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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쓰기] 8. 이은경 작가 책을 다시 봐야겠다

by 엄마다람쥐

강렬하게 와닿았던 "일어나자마자 무조건 쓰세요" 외에 다른 세부사항은 기억나지 않는다. 눈 뜨자마자 하지 말라는 건 기억나는데 하라는 건 오로지 "쓰세요"만 머릿속에 남았다. 전날 주제를 정하고 자야하나? 뭐에 대해 쓸지 조금이라도 쓰고 자야 하나? 아니 눈 뜨자마자 앉아서 빈 화면을 보면 이 화면과 내가 처음 만나 어색해 죽겠는 상황인 거다. 정말 딱 그렇다. 선보는 상황이면 대략 물어볼 말의 종류가 있다. 여기 오시는 길 어땠냐, 뭐 좋아하시느냐, 혹시 게임을 하시느냐, 아이들을 좋아하시냐, 쓰다 보니 남편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질문이다.


면접이면 면접에 나온 질문에 대답을 하면 되는데 이 하얀 화면은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떤 표정도 갖지 않은 사람을 마주한 느낌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 그래도 한국어를 하는 사람일 테다. 내가 쓰는 말을 알아듣기는 할 테니까. 아니지 인공지능이 동시통역을 다 해주니 나와 전혀 다른 문화권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되겠구나. 빈 화면이 무서운 것도 있다. 왜냐하면 무표정이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약간의 미소를 머금으며 이야기 해보세요 한다면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나올법하다.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면 덜덜 떨겠지만은 그 사람 기분 풀리게 하려고 나는 말을 시작할 것이다. "자두바 먹어보셨어요? 엄청나게 셔서 처음에 먹으면 깜짝 놀래요. 그런데 그 뒷맛은 달콤하고 시원해서 또 먹고 싶어져요. 저희 동네에는 안 팔아서 마트에 꼭 자두바를 팔아달라고까지 했는데 안 보이더라구요."


무표정. 아무 관심이 없고, 네가 말을 하든 말든 나는 모르겠다 하는 표정, 나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 않은 표정. 그게 무서운 표정보다 더 무섭다. 키보드에서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화면을 마주하고 한 번 숨을 쉬고, 그래도 손가락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속으로 '뭐 쓰라고... 어떻게 시작하라고... 아 계속 나만 쳐다보네... 화면에서 뭐라고 말 좀 해보지' 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그래서 또 이은경 작가가 생각난 것이다. 뭘 쓰라고 했지?. 어떻게 시작하라고 했지? 작가님은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에도 메모를 하고 글을 쓴다고 했다. 그렇다면 메모한 것들로 쓰기 시작하시나? 분명히 책 속에 쓰셨을 텐데 나의 독서에 문제가 있다. '쓰세요'에 제대로 꽂혀서 다른 부분을 설렁설렁 읽은 것이 티 난다. 오늘 당장 도서관 2층에 올라가서 계단을 돌아 000번과 001번 책장을 지나 직진하고, 500번 책장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서 400번 책장을 지나친 후 왼쪽으로 돌아 바로 나오는 800번대에 꽂힌 <이은경의 글쓰기>를 다시 빌려야겠다. 이번엔 쓰는 방법을 기필코 찾고 말겠다!


image.png?type=w773 Photo by Mediamodifi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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