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등에는 멈추자. 무시하면 사고난다
하루에도 수없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 이제 버스가 출발 합니다”
핸드폰을 보며 손잡이를 잡지 않고 묘기 부리듯 중심을 잡고 있는 승객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신할 것이다.
충분히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저속에서의 급브레이크가 일으킬 참사를 상상하지 못한다.
버스가 시속 20~30km 저속에서 출발하다 갑작스럽게 멈추면 대다수의 승객은 차 앞으로 튕겨져 날아간다.
화성 교통안전공단 수업시간에 몸소 체험한 일이다.
균형감각만으로 몸이 날아가는 것을 절대 멈출 수 없다.
가끔 버스 앞으로 승용차가 급가속하며 끼어드는 경우를 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멈추는 순간 승객이 앞으로 쏠려 넘어지는 (버스기사들은 이런 경우 ‘쏟아진다’는 표현을 쓴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승용차간 교통사고가 나면 몇 명의 대인사고가 발생하지만, 버스와 사고가 나면 대물사고를 포함한 수십 명의 대인사고가 발생한다.
아무 탈 없이 끼어들기에 성공했다면 그 운전자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버스를 오래 몰아 이제 은퇴하고 촉탁직으로 근무하는 선배 운전기사의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엔 매우 거칠게 운전을 했다고 한다.
버스 자체도 썩 좋지 않았겠지만, 지그재그로 달리기도 하고 급정거도 많았고 덜 정비된 도로를 과속으로 달려 심하게 덜컹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 선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때는 이상하게도 차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별로 없었어”
차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안전사고의 주된 이유는 손잡이를 잡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도 종점에 도착해 하차하기 전 한두 번 이상은 반드시 넘어질 위기가 찾아온다.
평온하고 큰 어려움 없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손잡이를 느슨하게 잡는다.
넘어질 일이 있으리라 생각지 않고 인생이라는 버스 위에서 핸드폰을 보며 두 다리로만 호기롭게 균형을 잡는다.
평온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 속 사소한 ‘갈등’이라는 돌부리에 걸리면 작은 흔들림에도 휘청거린다.
심하면 넘어지기도 한다.
신혼시절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다투곤 했다.
시간이 지나 구체적 사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느 때처럼 다투고 난 뒤 화가 많이 났는지 이날은 아내가 집을 그냥 나가버렸다.
서울에서 신혼을 시작한 아내는 막상 집을 나서니 별로 갈 곳도 없었고, 만나서 이야기 할 사람도 거의 없었다.
아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성난 마음을 차분히 하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복잡한 마음과 다양한 생각을 하고 한숨을 쉬며 돌아온 집은 비밀번호를 눌러도 열리지 않는다.
놀랍게도 현관에 설치 된 잠금장치 모두 잠겨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들어오지 않는 줄 알았지” 하며 문을 열어 준 것으로 기억난다.
대화방식이나 성격차이, 습관의 다름 등 갈등의 원인은 수없이 많다.
각자 보유한 능력치 또한 다르다.
정리를 잘하는 내가 아내가 주방 정리 하는 것을 보면 부족한 부분이 계속 보이고 마음이 답답해진다.
길치인 내가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을 보면 아내 역시 속이 터지고 잔소리가 나온다.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이것도 못해?” 하는 외침이 수시로 터져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고 갈등이 깊어도 우리 부부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잠은 반드시 같이 자는 것이다.
이 원칙은 28년 결혼생활동안 거의 지켜졌다.
아내의 짧은 가출이 이루어진 그날도 변함없이.
덜컹거림 속 손잡이가 되어 준 원칙을 지키며 살다보니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손잡이가 되었다.
퇴사 후 사업실패라는 가족 공동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흔들림을 잡아주는 아내라는 손잡이 덕분에 오늘 내가 존재한다.
하루 종일 버스를 모는 행위는 힘들지만, 나는 버스를 몰며 아내의 손잡이가 된다.
마음 기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