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를 언제 허용해도 될까

이것은 '존나'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다

by 날아라빌리

아들 입에서 '존나'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지난 초가을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된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들이 친구를 데리고 와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깔깔 웃으며 "아, 존나 재밌어."라고 하더니 아무 일도 없는 듯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거실 안으로 쏟아지는 오후 2시의 햇살이 따스하고 무해하여 하마터면 나도 아무 일이 없었던 걸로 착각할 뻔했다. '존나' 가 아니라 매우, 아주, 엄청~이라는 부사어를 쓴 것 마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다정했다.

대화의 내용은 포켓몬 빵과 카드, 포켓몬의 진화에 대한 것으로 딱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애들이 나눌 수 있는 개구지고 귀여운 이야기들이었기에 내 기준에선 '존나' 라는 말이 지닌 상스러움과 포켓몬 세계관에 대한 동심의 간극이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다. 저 천진난만한 미소와 상상력 가득한 대화 속에 존나라니!

이런 비속어는 어쩌면 아들의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쯤엔 들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6년이나 빨리 찾아온 '존나'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얼떨떨하고 당황스러운 오후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왜 우리 아들이 '존나'를 알지?


그날 저녁 남편에게 얘기해줬다.

내가 아까 우리 집 거실에서 존나를 들었어. 포켓몬 진화를 얘기하면서 존나라고 하더라?

너무 자연스러워서 존나를 듣고도 그게 존나임을 늦게 깨달았어.

어디서 배운 걸까. 유튜브를 못 보게 할까. 태권도에서 형들한테 배운 걸까.


나의 심각한 표정과는 달리 남편은 아까 우리 집 거실을 가득 채웠던 오후 2시의 햇살 같은 표정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여 나 혼자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애를 방치해서 생긴 일인지도 몰라. 지금이라도 다른 집 엄마들처럼 시간대 별로 동선을 관리하고 어울리는 애들이 누군지 살펴봐야 해. 유튜브를 못 하게 휴대폰을 빼앗아야 하고 어쩌면 매를 들어야 할지도 몰라. 욕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애라는 걸 다른 엄마들이 알면 우리 애랑 못 어울리게 할 걸?! 나라도 욕 하는 애가 우리 애랑 어울리는 건 너무 싫을 거야.


한참 동안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남편은 욕을 못 하게 하려는 이유가 뭐야?라고 물어왔다.

"애가 잘못될까 봐 그런 거야, 다른 엄마들이 알게 되어 창피해질까 봐 그런 거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이거 욕이야! 초등학교 2학년이 '존나'라는 말을 쓰는 게 말이 돼? 내가 너한테, 우와! 지금 존나 황당하네, 라고 말한다면 너한테 느껴질 불쾌함이 바로 그 이유야."

"어차피 욕은 쓰게 되어 있어. 남자애들 세계는 또 다른 생태계야. 특유의 질서가 있고 서열이 있다고! 엄마 말 잘 듣는 욕 안 하는 애? 네가 원하는 '그런 애'가 그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어. 그것부터 이해를 하고 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해."


그날 저녁 그렇게 남편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들의 '존나'를 두고 1시간을 넘게 '존나' 다퉜다.

체벌을 하더라도 비속어에 대한 원천적인 차단과 어떻게든 사용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나

아직은 '존나'정도이니 애들 문화와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부터 한 후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지도해야 한다는 남편. 존나와 포켓몬의 간극만큼이나 좁혀지지 않았다.


얼마 전 아들이 나한테 '새삥'이 무슨 뜻이냐 물어왔는데, 나는 또 이런 말을 어디서 배웠나 싶어 그저 놀래서 "어떤 물건이 새것일 때 쓰는 말인데, 새삥보단 그냥 '새것'이라고 하는 게 좋아."라고 알려줬더니 아이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었다. 옆에서 듣던 남편이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아니, 자기야, 그게 아니라~" 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새삥은 요즘 유행하는 가요이고 얘들 사이에서 그 노래가 유행이라 얘는 지금 그 노래 랩 가사를 다른 애들보다 더 빨리 외우고 싶어 연습 중이야,라고 말하는 남편 옆에서 아들이 나지막하게 엄마랑은 말이 안 통해, 투덜거렸었다.

며칠 전의 바로 그 '새삥'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며, 남편은 애한테 뭔가를 지도하기 전에 우선은 애들 문화랑 관심사부터 알아야 해. 우리는 그걸 절대 놓치면 안 돼, 라고 했다.


우리는 결국 아들에게 존나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어떤 욕을 써도 절대 화내지 않을 테니 네가 아는 욕을 전부 사용해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가족들끼리 전부 자기가 아는 욕을 사용해서 대화를 해보는 건 어떨까?

내가 먼저 "이 케이크 존나 맛있어." 라고 했더니, 듣던 아들이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다운 울음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런 식으로 놀라게 하고 울게 만들어 많이 미안했다. 아들의 사적인 영역을 내가 과하게 침범하고 있나 걱정되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유튜브 사용 시간을 결정했다. 하루에 30분 정도는 게임 방송을 꼭 봐야 한다고 해서 그러자 했다. '존나'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아들이 스스로 다짐했다.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에는 '존나' 라는 말보단 '엄청나게'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서 언젠가는 너도 화가 나거나 나쁜 일이 있을 때 욕을 쓰게 될지도 몰라. 더 많은 욕을 듣게 될 거고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렇지만 엄마랑 아빠는 아직은 너한테 예쁜 세상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고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마음속에 사랑이 더 많이 채워질 때까지 우리 서로 예쁜 말을 쓰도록 해보자.

잠들기 전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야기했다. 잠결에 아들은 응응, 엄마 사랑해, 했다.


내 손을 잡은 아들 손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존나를 언제 허락해도 될까. 그게 '허락'의 문제이긴 할까?

앞으로 수많은 존나를 만나게 될 테고, 존나의 친구, 존나보다 더 강한 형과 동생을 마주하게 될 텐데,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 봐도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어서 벌써부터 조금 무섭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더 많이 끌어안고 보듬어 주는 것. 그 모든 존나를 품고도 사랑이 넘치는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니 아들의 성장을 믿으며 그저 열심히 사랑해야겠다. (비록, 나는 존나가 정말이지 싫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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