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하늘이 있다.
아들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여느 아이들처럼 보석 같은 말들을 쏟아내던 시절이 있었다.
전기선으로 조각조각난 하늘만 보다가 강변의 탁 트인 하늘을 처음 봤을 때 아주 아주 꼬꼬마 시절의 아들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엄마, 하늘이 커요. 할머니 집 같아요."라고 했다.
한창 말문이 트이기 시작할 무렵으로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서 할 때였다. 할머니 집은 바닷가 옆에 있었기에 하늘이 바다같이 푸르고 넓다는 말이었고 나는 아들의 말소리와 그 의미를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무리 어설픈 발음이라도, 비유를 위한 과정이 많이 생략된 표현(하늘이 할머니집 같다는 식의 표현)이라도, 나에게는 그저 한 음절도 놓치기 아까운 보석이었다.
며칠 내리던 비가 그치고 파란 여름 하늘이 나타났을 때 아들은 '엄마랑 같이 가는 소풍 같은 하늘'이라고 말해줘서 지금까지도 나는 날이 개인 여름날의 파란 하늘을 보면 소풍 가기 좋은 하늘이구나 한다.
한 6살 때까진 그런 말들을 쏟아내었던 것 같은데 개구쟁이라는 지적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면서 나와 주고받는 말의 대부분은 '그런 행동은 하지 마'라는 꾸중이 되었고 아들의 그러한 말도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조금 어리석은 나는 이제 와서 그걸 깨닫고 있는 중이지만...
우리 가족만 아는... 아니, 알았는데 아들은 잊어버리고 남편과 나만 기억하고 있는, 난 너를 사랑해 하늘이 있다. 우리 집은 강변 근처에 있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노을 지는 하늘이 달리는 차 뒤로 펼쳐진다. 해질녘의 하늘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서사를 품고 있어 가끔은 그저 벅차오르고 가끔은 그저 눈물이 고인다. 붉은 맹렬함과 옅은 애수가 뒤섞여 매 순간 달라지는 찰나의 빛들을 보다 보면 마음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남편한테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틀어달라고 하여 달리는 차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난 너를 사랑해에~~ 이 세상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해질 무렵 달리는 차 안에선 때때로 난 너를 사랑해가 울려 퍼졌고 꼬꼬마 아들에겐 그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는지 어느 날 노을을 보며 말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난 너를 사랑해 하늘이네"
해질녘 하늘에 대한 서사가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그 하늘을 가리키며 엄마가 좋아하는 하늘, 난 너를 사랑해 하늘, 이라고 말하던 아들의 표정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통통한 볼의 솜털이 붉은 햇살과 바람에 흔들렸고 웃고 있는 아들의 눈동자 속에 내가 있었다. 그 기억은 정말이지 너무 행복하고 아득해서 가만히 떠올리고 있으면 명치 끝이 조금 아려온다.
내게 그런 하늘을 선물해 놓고 아들은 그 하늘을 잊어버렸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들의 정서발달을 위해선 지금이라도 감정을 다룬 책을 많이 읽거나 감정카드를 활용하여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 했다. 5살 때 이미 난 너를 사랑해 하늘을 알았던 아들인데... 그런 아이에게 이제 와서 정서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비범함이 지워진 어린 영재라도 보는 듯(엄마로서 내 마음은 그러하다)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을 누른 채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주 하고 있는 요즘이다. 어느 날 저녁에 넌지시 물었다.
"난 너를 사랑해 하늘 기억나?"
무슨 소리냐는 아들의 표정에 노을 지는 하늘을 보면서 난 너를 사랑해 하늘이라고 했잖아,라고 일러줬더니 까르르 웃으며 "우웩!" 한다. 10살짜리 남자아이다운 짓궂은 표정이다.
함께 소리 내어 까르르 웃다가 "엄마가 맨날 난 너를 사랑해 노래를 불러서 네가 노을 진 하늘을 그렇게 불렀어" 했더니 "내가?" 하며 그저 웃는다.
아들이 5살 무렵에 "엄마, 나 사랑해? 내가 진짜 좋아?" 하고 물어왔었다.
"엄마는 너를 제일 사랑하지. 너는 아직 그것도 몰라?"라고 했더니 아들이 대답했었다.
"내가 엄마 머릿속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 엄마가 자꾸만 이렇게 말해줘야지."
매일매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줘야지 생각했건만 내가 그 다짐을 잊고 있던 사이에 아들은 난 너를 사랑해 하늘도, 엄마의 사랑도 조금씩 잊어버렸던 것 같다.
아들은 요즘 들어 부쩍 나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다섯 살 때처럼 엄마 나 사랑해?라고도 자주 묻는다. 샤워를 시키고 로션을 발라줄 때면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재밌는 춤을 추면서 신남을 표현하기도 한다. 눈빛 속의 불안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나의 착각이 아니길 바란다.
언젠가는 아들이 다시 '난 너를 사랑해 하늘'을 이해할 테고 나한테 더 많은 하늘을 보여줄 수 있을 것도 같다.
욕심 많은 엄마는 고작 난 너를 사랑해 하늘 하나를 돌려주고 더 많은 하늘을 원하고 있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아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머리 위로 펼쳐질 여러 가지 하늘을 꿈꾸듯 기다리며 오늘도 소곤소곤 귓가에 말해줘야지, 다짐한다.
엄마는 너를 정말 정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