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의 머쓱 폭격이 시작되었다

머쓱타드

by 날아라빌리

아들이 3학년이 되면서 학교 소식을 접하는 플랫폼이 달라졌다. 1학년때는 하이클래스, 2학년때는 학급 밴드를 통해 숙제나 준비물, 학교 일정 등을 챙겼는데 올해는 클래스 123이라는 플랫폼이었다.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접속하라는 통신문을 보고 그날 당장 다운로드하여 가입했다.

메뉴는 간단했다. 쑥쑥통신엔 통신문을 확인하라는 내용이나 숙제 등이 올라왔고 보드엔 시간표가 있었다.

이게 뭐지? 하며 조금 의아했던 것은 '오늘의 으쓱머쓱' 이라는 메뉴였다. 이것저것 눌러가며 살펴보니 으쓱과 머쓱 아래로 세부항목이 있었다.

<으쓱 상세내역>
학교행사에 적극 참여해 주셨어요
수업태도가 정말 좋았어요
학급에서 맡은 일을 잘해주었어요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훌륭해요
숙제를 착실하게 잘했어요


<머쓱 상세내역>
질서를 잘 지켜주세요
부정적인 말이나 욕을 쓰지 말고 좋은 말만 사용하세요
숙제를 성실하게 해 주세요
규칙을 잘 지켜주세요
친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학습태도에 대한 어떤 보상제도 같았다.

첫날. 아들은 '수업태도가 정말 좋았어요' 라며 으쓱을 받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기본 세팅값인가 싶었지만, 그다음 날은 '발표를 자신 있게 잘했어요'가 왔고, 그다음 날은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훌륭해요', 또 다음 날은 '미션수행완료'가 왔다.

연이은 으쓱의 행진에 당황했다. 우리 아들은 빌런 상위권에서 1,2등을 다투는 아이이므로 이렇게까지 으쓱이 온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너 요즘 발표 잘해?" 했더니 아들이 놀랬다. 엄마가 또 왜 그러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살피더니 "내가?" 하며 잠시 생각한다. 그러게 말이야. 네가 그랬다는데.

"아, 그건가? 그건 아닐 텐데." 아들이 고민하고 있는 '그거'가 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으쓱으로 이어질 영광의 순간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이렇게나 끊임없는 으쓱이라니. 이건 마치 짝사랑하는 선배한테 고백했다가 '물론 넌 너무 귀여워. 진짜 귀엽지. 다들 너를 귀여워해. 하지만 말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의 기분 같았다. 끊임없는 속삭여지는 '귀엽다'의 뒤에 숨겨진 거절의 뜻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얼마 후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상담을 하며 선생님과 나, 모두가 눈물을 조금 흘렸다. 나보다는 선생님이 조금 더 눈물을 흘렸던 거 같다. 나는 눈에 살짝 고이기만 했는데 선생님은 결국 흘러내렸다. 어째서 여자들은 이렇게 잘 우는 것일까.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하던 현겸이 생각이 났다. '우리 아이는 언플러그드 보이입니다.'라는 말을 하며 내가 갑자기 일어서서 '물론 저도 슬플 땐 힙합을 추죠.'라고 한다면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까. 그 와중에 그런 생각들을 했다.

선생님은 몇 주간 지켜봤던 아들의 학습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문제들을(산만함, 거친 언어, 집중력 부족) 정확하게 이야기하셨다. 지체하지 말고 조치를 취하란 말씀도 하셨다. 나 또한 이쪽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 선생님들이 이런 말을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진심 어린 걱정이셨고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셨다.

아들이 상처를 받을까 봐 그동안은 일부러 으쓱만 줬다는 말씀도 하셨기에 눈물이 고여있던 와중에 박수를 치며 "아아~ 선생님! 어쩐지요. 으쓱이 자꾸 와서 제가 깜짝 놀랐다니까요. 정말 놀랐어요."라고 했다. 어쩌면 그 호들갑스러운 동작 때문에 고여있던 눈물이 조금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내 눈물 모아서 하늘에 편지를 써어~ (아련) 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며어어~~~언(호흡) 워어어어~~(애절)'

너무 과하고 흉하게 울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기에 머릿속으로 열심히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바이브레이션도 잊지 않았다. 서지원 노래는 언제나 최고다.


선생님께선 더 이상은 일부러 주는 으쓱은 없을 것이며 이제부턴 정확하게 상황에 맞는 으쓱과 머쓱을 주겠다고 하셨다. 허니문 기간이 끝난 것이다.

"네네. 집에서도 지도하겠습니다."

문득 요가 강사의 내레이션이 들리는 듯 했다. '자, 호흡합니다. 깊은 전굴. 이마가 완벽히 정강이'

강사의 호흡소리에 따라 호흡하며 깊은 전굴을 하듯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 뒤부터 정확하게 머쓱이 이어지고 있다.

머쓱의 종류는 다양하다. 부정적인 말이나 욕을 썼고, 숙제도 안 했고, 규칙도 안 지켰고, 질서도 안 지켰다.

"규칙을 안 지킨 건 뭐고, 질서를 안 지킨 건 뭐야?" 아들한테 물었더니 아들도 모른다고 했다. 그냥 전부 다야,라고 태평스레 대답한다. 그니까. 왜. 전부 다. 안. 지키냐고. 이 자식아!라고 빼액-소리 지르고 싶지만 최근 남편과 한 약속이 있다. 아들에 대해선 당분간 끝없는 믿음과 무한한 사랑을 주기로 했기에 일단 참는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가지런히 모으고 억지웃음을 보인다.

아하하하. 규칙이든 질서든 뭐든 다 재밌게 지켜야지, 응?


중간에 딱 한번 으쓱을 받았던 때는 학부모 총회 때 내가 갈 형편이 되지 않아 남편을 보냈는데(전교에서 아빠가 온 사람은 우리 아이뿐이었다) 그 덕에 받았던 '학교행사에 적극 참여해 주셨어요'였다. 철없는 아들은 머쓱 폭격 앞에서 너덜거리고 있는 어미의 심정을 알지도 못한 채 아빠 덕에 으쓱을 받았다며 어깨를 잔뜩 세우고선 '역시 아빠가 최고야.' 했다.


그제와 어제는 이틀 연달아 머쓱을 3개씩 받아 왔다. 3개씩도 받을 수 있구나. 조금 놀랐다. 곧 4개를 받을지도 모르겠구나. 각오가 필요했다.

"나는 '머쓱타드' 이게 하고 싶어서 머쓱 받고 싶다고 했던 건데 선생님이 좀 화나셨나 봐."

아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머쓱타드를 얘기한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머쓱을 받은 무안함과 그럼에도 괜찮은 척하고 싶은 아이다운 허세가 머쓱타드로 나왔을 테다.


허니문 기간에 받았던 으쓱 10개가 무색하게 머쓱이 폭격기처럼 퍼부어대고 있어 곧 머쓱이 으쓱을 앞지를 기세다. 아마 오늘쯤엔 머쓱이 이길 것이다. 고지에 선 듯 우쭐거릴 머쓱 앞에서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엄마도 머쓱타드" 하며 뒷머리를 긁적여야겠다.

아들은 틀림없이 자라고 있는 중이며 저를 향한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 함께 이 시간의 뒤에 서서 진실로 조금 머쓱해진 얼굴로 다정한 안도가 살짝 섞인 "머쓱타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너무 씁쓸해하지 말고 그저 잘 기다려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머쓱타드. 뒷머리를 긁적이는 자연스런 손짓과 조금 익살스런 표정까지. 이 또한 살짝 연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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