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쓰는 편지
혹시 너는 기억할까?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했을 때 말이야.
나는 그 순간이 도무지 기억나질 않아.
입술을 열고, 서걱대는 바람소리를 닮은 '사'를 시작으로 혓바닥을 천천히 안으로 굴리며 작은 동굴 소리를 닮은 '랑'을 말해놓곤 살짝 수줍어하며 후다닥 '해'를 떨어트렸을까?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헤집어보지만, 사실 잘 모르겠어. 나한테 '사랑해'는 여전히 그런 '사랑해'이니 그저 그리 상상해 보는 거야.
얼마 전 사려니 숲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 기억나?
걷다가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잖아.
숲 전체가 초록빛 햇살 속에서 하늘거리며 '샤샤샤'하다가 'ㄹㄹㄹ' 도 하다가 'ㅇㅇㅇ' 하며 속삭였는데 내 상상 속의 첫 '사랑해' 같았어.
네가 더 자세히 들었으면 싶어서 때때로 걸음을 멈추며 물었지. "이 소리가 뭐지?"
바람 소리잖아, 하는 네 대답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네가 틀렸어. 이제 와서 하는 소린데 그건 확실히 사랑해였어.
첫 사랑해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너한테 '사랑해'라는 말을 꽤 자주 하는 편이야.
오다 주웠다 하는 느낌으로 툭 던지듯 건네었던 사랑도 있고, 출근하는 뒤통수를 향해 내지르듯 건네었던 사랑도 있고, 다투고 난 후 미안함을 감추기 위해 건네었던 사랑도 있어.
그 사랑은 때론 응원이었고 연민이었고 사과였지만...... 있잖아, 난 그래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거든?!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움켜쥐었던 설렘의 'ㅅ'을 여전히 품고 있는 바로 그 'ㅅ'ㅏ랑이야.
그러니, 너는 어떨까. 종종 생각했어.
내 사랑은 내가 잘 아니까, 네 사랑이 말하고 있는 사랑이 뭔지 가끔 궁금했지.
내 사랑에 답하고 있는 네 사랑은 뭘까.
나는 스스로를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밝음과는 별개로 어둠과 불안도 컸구나 깨닫고 있어.
너의 포용과 허용은 삶에 대한 긍정보다는 어떤 체념에 가까웠기에 내가 너를 세게 붙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어.
나의 밝음은 그런 불안을 감춰야 했기에 조금은 과장되어 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모두 그런 양면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지 아님 내가 유독 스스로를 감춘 채 드러내고 싶은 면만 드러내고 살았던 걸까. 너는 그런 나한테 조금쯤은 질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던 요즘이었는데 문득 네 사랑 속엔 아마도 그런 나에 대한 이해와 인내가 있었구나 했지.
늘 사랑을 말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알지 못해. 항상 옆에 있지만 서로를 알아채기란 여전히 힘겨운 일이야. 우리의 언어와 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어. 우리는 조금씩 이해에 다가서고 있는 거겠지?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겠지?
언젠가 사려니 숲을 다시 걸어보자.
그날처럼 손을 꼭 잡아줄게.
그때 잘 들어봐.
그건 바람소리가 아니라 틀림없이 "사랑해"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