬이 상상인지 현실인지 가늠하는 것은 각자 판단하기로 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만 주목하려 한다.) 


일라이자의 성장하는 모습은 스트릭랜드를 대하는 변화된 행동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스트릭랜드가 일부러 물컵을 쏟아 일라이자를 불러내 너의 결핍이 좋다고 표현했을 때에는 겁먹고 도망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C가 사라지고 행방에 대해 추궁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기색이 보이자 일라이자는 F.U.C.K.Y.O.U를 수화로 말하며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다.


사려깊은 젤다 덕에 Fuck you는 '감사합니다'로 번역(?)됐다



현실과 이상세계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기본적인 배경공간을 현실과 이상으로 나눈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일라이자의 집은 2층에 있고 그 아래에는 영화관이 있다. 마치 육지와 바다(혹은 강)처럼 구도 설정이 되어있는데, 이는 각각 현실과 이상세계를 대비시켜 드러낸다. 

 


결핍없는 이상세계 속(영화 속) 일라이자는 노래하며 춤출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C가 있다. C가 야생성을 드러내고(고양이 냠냠) 사라진 뒤 일라이자와 다시 만난 곳은 다름아닌 영화관이었다. 


C가 목욕탕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물이 1도 없는 영화관으로 가도록 굳이 설정한 이유를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일라이자가 욕실에 물을 가득 채웠을 때, 그 물은 아래 영화관으로 뚝뚝 떨어진다. 그 장면을 통해, 일라이자가 현실->이상세계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음을 드러냈다고 본다.



물의 모양, 그 유연함에 대해


일라이자의 절친, 자일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 또한 직장을 잃었고 연인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핍이 있다. 그림보다 사진이 각광받는 시대에 직장을 잃은 화가, 용기내어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사람. 


자일스는 과연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일까 앞서나간 사람일까? 고백 후에 돌아 온, “이곳은 Family Restaurant이다” 라는 대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가족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맛없는 케이크를 먹으며 자일스가 원했던 것 역시 사랑, 가족일 뿐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영화는 결핍된 인물들이 대부분 등장하지만 그 인물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일라이자를 통해 사람다움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사랑에 대한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어디에 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모양처럼 일라이자의 사고(思考)는 우리보다 유연하고,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 결핍된 자들은 등장인물들이 아닌 우리가 아닐까? 이는 The Shape of Water를 결핍된 자들의 영화가 아닌, 결핍된 자들을 위한 영화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나의 2018 올해의 영화에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끝맺음말 - C에 대해

사실 C에 대해서는 별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 C는 일라이자의 결핍을 극복하게 만드는 존재(극단적으로는 스트릭랜드 말처럼 God)정도로 기능한다. 


다른 등장인물처럼 결핍이 있다가 극복했다거나, 영화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주는 입체적 인물은 아니기에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물 없이 살 수 없으니 결핍이 있다고 본다면 할말음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