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주말 오후다. 놀이터에서 놀 수가 없어 아이는 집으로 친구 2명을 불렀다. 한 친구는 말 끝마다 겁나, 겁나, 겁나를 달고 있었고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보다 더한 말(이를테면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어 우리 아이와 어울리는 것이 꽤나 거슬리고 맘에 들지 않았지만 검사보고서의 내용이 생각나서 일단 내색하지 않았다. (.... 고 나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떤지 자신할 수 없다.)
아이들이 총싸움을 하며 거실을 뛰어다니는 동안 나는 잔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방문을 꼭 붙잡고 있었다. 결국 경비실을 통한 아래층의 항의가 있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이 모든 소란의 탓을 내 아이한테만 할까 봐 잠시 집을 나왔다.
집 근처 카페로 와서 라떼 한잔을 시켜놓고 이 라떼를 다 마실 동안 마음을 가라앉힐 생각이다. 불쑥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가장 구석 자리로 와서 입구를 등지고 앉았다.
최근 내가 쓰고 있는 글들, 어쩌면 당분간 쓰게 될 글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무작정 쏟아내고 있는 요즘의 글들은 과연 내가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글이다. 내가 뭔가를 쓸 때 비로소 조금이나마 솔직해진다는 걸 최근 깨달았다. 그 외의 나는 꽤나 가식적인 사람이었다.
아들이 결국 항우울제 처방을 받았다.
이건 내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상황이라 너무 놀라서 그 당시엔 네, 네, 네, 대답만 했다. 기껏해야 "부작용은요?" 그 한마디만 겨우 했다.
약을 받아 집으로 와서 아이에게 약을 먹이면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내 자식 입에 우울증 약을 밀어 넣고 있는 거네?!
아이의 검사결과는 불안이었다. ADHD는 아니지만 불안이 너무 심해서 ADHD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단기기억력과 순간집중력도 충분한 편이라 학습에 장애는 없는데 새로운 자극을 처리하는 능력이 상당히 낮아서 대처능력이 없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나 주의 전환이 필요할 때 저항하며 기존의 것을 고수하려는 특성이 있어 단체생활에 융화되기 힘들다 했다.
남편과 나도 심리검사를 같이 했기에 검사보고서에선 양쪽 부모의 특성과 아이와의 관계성을 아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었다.
양육자의 특성이 너무도 다르며 너무 다른 두 양육자의 너무 다른 양육 방식 때문에 아이가 혼란을 겪고 있어 자극을 처리하지 못하고 주변에 압도되어 멈추어 있다고 했다. 지나치게 예민하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에만 민감할 뿐 스스로의 안정감을 위해 다른 감정이나 상황에는 무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의사는 항우울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여태 전혀 몰랐었고, 그 말을 들은 지금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내 눈엔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 말은 나한테 내리는 어떤 형벌 같기만 하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나한테 이러는 걸까, 불쑥 눈물만 흐른다.
그렇지만 돌아서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기도 하다. 문득 윤동주 시인을 떠올린다. 그 아름다운 시인을 고작 나의 이런 사소한 안위를 위해 떠올려서 부끄럽지만 시인이 쓴 시 속의 우물을 떠올리며 그 안에서 어떤 초라한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가 미워서 뒤돌아 떠났다가 다시 그리워져 돌아가서 들여다보길 반복하고 있다.
아들의 검사보고서는 아들의 불안이 가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지나치게 통제적이고 엄격한 엄마와 지나치게 허용적이며 피상적인 아빠로 인한 아이의 혼란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대부분 나에 대한 것과 나와 아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도덕적으로 엄격하며 사회적인 가치와 시선을 중요시하여 밖에서 아이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오면 나는 그걸 나와 동일시하여 아이를 더욱더 통제하며 제지하여 주도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했다. 그것이 아이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까지 모두 맞는 말이었다.
내 아이의 오로라는 결국 나 때문이었다.
남한테 피해 주지 말라고 했지.
다른 엄마한테 전화 오게 하지 말라고 했지.
억울해도 그냥 참아. 맞고 오는 건 괜찮아. 절대 그 누구도 때리지 마.
한 번만 더 학교에서 전화 오면 너는 정말 큰일 날 줄 알아.
내가 아이한테 했던 말들이다. 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왔을 때 우습게도 나는 조금 안심했었다. 내가 사과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상대 부모에게 연락하는 일 따위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일은 내가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기에 나에겐 괜찮은 일이었다. 내 아이는 그때 외로웠을까...
자기 아이가 우리 아이 때문에 운다고 전화가 오면 우리 아이가 뭘 잘못했느냐 묻지도 않았고 무슨 상황이냐 따져본 적도 없다. 그저 죄송하다고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지도하겠다고 했다. 내 아이는 그때도 많이 외로웠을까...
나는 남한테 피해 주는 것이 너무 싫었고,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을 못 견뎌했으며,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일(주로 일에 관한 것들 뿐이다) 외엔 분쟁에 얽히는 것 자체가 몹시도 부끄러운 일처럼 여겨져 아이에게도 그런 생각을 강요했고 모든 문제를 그런 식으로 대하였다. 아이가 비난을 받고 오면 위로해 주거나 편이 되어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이를 지지해 준 기억이 없다. 그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야단쳤던 기억뿐이다.
누구네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라고 남편한테 얘기를 할 때면 남편이 항상 물었다. "그래서, 우리 애가 뭘 잘 못 했다는 건데?" 그리고 나는 늘 머뭇거렸다.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그냥 같이 놀다가 싸웠나 본데."
근데 왜 사과했느냐, 무슨 일인지는 알고 사과해야지. 왜 우리 애만 야단쳤느냐. 왜 쟤 맘은 알아주지 않느냐.
남편과 나는 늘 그런 걸로 싸웠다.
살다 보면 남한테 피해 좀 줄수도 있는 거지.
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한테 피해 좀 준다고 싫어할 거야? 아니잖아. 그게 좋아하는 사람이야?
남편은 늘 그런 말들을 했고 나는 그 말이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사람의 무책임한 변명처럼 여겨졌기에 무시했었다.
우물 속 여자가 이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 혼란스러운 글만큼이나 마음이 혼란스럽다.
내 아이의 오로라를 어찌 걷어내야 할까.
이제 나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살다 보면 남한테 조금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건데, 부끄러울 수도 있는 건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와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처럼 도망치는 것 말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오로라를 정말 어쩌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