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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Apr 25. 2023

[편지] 뒷모습을 봐주는 사람

너에게 쓰는 편지

너한테 편지를 쓰기로 했어.

알고 있어? 몇 달 후면 우리가 결혼한 지 딱 10년이 돼.

우리 둘 다 기념일 같은 것에 무감하지만 그래도 10년은 좀 특별하니 그날까지 종종 편지를 쓸까 해. 

 

며칠 전에 사진을 정리했는데 내 뒷모습 사진이 많더라고.

나의 시선으론 영영 보지 못할 모습들이라 네 시선을 빌린 내 모습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봤어.  

알고 있지? 내가 뒷모습은 좀 이쁘더라?! 너는 자주 나한테 반하겠던데.

이것저것 들여다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떤 순간에서도 내 뒷모습까지 봐준 사람은 너였구나. 앞으로도 나를 바라봐 줄 사람은 너뿐이겠구나.


부탁이 있어.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마. 내가 혼자 있고 싶다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려도 가끔은 너만 아는 내 뒷모습들을 그 문 앞으로 데리고 와 줄래. 그럼 나는 백발이 된 할머니가 되어서도 네 등을 꼭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을게. 그것만큼은 약속할 수 있어.


우리가 주고받은 수많은 말의 의미들이 자꾸만 퇴색하고 있어.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흔해빠진 말이 되어버려 나조차도 내가 하고 있는 말들을 잘 모르겠어. 내 마음을 너한테 제대로 전한 적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알 수가 없어. 아이고, 참... 그러게...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뭘까. 그치?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약속할게. 네가 내 뒷모습까지 바라봐줄 때, 때때로 그 시선 속에 미움과 지침이 있다 해도, 네가 데려온 내 뒷모습을 마주할 때면 네 등을 꼭 끌어안고 말해줄게. 내가 가진 모든 온기를 전하며 내가 아는 모든 사랑을 너한테 얘기해 줄게. 네가 아니면 영영 볼 수 없을 내 뒷모습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너로 인해 새롭게 알게 된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하나 전부 너한테 얘기해 줄게.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나를 바라봐줘. 나의 문 앞엔 나를 봐주는 네가 있어야 해.


아침부터 비가 와. 이상하게 너는 이런 날씨를 좋아해서 출근하는 내내 네 생각을 하기엔 좋았어. 너의 날씨만큼 좋은 하루가 되길. 나는 이런 날을 너무 싫어하지만 너에겐 좋은 하루의 시작일테니 나도 그리 해볼게.


이따가 만나자.

 

네가 나를 봐줄 때 나는 좀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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