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때 오열하진 않았다

by 날아라빌리

학부모 상담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7살 무렵이었다.

아이가 산만하다, 수업 시간에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그때부터 듣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머니, 혹시 많이 바쁘신가요? 약간의 책망 섞인 질문도 그즈음부터 받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직장에서 가장 고단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라 아이를 친정 엄마한테 맡겨두곤 무신경하긴 했다. 남들은 육아휴직까지 하며 아이 돌보기에 집중한다는 초등학교 1학년 시기에도 아이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출근했다가 잠들어 있을 때 퇴근하곤 했기에 실제로는 주말에나 만날 수 있던 날도 꽤 많았다.


2학년 2학기의 상담 때 들었던 이야기 속에는 그 '산만함'이 좀 더 구체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선 아이가 늘 수업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교과서를 제대로 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과하게 말해야 알아듣는 타입이며 수업 중에 엉뚱한 소리를 곧잘 한다고 하셨다.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며 상대방의 마음 또한 전혀 읽으려 하지 않는다고도 하셨는데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집에서의 아이는 누구보다 분위기를 잘 읽는 편이었고 상대방의 마음을 빠르게 짚어내고 있었기에 내 입장에선 가끔 아이의 감정선이 애답지 않게 너무 예민하다 싶을 정도였는데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한다니? 아이는 남의 기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자신의 기분도 정확하게 말할 줄 알았기에 그것만큼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이는 그저 내 기분이 어떤지를 살피며 끊임없이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때만 해도 그 '산만함'에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ADHD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그저 공부하기 싫어하는 개구쟁이 정도였으며 특별한 문제가 도드라져 보이진 않았기에(TV에 나오는 '금쪽이들' 같아 보이진 않았다. 정말이지, 전혀.) ADHD 검사를 미룬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내 아이가? 설마. 그냥 쟤는 좀 장난꾸러기인 거야.

남편은 늘 "남자애들이 다 저렇지 뭐. 나도 어렸을 때 저랬어."라고 말했는데 내심 그 말에 동의하며 조금 무심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꽤 걱정하긴 했지만 아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았고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니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3학년이 될 무렵쯤부터 아이는 조금씩 달라져가는 거 같았다. 아이 말대로라면 교과서도 잘 펴고 있다 했고 친구들과의 다툼으로 상대 엄마한테서 오는 전화도 거의 없었다. 집에서 공부를 시켜봐도 전보다는 꽤나 집중하여 잘 해내고 있었기에 '거봐, 역시 아무 문제없었어.' 조금씩 마음이 놓이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3학년 담임과의 상담에는 이전보단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거 같다. 기껏해야 장난이 심합니다, 산만하네요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제 얘기를 어디까지 수용 가능하실까요?"라는 선생님의 말에 적당한 표정을 유지한 채 왈칵-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 삼키며 참아낸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퍽 대견하다.

나의 유리 멘털로는 꽤나 잘 버텨낸 것이었다. 역시 까다로운 사회생활로 잘 단련된 덕에 자아가 몇 개씩 생긴 것이 틀림없다.


선생님은 단순히 산만함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정서적 결핍이 있어 보인다 하셨다.

핸드폰 게임에 중독된 듯 현실감각이 없고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수업 중에 교과서는 거의 100% 펴지 않고 있으며 전담실에 가야 할 시간인데도 그저 멍하니 있다고 했다. 언어능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말투가 거칠며 다른 사람의 기분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듣고 있는 나는 울지 않고 있었는데 말하는 선생님께서 울고 계셔서 결국 나도 조금 울고 말았다.

선생님은 풀배터리 검사(종합심리검사로 ADHD검사와는 조금 다르지만 ADHD를 검사할 때도 사용하는 것 같다)를 권하셨고 가능한 빠르게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어머니, 아이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라고 하셨을 때 그쳤던 눈물이 다시 조금 흘러내렸다.


집에 오자마자 참았던 오열을 쏟아내며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했다. '풀배터리 검사'라는 말이 생소하여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풀패키지 검사'로 검색하기도 했다. 검색하면서도 '정신건강...'이라는 그 단어 자체의 무게 때문에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내가 실제로 이런 종류의 병원을 검색해서 진료를 예약하게 될지는 몰랐기에 '이게 정말 무슨 일이지?' 한없이 당황스러웠고 큰일이라도 난 것 같이 느껴져 무섭기도 했다. 진작에 저질렀던 어떤 잘못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그에 대한 처분이 떨어진 것 마냥 얼떨떨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내가 잘못했다 치자. 근데 그게 이럴 정도야?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이래?

계속 그렇게 눈물이 났다.


몇 군데 병원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예상보다 초진 날짜를 잡기가 힘들었다. 유명한 병원들은 초진에만 일 년이 걸렸다. "내년 4월에나 가능하세요~"라는 대답에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우습게도 '안도'였다.

아, 이런 아이들이 많구나. 우리 아이만 그런 건 아니구나. 4~5군데 병원에 더 전화를 걸었고 예약이 꽉 차서 당장은 진료가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빠른 속도로 마음이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역시나 사람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나 나약하고 비겁하구나 생각했다.

3월 말 초진 후 4월에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예약을 했다.


이미 울만큼 다 울었고 다소 힘들었던 초진 예약 덕에 오히려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다.

내 아이의 문제는 뭘까. 그게 과연 '문제'가 맞을까. 내가 놓친 것은 뭘까. 사랑이 부족했던 걸까.

최대한 덤덤한 마음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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