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와 데이트하던 기억

by 날아라빌리

얼마전 시험감독을 갔었다.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덜어내고 있는 수험생들을 보니 10년도 더 전에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시험을 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구나 싶었다.

공부하는 책상 앞과 잠들 때의 머리맡에 칼을 두고 자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 하여 한참이나 칼을 품고 잠들었다가 엄마를 기겁하게 만들었던 날들도 떠올랐다. 그 정도로 절실했는데 지금 저 친구들도 그렇겠구나 생각했다.

"고사실마다 한 명 정도 붙는 거야?" 후배한테 물었더니 아마도 그 정도일 거라 대답한다.

라떼는 말이야 고사실 2~3개 정도에 한 명이 붙었는데, 라고 했더니 이제는 인기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모든 시험 날짜가 똑같아 한 가지 시험에만 응시할 수 있으니 허수가 줄어 그런 것도 있다고 했다.

아, 그렇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많은 세월을 바로 그 허수 중의 하나로 보내었지, 내가, 하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공부를 하던 중에 사랑니를 뽑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합격자 명단에서 여전히 내 이름을 찾지 못했던 어느 해의 여름에 사랑니를 뽑게 되었다.

충치를 치료하던 중에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랑니가 조금 복잡하게 나서 뽑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우리 병원은 안 되겠고 다른 병원으로 가보세요.”라는 말에 조금 더 큰 병원을 찾았는데 그곳은 어쩐지 좀 무시무시했다.

상의를 다 벗고 가운만 입은 채 몇 만 원이나 하는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 나니 이가 신경과 매우 가까이에 있어 자칫하다가는 아주 위험해질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CT 촬영까지 하자는 거였다.


십만 원이 훨씬 넘는 CT 촬영은 그렇다 치더라도 ‘혀가 마비되거나 그 어떤 위험이 뒤따른다 해도 병원 책임은 아니다'라는 내용의 각서에 사인부터 하라니 그건 좀 곤란했다.

이미 몇 번이나 시험에 떨어져 가진 거라곤 나이밖에 없는 백수였다. 그 상태만으로도 눈뜨고는 못 봐주기에 충분했는데 혀까지 마비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인상을 잔뜩 구긴 채 그 병원에서 나와 근처의 병원 간판을 살피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간 곳은 아주 작은 치과였다.

다짜고짜 물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제 사랑니, 뽑으실 수 있겠어요? 각서부터 쓰란 얘긴 하지 마시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시건방지고 세상 물정 모르는 괴상한 환자였는데 의사 선생님은 그저 껄껄껄 웃으며 '어디 한번 잘 뽑아보도록 하지요'라고 대답했다. 간호사에게 나의 사랑니 사진을 찍은 후 스케줄을 잡으라고 일렀다. CT 촬영도 각서도 없었기에 뭔가 조금 장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니를 뽑던 날. 동그랗게 구멍이 난 초록색 보자기를 얼굴에 전체에 뒤집어쓰고 입만 내놓은 채 시술대 위에 누웠다. 조금 긴장이 되어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마취주사를 맞았다. 잠시 후 입안 전체가 얼얼해지면서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마음이 편해져 ‘혀가 마비되어도 병원 책임이라는 각서는 안 썼으니 만약에 내 혀가 마비되면 이 병원에서 책임을 지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이가 갈리는 소리, 칼질하는 소리, 망치로 이를 두드리고 깨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분명히 내 입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는데도 “윙윙윙!” 하는 드릴 소리와 비릿한 피의 맛이 꼭 남의 일처럼 느껴질 무렵 의사 선생님께서 좀 쉬자고 하는 거였다.

혀가 마비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오직 마취주사 탓이겠지? 살짝 겁이 났다.

깜짝 놀라 "에?" 했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피가 좀 많이 나니깐 잠시 지혈을 한 후에 다시 하자며, 별일은 아니니깐 걱정하지 말고 그냥 편안히 누워서 철수랑 데이트하던 기억이나 떠올려보라고 했다.


철수랑 데이트하던 기억.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즐거운 생각을 하며 쉬고 있으라는 말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불과 한 달 전에 시험에서 떨어졌고 언제 합격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데... 어쩌면 이대로 혀까지 마비될지도 모르는데... 철수라... 철수와 데이트하던 기억이라... 그나저나, 그거 참 재밌는 표현이네.’

피투성이가 된 입을 벌리고선 “으하하하!” 웃어버렸다. 다 큰 어른이 치과치료를 받던 중에 울 수는 없었다. 목구멍 안으로 비릿한 무언가가 넘어와서 역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그 느낌을 핑계 삼아 울어버릴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울지 않았다.

"영수랑 데이트하던 기억은 안 되나요? 난 철수보단 영수가 더 좋았는데요."묻고 싶었지만 입을 움직이지 못하게 뭔가를 채워놓아 물을 수도 없었다.


선생님의 말대로 그저 편안하게 힘을 빼고 누워선 철수랑 데이트하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적당히 나른해지는 느낌이 맘에 들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 그래! 그런 날도 있었지. 참 좋은 시간들이었어. 참 좋은 날들이었어.’

눈을 살며시 뜨니 초록색 보자기 너머의 조명에 눈이 부셨다. 늘 살벌하게만 느껴졌던 그 빛이 그날따라 따스하게 느껴져 미소가 지어졌다. 철수가 그 빛 속에서 반짝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철수야. 잘 지내고 있지?’

여전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울지 않았다. 나는 철수와 함께 바둑이를 산책시키며 양 갈래머리를 휘날리던 사랑스러운 영희였으니 눈물은 어울리지 않았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요?"

의사 선생님은 내가 그대로 잠이 든 줄 알았는지 손뼉을 한번 “짝!” 치셨다. 그러고는 다시 나의 사랑니에 집중하셨고 나는 무사히 이를 뽑았다. 나중에 들어 보니 피가 좀 많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많이 났었다고 한다. 막상 이를 뽑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이가 너무 컸고 이가 난 자리도 꽤 위험한 곳이었다고 했다.

"어, 이거 이상한데?"

당황한 선생님과 간호사는 일단 지혈을 시켰고 잠시 쉬면서 침착함을 되찾은 후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내가 편안하게 철수와 데이트하던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선생님도 영희와 데이트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긴장을 풀었던 건지도 모른다.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고 붓기는 물론 사소한 염증조차 없었다. 내가 받은 치과 치료 중 가장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치료였다.


시험 감독을 하며 입안에서 혀를 굴리다가 우연히 사랑니 뽑은 자리를 건드렸는데 그 자리의 매끈함을 느끼는 순간 한동안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들이 울컥 떠올랐다.

초록빛 보자기 너머의 밝고 따뜻했던 빛과 함께 “철수와 데이트하던 기억을 떠올리세요.” 하던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참 좋은 시간들이었어. 참 좋은 날들이었어.’ 하며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면서도 미소 지었던 그날의 나도 떠올랐다.


그 후에도 나는 몇 번의 시험에서 더 떨어졌다. 시험에서 떨어진 것만큼이나 힘든 일도 꽤 많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철수와 데이트하던 기억을 더듬곤 했다.

‘응, 좋은 날들이었어. 철수도 있었고, 영희도 있었고, 가끔은 순이도 함께 있었어. 정말이야! 사실은 아주 좋은 날들이었어.’


시험 감독을 하는 내내 수험생들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져 계속 손에 땀이 났다. 한 수험생은 시험이 종료되기 직전까지 답안지 작성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곁눈질로 계속 살폈다.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벨이 울리면 손을 책상 아래로 내리라 한 후 답안지를 회수해야 하는데... 어쩌지, 진짜 쟤 어쩌지, 저러다 울겠는데?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행히 시간 내에 답안지 작성을 마쳤고 그 친구가 끝내자마자 종료벨이 울렸다. 너무 장하고 기특하여 어깨를 꼭 끌어안고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지나고 보니 꽤나 길었던 그때의 시간들이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물론 좀 더 짧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때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까지 쓸모없는 시간들은 아니었다. 그 시간들 역시 지금의 나에게는 철수와 데이트하던 기억이니, 아주 좋은 날들은 아니었다 싶지만 실은 꽤 따뜻한 날들이었을 수도 있다고, 이제와 생각해 보니 조금쯤은 그렇다.


시험이 끝난 후 "수고하셨습니다"를 말하는 내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그 순간의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평생을 두고 써야 했을 최선을 그 한순간을 위해 쥐어짜내듯 쏟아내었는데 그 순간이 끝나자마자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내려놓아야 한다. 그 순간의 허무함과 어쩔 도리가 없는 막막함은 매번 두렵기만 했다. 그러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정말이지 수고했어요. 당신들도, 그때의 나도.

우리 모두 정말이지 참 수고했어요.

오늘만큼은 두 다리 뻗고 느긋하게 철수나 만납시다,라는 이야기를 어제 건네지 못하였기에 지금 이렇게 이야기해 본다. 바로 다음 순간조차 예측할 수 없는 불투명한 삶 속에서 하루하루씩 살아내며 최선과 체념의 간극을 버텨내는 모든 순간들이 철수와의 데이트 아닐까 싶은 날이다.



#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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