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친구 엄마 모임

그렇게 엄마가 되어 간다

by 날아라빌리

엄마들 모임엔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않는다'라고 표현하니 뭔가 오롯이 나의 의지 같은데 사실 자의 반 타의 반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끼지 못하여. 아는 엄마들이 거의 없어서' 참석하지 못하는 거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엄마들 모임 자체를 알기 힘들고 안다고 한들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였다.

다만, 아들이 제법 별나다 보니 엄마들의 전화를 꽤 받아서 일일이 기억하진 못해도 몇몇은 기억하고 있는데 며칠 전 그러한 엄마들 중 한 분인 A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맘들 모임 있는데 오실래요?"


'맘충'이란 단어에 경기를 일으키는 나로선 유사품의 향기를 잔뜩 품고 있는 '맘'이란 말에 흠칫 놀랐지만 내가 '맘'은 맞기에 일단 참석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근무지가 바뀐 후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최근 나의 관심사는 온통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이기에 무조건 가기로 했다.


처음 A의 엄마와 통화를 하게 된 이유는 A가 우리 아들 때문에 집에 가서도 속상해하며 울곤 했기 때문이었다. A의 엄마는 A에게 대체 우리 아들이 어떻게 괴롭히는지, 뭐가 그렇게 싫은 지를 써보라고 하였고 A가 10가지나 넘게 썼기에 이제는 나랑 통화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하셨다.

사실 A라면 나도 꽤 듣고 있었다. 우리 아들도 A가 뻑하면 자기를 괴롭히며 이것저것 트집을 잡고 있어 학교 가기 싫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기에 꽤나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이런 일에 일단 먼저 사과하는 편이다. 빠르게 사과한 후 아이를 잘 지도하겠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하곤 한다. A의 엄마에게도 그리하긴 했지만 유난히 그날의 통화가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이런 사소한 이유로도 전화를 한다고? 이 정도면 우리 애가 할 말이 더 많겠는데?' 싶은 약간의 억울함 때문이었다.


검사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받은 후 꽤나 후회했던 장면 중 하나가 이런 전화에 항상 내가 먼저 했던 사과이다. 어차피 교실에서 매일 볼 친구사이고 아이들은 늘 변덕을 부리곤 하니 엄마들끼리 괜한 기싸움(?)을 하는 것보단 먼저 굽히는 것이 내 아들에겐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뿐인데 내가 선의로 했던 사과가 아들에겐 '진짜 말썽꾸러기' 라는 낙인이 되고 있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댁의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도 꽤나 짓궂었고 우리 아이 역시 힘들어했다는 말을 전하며, 그렇지만 어차피 아이들끼리는 오늘은 좋았다가 내일은 싫었다가도 하는 것인데 그 모든 순간마다 어른이 이렇게까지 개입하는 것이 맞을까요,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한 것이 몹시도 후회되었다. 그리고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후회의 대상이 바로 A의 엄마였던 것이다.


며칠 동안 '나를 왜 부를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간택(?)된 이유가 뭘까.

맘'들'이라면 나 외에도 다른 엄마도 온다는 얘기인데 다른 엄마들은 누굴까.

가서 나만 왕따처럼 구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걸까.

혹시 우리 아들 때문에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걸까.

옛 유행어(사실 요즘 말은 잘 모른다) 중에 '현피 뜬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한 느낌으로 내 얼굴을 마주하며 할 말이 더 있는 걸까. 어릴 때도 현피 같은 거 떠 본 적 없는데 다 늙어서 해야 하나.(한숨)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점점 더 초조해졌다. 게다가 나는 확신의 'I'인 것이다. 약속은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

"설마 나를 가운데 앉혀두고 자식 교육 잘 시키세요, 이러진 않겠지? 아무렴 그러려고 부르진 않겠지?"

불안한 마음에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소파에 누워있던 남편한테 툭 던지니 무슨 대답을 해야 내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지 고민하느라 남편의 눈동자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냥 가지 말까? 이제 와서 안 간다고 하면 진상이려나?"

남편은 나의 혼잣말에 대답을 해야 하는 건지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았다.

에휴- 긴 한숨을 내쉬며 "가야겠지? 그래! 가야지. 설마 그러겠냐만... 그렇다 한들 우리 아들이 뭐 어때서요?라고 해버릴 거야."라고 했더니 남편은 여전히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드디어 금요일 저녁. 약속한 시간이 되어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알고 보니 원래 친했던 동네 언니도 와 있었다.

"내가 오는지도 모르고 나온 거야? 난 너 온다고 들었는데?"

"헐... 난 그냥 나왔죠. 나 정말 개코도 모르고 나온 거예요. 시간이랑 장소만 알고 있었어요."(현피 뜨는 건가, 걱정했단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제야 안심이 되어 처음 보는 엄마들과는 '누구네 엄마입니다'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다 같이 맥주를 콸콸 따라 마셨다. 예상보다 꽤 즐거웠다. 아이들 이야기보단 눈썹 문신과 크롭티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엄마들 모임도 별거 아니네? 하며 신이 나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오직 A의 엄마만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이내 가족의 이야기만 했다. A의 엄마 바로 옆자리에 있던 나는 내내 A와 A의 누나들 이야기를 들었다. A가 용돈 기입장을 쓰고 책을 많이 읽으며 축구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엄마에게 애교도 많이 부리며 누나들과도 사이좋게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한 동네 언니는 눈짓으로 '온통 자기 아들 얘기뿐이네~' 라는 말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지만 나는 A의 엄마 목소리에 담긴 자랑스러움과 얼굴에 가득한 들뜸에 조금씩 젖어들며 점점 마음이 흐물거려졌다. 그러다 결국은 어쩐지 살짝 울고 싶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나는 한 번도 저런 목소리와 저런 표정으로 우리 아들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 아이는 늘 어딘가 조금 모자란 아이 같아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어떤 실수를 하고 있진 않을지 초조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와 지금이라도 사과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긴장하기만 했던 것 같은데, A의 엄마에게서 내게는 없는 모습을 보자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했던 것이다.

아들 이야기를 하며 눈가를 동그랗게 접어 활짝 웃는 그 미소를 보니 가만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엄마라면 당연히 이런 모습이지.

우리 아들이 게임을 얼마나 잘하는지 아느냐. 게임하면서 상대가 비겁하게 굴면 채팅으로 혼도 내면서 자기 아이템을 나눠주기도 한다. 수학도 지난번엔 63점이었는데 이번엔 86점이나 받아왔다고, 수학 학원도 안 보내는데 이만큼이나 스스로 해내었다고. 으쓱머쓱도 처음에는 온통 머쓱이었는데 이제는 으쓱이 10개나 더 많다. 게다가 고자질 같은 건 웬만해선 안 하는 애라고. 난 선생님한테 혼나더라도 친구 고자질은 안 해,라고 말하는 애라고.

A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도 마음 속 가득 우리 아들을 떠올렸다. 어디 내놔도 세상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내게도 있었다. 눈물이 살짝 고이려 할 때마다 맥주를 마셨다. 시원하고 청량한 맛에 코끝이 쏴-해졌다.


아들 친구 엄마 모임은 11시가 다 되어서 끝났다.

남은 안주를 싹싹 긁어먹고 밥까지 시켜 죄다 볶아 먹으며 우리가 왜 더 이상 크롭티를 입지 못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다들 꽤나 술에 취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유행하는 크롭티는 입지 못 하지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엄마의 모습이 무언지를 배웠다. 다음에 또 만나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이제야 조금씩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중이다. 이렇게 엄마가 되어 가고 있나 보다.


#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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