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곤란과 낄낄

by 날아라빌리

이상하게도 어릴 때의 기억이 빈약한 편이다. 그때의 기억들이 제법 풍성한 사람도 있던데 나는 그렇지는 않다. 특별히 불행하지도,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아 그런가 보구나 생각한다. 살던 집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4~5살 때부터 시작된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조금쯤은 구정물에 젖어 있던 좁고 새카만 통로 양쪽으로 작은 방들 몇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가장 안 쪽에는 주인집이 있었고 내가 살던 집은 주인집 바로 앞에 있던 단칸방이었다. 부엌이나 화장실이라고 따로 부를 만한 곳이 없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걸어 나가며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보아도 당시 나의 세상과 보폭은 작디작았기에 내가 걸을 수 있는 걸음으로 하루종일 나아가며 살펴본들 온통 비슷한 모양에 담긴 비슷한 색채의 살림살이들이어서 그게 가난인 줄 몰랐다.

친구집을 가도 씻는 곳이 따로 없었고 마당 구석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던 화장실은 늘 다른 집들과 함께 쓰는 곳이었기에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엄마의 표정은 늘 어두웠고 화가 나 있었지만 옆집 아줌마도, 이층집 아줌마도 모두가 다 그러했고 가끔은 소리도 지르곤 했기에 그냥 다들 그런 가 보다 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러한 풍경들에 살짝 낮은 채도의 빛바랜 색채가 씌워져 있을 뿐 그 속에 어떠한 감정이 담겨 있진 않다.


초등학교 4학년때로 기억한다. 붉은색 투피스를 자주 입었고 갈색 머리를 반묶음으로 하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렴풋이 쟤랑 나는 뭔가 너무 다른데? 생각했었던 거 같다. 그 친구의 집에 처음 놀러 간 날 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어 신기했다. 마당엔 모두가 함께 쓰는 화장실이 있어야 하는데 여긴 왜 화장실이 없을까? 궁금했다가 잠시 후 집안에 욕실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순간의 놀란 마음을 감추고 싶어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여긴 우리 동네랑 다르구나,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 친구가 입고 다니던 예쁜 원피스들이 부럽기 시작했다.


내내 가난했다. 어렸을 때는 그게 가난인 줄 몰랐는데 지구는 둥글었고 내 보폭이 커져가는 만큼 세상이 커져갔기에, 자꾸자꾸 걸어 나가며 만나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내가 가진 가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모든 집들이 마당에 있는 화장실을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것은 아니었고, 모든 집들이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비닐을 쳐놓고 그 뒤에 숨어서 씻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와 엄마는 자주 다퉜고 아빠는 화가 나면 밥상을 집어던지곤 했기에 벽엔 늘 옅은 김치 국물 자국이 있었다. 새로운 자국이 생길 때마다 내 가난이 짙어지는 것 같아 조금 슬펐다. 가난에도 색이 있다면 마당 구석에 있던 푸세식 화장실의 짙은 어둠이나 아무리 닦아도 온전히 지워지지 않았던 옅은 김치국물의 색일 거라 생각했다.

가난해서 불행했던 건 아니다. 적당히 웃었고 적당히 울었으며 적당히 즐거웠고 적당히 슬펐다. 다만 맘 속엔 내가 가진 결핍에 대해 감추고 싶은 마음과 그로 인한 자격지심이 옅게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욕실이 있는 집에 살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욕실이 생겼다. 내가 씻는 모습을 훔쳐보고 다음날 놀려대던 짓궂음이 사라져서 기뻤다.

욕실만큼 부러웠던 것은 청바지였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미치코 런던, 겟유즈드, 닉스, 스톰 등 친구들은 모두 '메이커 청바지'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어야 하는 소풍날은 정말 싫었다. 나는 엄마가 시장에서 구입한 청바지를 여동생과 번갈아 가며 입어야 했었고 엄마가 사 온 청바지는 때때로 그 메이커 청바지의 짝퉁이었기에 어떤 친구들은 나를 놀렸고 어떤 친구들은 모른 척해줬다. 놀리는 것도 모른 척해주는 것도 모두 싫었기에 나는 오히려 내가 먼저 내 바지 짝퉁인데, 상표가 좀 웃기지? 하며 키득거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진 유머는 나의 결핍을 감추기 위한 방어 기제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나는 아주 예민하면서도 그 예민함에 비해 잘 낄낄거리는 아이로 자랐고 지금도 나의 낄낄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크다. 정확하게 '낄낄'이다. 모든 낄낄에는 적당한 체념과 적당한 슬픔이 함께 어우러져 적당히 유쾌해진다. 나는 가끔 내 가난을(정확히는 친구들은 종종 가지곤 했지만 나는 늘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힘들어 고개를 살짝 돌려 측면에서 낄낄거리곤 했다.


가난의 곤란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여대생을 처음 보았는데 나 또한 여대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와 다른 존재 같았다.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에선 향기로운 냄새가 났고 새하얀 얼굴과 조금도 촌스럽지 않은 화장이 신기했다. 나는 여전히 맨 얼굴에 엄마가 집에서 잘라줬던 단발머리를 고수하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여 번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옷을 사 입고 립스틱을 사서 발라보아도 어딘지 모르게 늘 촌스러웠다.

대학교 2학년 무렵 처음으로 가게 된 미용실에선 가운이란 것을 입혀 줬는데 입을 때 팔을 앞으로 끼워야 할지, 뒤로 끼워야 할지 몰라 버퍼링이 오기 시작했다. 파마를 한 후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할 땐 정말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곁눈질로 다른 사람을 살피며 엉거주춤 누웠다. 나도 모르게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는지, 머리를 감겨주는 선생님은 계속 머리에 힘을 빼라고 했는데 그 힘 빼란 말이 뭔지를 몰라 한참 동안이나 얼떨떨한 표정으로 굳어 있곤 했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그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가난의 곤란은 늘 그런 식으로 나타났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처음 갔을 땐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몰랐고, 꿀에 찍어먹는 피자도 있다는 걸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남자가 알려주며 "이걸 처음 먹어본다고요?" 할 때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으며, 립스틱이란 것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저기..." 하며 쭈뼛거리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예쁜 사람과 태어날 때부터 부유했던 사람만이 지니는 그 특유의 여유와 에티튜드가 항상 부러웠다.


얼마 전 여동생 부부와 함께 맥주를 마시다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나왔다. 여동생과 나는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서로의 남편들에게 경쟁하듯 이야기했다. 우린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웠고,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이나 고딩 같다, 아니다 실은 쟨 중딩이다 따위로 친구들이 장난스레 놀려대었으며, 대학생 때도 그 후 백수 시절에도 버스비가 없어 종종 걸어 다녔고, 고오~급스러운 옷은 아직도 좀 대하기가 어렵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둘 다 미용실 이야기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동생에게도 미용사가 머리에 힘을 빼라고 했다는 거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미용실을 갔는데 자꾸만 머리에 힘을 빼라고 해서 당황했다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 "나도!! 나도 그랬어. 너도 그랬구나."라고 대답하는데 어쩐지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니야, 나는 내 돈을 주고 서비스를 샀던 건데도 매번 어쩔 줄을 몰라하며 쩔쩔맸어."

이어진 여동생의 말에 결국 눈물이 조금 흐르고 말았다. 나의 낄낄이 가끔 제 역할을 못 할 때도 있긴 하다.


나는 아직도 취향이란 것이 딱히 없으며 내게 어울리는 것을 찾는 일이 어렵다.

공들여서 이것저것 다 취해보고 느껴본 후 내가 무얼 좋아하며 어떤 것들이 내게 어울리는지를 알아가야 하는데, 언제나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 중에서만 선택해야 했고 대체로 그 선택지는 아주 좁았기에 여전히 그런 일들은 조금 어렵다. 마흔이 훌쩍 넘었는지만 내게 어울리는 립스틱조차 잘 모른다.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도 없으며 백화점은 여전히 주눅 드는 곳이다. 가난해서 불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단 삶의 여러 가지를 좀 더 풍부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저학년 여학생들의 예쁜 옷을 많이 본다. 너무 귀여워서 멍하니 웃으며 보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교무실 선생님이 "아이고, 딸 낳고 싶은 가 보다." 하시며 이제라도 하나 낳아보라고 짓궂게 웃는다.

딸한테 입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입어보고 싶어서요,라는 말은 그냥 속으로 삼켰다. 내가 어릴 때 진짜로 저런 프릴 달린 옷들이 너무 입어보고 싶었는데, 내 옷장은 빨간 머리 앤의 옷장보다 더 어두웠다는 말도 속으로만 한다. 욕망이란 것은 조금쯤은 결핍에서 오는 것이니 그로 인한 취향도 존중해보자 싶긴 하지만, 마흔 중반에 프릴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 원피스를 입기엔 역시나 조금 여럽다.('쑥스럽다'의 뜻을 지닌 경상도 사투리인데, 보통은 이 나이에 하긴 좀 머쓱... 의 상황에 쓴다) 좀 더 나이 들면 반드시 귀여운 할머니가 그때 입어보지 못한 프릴 원피스를 잔뜩 입어야지 다짐하며 그저 낄낄거려 본다.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 속의 나에게 여러 가지 옷을 입혀보니 조금 신난다. 프릴이 잔뜩 달린 원피스를 입어도 전혀 유치해지지 않도록 반드시 귀여워지고 말 거란 결심을 다시금 한다. 그때쯤엔 적당히 고오~급스러운 취향도 한 두 개쯤은 지니고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본다. 여전히 유머러스하게, 그렇지만 살짝 우아하게 낄낄거릴 수 있었으면 한다.

앞으로 남은 날들도 나의 낄낄에게 잘 부탁해 봐야겠다.


#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