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지금 딱 미친놈이야
나는 지금 딱 미친놈 같아,라고 하던 김주워니를 자주 떠올리는 요즘이다.
전설의 윗몸일으키기 씬이 있는 시크릿가든 3화의 장면 중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옥상씬이다.
라임이가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 "길라임 씨는 몇 살 때부터 그렇게 이뻤나?" 하다가 정강이를 걷어 차인 후, 당신 나 좋아하냐고 따지며 씩씩거리는 길라임을 향해 그럴 리가. 내가? 너를? 왜? 하는 말들을 뱉어내며 밉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던 김주워니가 잠시 멈칫거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혼란스럽다는 듯 말한다.
"근데 바로 그게 문제야, 그게. 너무 이상하니까..... 나는 그런 댁이 얼떨떨하고 신기해. 그래서 나는 지금 딱 미친놈이야. "
김주워니가 현빈이 아니었다면, 현빈의 외모에서 오는 개연성과 서사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저거 완전 또라이네,라고 생각했을 거라 단언했던 장면이다.
지가 좋아서 찾아가고 밥 사주고 손목 잡아채곤 '이 사람이 저한테는 전도연입니다'도 하고 몇 살 때부터 그렇게 예뻤냐 꼬리 쳐놓고는 내가 지금 딱 미친놈이야,라는 대답은 대체 무슨 심리야? 싶기도 했던 것이다. 앞뒤가 다르잖아, 앞 뒤가. 맘 한편에선 그런 반발심이 옅게 피어올랐지만, 그 대사를 내뱉고 있는 얼굴이 현빈이라서 쉽지 않은 척 버티다가 살짝 녹다운된 심정으로 꺄아~ 물개박수를 치고 말았다.
'아, 그래. 진짜 지가 딱 미친놈 같기도 하겠다아... 디게 터프한 고백이네' 하며 나도 모르게 설레었더랬다.
요즘 들어 부쩍 그 김주워니를 떠올리고 있다. 이제야 김주워니 마음이 온전히 이해될 것 같기도 했다. 앞뒤가 다른 마음도 있겠구나. 아니 어쩌면 모든 마음들이 조금씩은 다 그럴 수 있겠구나. 내가 딱 미친놈 같은 그런 마음이 있기도 하겠구나 싶었다.
아들과 있을 때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마음을 잘 읽어줘야지 하다가도 내 맘을 못 읽어주는 10살짜리 아들한테 너무 서운해서 감정이 솟구친다. 서운하다는 감정이 짜증과 분노로 전환되는 것은 왜 이렇게 급작스러울까. 상대는 고작 10살이다. 게다가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인데. 매번 발화점이 낮아지고 있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다가 폭발하기 직전에, 정말로 딱 그 정도까지 몰아붙이다가 체념하듯 중얼거린다. 그래, 나는 지금 딱 미친놈이야.(김주워니처럼 눈코입이 잘 주차된 얼굴은 아니지만 그 표정도 흉내 내어 본다.) 그러다 보면 뭔가 탈진한 듯 몸과 마음이 너덜거린다. 외면하고 있던 민낯을 마주한 기분이다. 고집과 외로움으로 뒤죽박죽 된 얼굴은 지쳐있다. 참 못났다.
오은영 박사님은 엄마의 불안이 선을 넘으면 화를 내고 분노하게 되니 불안함을 빨리 인정한 후 한발 물러서서 불편한 감정의 정체를 알아내라고 했다. 나의 최선이 때론 아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잘 되지 않는다. 불안한데 대체 어떻게 한발 물러서라는 걸까. 불안하니 더욱더 최선을 다 하게 되고, 최선을 다 하다 보니 악착같아지고, 악착같이 버티다 보니 내가 이 정도까지 하는데 왜 너는 그것도 못 해주느냐 서운해지고, 그 서운함은 다시 분노로 바뀐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최선과 악착 때문에 자꾸만 모든 것이 꼬여버려 더욱 불안해진다. 불안하니 물러서라는 말. 정말로 말이 쉽다.
무슨 뫼비우스 띠도 아니고 뭐 이런 거지 같은 되돌이표가 다 있을까.
미세먼지가 심했던 날 밖에 나가지 못해 심심해하는 아들 때문에 밀가루를 풀어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쿠키를 만들면서 "내가 만든 쿠키~(쿵)"라고 먼저 흥얼거렸다. 아들이 "~줘도 안 먹지(짝)"라고 받아치길래 서로 마주 보며 깔깔거렸던 게 한 시간 전인데 킥보드 타러 나가고 싶다고 10번쯤 조르자 폭발하고 말았다.
안 된다고 설명했잖아. 너는 지금 알레르기가 심하잖아. 그래서 엄마가 같이 쿠키 만든 거잖아.
점점 화가 나서 결국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풀 죽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또 나만 악당이구나 싶었다. 돌아서서 세탁물을 정리하다가 아들 옷에 잔뜩 묻어 있던 얼룩을 발견하곤 그 얼룩을 지우다가 울컥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겨우 이까짓 일로 이게 뭐야 정말. 매일같이 이런 순간들이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딱 미친놈이야.
김주워니가 이런 심정이었나. 나는 그때 그저 잘생긴 또라이려니. 저 잘생긴 애한테 이른 갱년기가 찾아왔구나 했지.
나는 아들을 모르고 아들은 나를 모른다.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사랑이 존재하고 있으니 어쩌면 거기서부터 뒤틀림이 시작되고 있나, 아니면 거기서부터 이해가 시작되고 있나 생각해 본다. 모자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모든 사랑들이 어쩌면 조금은 미친놈의 사랑인가 싶은 것이다.
모순이 가득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 내가 그 미친놈이어도 썩 괜찮으니 불안에선 한 걸음씩 물러서고 적어도 그 한 걸음만큼은 이해에 가까워지고 싶다고, 나만 아는 초라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