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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Oct 14. 2016

Sully

경험과 체계 사이 _ 매뉴얼의 딜레마


2009년 us airways 허드슨강 불시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꽤나 관심을 가졌던 사건인데 영화로 나온다는 소식을 보고 꼭 보겠다 다짐. 9월 말에 개봉하길래 교환 중에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교환 중인 오늘! 개봉했노라. 보았노라.


매뉴얼과 

경험


  중3이던 당시, 학교 마치고 집 온 뒤 뉴스로 소식을 듣고 혼자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수상 불시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고 (여객기가 수상 불시착에 성공한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프리카쪽 항공사의 보잉767이 납치되어 수상 착륙 중 대파된 사건은 유명) 당시 미디어에서 기장 ‘설렌버거’를 영웅으로 칭했기에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멋있게 보이기도 했다. 모든 엔진이 정지했다는 긴박한 상황 + 강에 착륙했다는 참신함(?) + 전원 생존 사실은 영웅이 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


  사고 초기에는 ‘그렇다더라’ 식의 사고 원인들을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이 경우 새떼가 항공기와 충돌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인지라 뉴스에는 온통 새떼 이야기 뿐. 사실 가장 궁금했던 건, ‘어떻게 강에 착륙할 판단을 내리게 되었는가’였다. 그리고 어떻게 착륙에 성공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새 이야기 그래도 집고 넘어가자면, 이 비행기는 Canada Goose (캐나다 거위)라는 조류와 충돌했었다. 날개를 펼친 길이가 내 키보다 (조금) 더 길며 무게는 무거우면 6kg가 넘어간다 한다. 하필 부딪혀도 이런 묵직한 애랑, 그 것도 떼로 부딪히다 보니 엔진이 남아나질 않았던 모양. 안타깝게도 사고에 연루된 새들은 모두 생존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조금 많이 더 묵직했기에.


  몇 달? 지나니 좀 더 전문적이고 자세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 흥미로웠던 것은 매뉴얼을 다 완수할 시간이 부족해 마지막 단계 중 하나였던 ‘ditch’ 버튼을 누르는 것이 생략되었고, 결과적으로 착륙 후 비행기 내부에 물이 새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Ditch를 누르면 외부와 통하는 구멍들이 닫힌다고는 하는데, 이 것이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궁금증은 네이버에. 아니 구글에.
*매뉴얼 읽는 게 걸려봐야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두 숫자를 제시한다. 콴타스 항공사 여객기가 비행 중 엔진이 폭발했을 때 모든 매뉴얼을 거치는 데 걸렸던 시간 50분. 위 이야기의 비행기가 물에 빠지기까지 걸렸던 시간 208초. 물론, 상황에 따라 읽는 매뉴얼이 다르다. 항상 50분씩이나 걸리는 것은 아니다.


  저 글 덕에 매뉴얼에 대한 생각을 좀 해보게 되었었다. 본디 사고라는 것이 각자 고유의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나름의 스토리가 있는 법인데, 물론 크게 분류할 수는 있겠지만, 고유의 상황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따라서, 사고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매뉴얼은 “상황에 맞춰서 적당히 알맞게”. 하지만, 내가 탄 비행기가 헤롱헤롱하면 과연 누가 태연하게 "상황에 맞춰서 적당히 알맞게" 행동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온 것이 매뉴얼. 해당하는 비상 상황 페이지를 펴고 순서대로 따라가면 된다. 상황 별로 분류도 잘 되어 있어서 저 상황에서 어떤 페이지를 펼쳤을 지, 당시 땅에 있었던 우리도 알 수 있다. 바로 “Dual Engine Failure” 챕터.

  영화를 보면 조사를 받는 부기장이 이런 말을 한다. “그래요 기장이 매뉴얼을 완벽하게 따른 것은 아니에요. 엔진이 멈춘 것을 확인하자 설리는 APU를 바로 켰죠. 근데 APU 매뉴얼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무려 리스트 15번째에 있어요.” APU는 보조발전기(Auxiliary Power Unit)라는 뜻으로 엔진을 대신해 전기, 유압력 등을 발전하는 장치를 의미한다. 비상시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장치가 매뉴얼 15번째라니?
  진짜일까 싶어서 찾아봤다. 

  https://www.scribd.com/doc/40845421/airbus-QRH

  1.16 파트를 보시라. 15번째 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밑에 있는 건 사실이다. (When Below FL250, APU (IF AVAIL)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수상 착륙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다른 장에 있다. 1.19 파트에. Ditching은 물에 빠지는 것을 의미.

QRH. 이 책 한 권에  웬만한 대처법이 다 들어있다.

  무튼, 저 대사는 매뉴얼의 한계를 콕 집고 있다. 워낙 긴박한 상황일 때, 매뉴얼보다 앞섰던 경험에서 나온 행동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매뉴얼을 훑어보면 FL250 등등의 용어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FL250은 25000ft를 의미하는 것으로 매뉴얼이 상대적으로 고도 여유가 있는 순항 상황, 혹은 순항에 준하는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문제는, 해당 비행기가 새랑 부딪힌 고도는 고작 2700ft였다는 것. 이륙 후 1분 정도 뒤의 고도, 지면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3분 남짓인 고도.



사건의 특이성과 

체계화의 딜레마


    이 사고가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매뉴얼이 사고 상황의 특이성을 담지 못했다는 점 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두 조종사가 일단 경험에서 나온 초기 수습을 훌륭하게 해낸 "다음에", 기장이 수동 조종을, 부기장이 매뉴얼을 처리해나갔기에 사람들을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결론이 나기까지 기장의 초기 수습 과정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기장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데(영화에서도 나온다) 어쩌면 체계적인 매뉴얼과 특이성을 담아내는 경험의 갈등이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영화는 공학적 사실 이외의 휴먼 팩터가 응급 상황에 적용되고, 그로 인해 기장 설리의 업적이 인정 받는 과정을 그린다. 정확하지만 획일화된 매뉴얼, 신뢰도는 떨어지지만 유연한 경험. 시간이 많다면 전자가 낫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말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모든 것을 체계화 하는 것이 안전 측면에서는 좋은 것이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응급 상황에서는 그런 사람마저 완벽해야 하기에. 하지만 체계화된 매뉴얼이 필요로 하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부족한 긴급 상황에서의 안전성은 여전히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사실 위 논쟁은 꽤 오래되고 진부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귀한 사례가 나왔기에, 당연하고 진부한 논쟁 거리라도 다시 생각해볼 이유가 되는 것일지도.


P.S. 영화관이 텅텅 비어서 혼자 가운데 떡 자리 잡고 행복하게 봤다. 하핫.

P.S.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이는 영화. 적어도 항덕 눈에는,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2016.09.10. Pathe, Delft
영화를 보고 흥분한 마음에 버거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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