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아들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월드컵 이후 아이들 사이에서 축구가 유행인 가 보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윗옷까지 벗어던지고 열심히 공을 차고 있었다. 그러다 감기 걸린다고 말해주며 옷을 입혀 주고 싶었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청소를 위해 내내 창을 열어놨지만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 아들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어 그저 축구하는 모습만 한참을 지켜봤다.
아들이 6살 때 축구클럽을 보냈었다.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엔 영어나 여러 가지 예체능 프로그램이 따로 개설되어 있었고 돈을 더 내고 그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축구 클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집 앞의 병설 유치원에 보냈어도 충분했는데 그때는 굳이 그 유치원을 보내고 싶었다. 알음으로 추천서까지 받아내어 그곳에 보냈었고 영어와 예체능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당연히 축구 클럽도 신청했는데 등번호가 새겨진 축구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이 맘에 쏙 들었다.
프로그램비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뭔가 자식을 잘 키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아들이 유치원 생활에 대체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일찍 등원해서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 중 하나긴 했지만. 애가 산만하다는 선생님의 전화가 자주 오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생활비를 이리저리 쪼개어 영어도 보내고, 미술도 보내고, 축구클럽까지 보내고 있으니 나는 참 잘하고 있는 거다, 생각했었다.
어느 날 축구 클럽의 참관수업이 있었다.
공을 얼마나 찰까, 아직 어리니 잘 차진 못 하겠지. "엄마, 나는 골키퍼만 해."라고 얼핏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인사이드킥을 중얼거리며 곧잘 흉내 내곤 했으니 조금쯤은 뭔가 하고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남편과 함께 참관수업에 갔었다.
아이들이 차례로 킥을 먼저 한 후에 두 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했었던가, 팀 경기를 먼저 하고 각자 킥을 했었던가. 아들의 모습에 놀란 마음과 화가 난 표정을 감추기 바빠 그날 수업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아들은 내내 낄낄거리기만 했다. 공을 제대로 차지도 않았고, 아이들에게 계속 장난을 걸어서 다른 아이들까지 공을 차지 못 하게 했다. 골키퍼가 아들이던가? 당연히 골을 계속 먹었고 코치님이 똑바로 하라는 주의를 주고 싶은 듯했지만 부모님들을 불러다 놓고 그런 소릴 할 순 없어 곤혹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6살 아들에게 정말이지 크게 화를 내었다.
왜 너는 장난만 치느냐. 왜 남들까지 못하게 방해하느냐. 어째서 똑바로 하질 않느냐.
엄마, 아빠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 혼났다.
혼이 나면서 저도 속이 상해 엉엉 우는 아들에게 "도대체 왜 그러느냐" 마구 몰아붙였지만 사실 아들이 왜 그랬는지 알고 있었다.
아들은 축구를 너무 못 했다. 저도 잘하고 싶은 맘은 있었겠지만 체격이 왜소했고 축구를 먼저 시작했던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우스꽝스러운 실력이라 모두들 아들과 축구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내 골키퍼를 했던 모양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하질 못 해서 열등감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이미 그런 감정에 빠져 괜한 장난만 쳤던 것이다. 기를 쓰고 애를 써봤자, 어차피 못 할 것이 뻔해서 그저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느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었다.
그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해줘야 했는데...... 축구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나는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의 모든 것들이 그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괜찮지가 않아 아들에게도 괜찮다고 말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괜찮지가 않았던 걸까. 당시 아들의 축구가 나의 자존심이거나 열등감이었을까.
얼마 후 영어 선생님께도 전화가 왔었다. 영어를 단 한마디도 따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젠가 아들을 원어민 수업에 데려갔던 적이 있는데 아들은 수업 내내 트레인을 "츄레인~"이라며 열심히 혀를 말고 있던 주변 아이들의 기에 눌려 있었다. 아마도 같은 상황이었겠구나, 싶었다.
나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내가 아들을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날 6살 아들의 헛발질을 보면서 그 미숙한 몸짓이 그동안 내가 아들에게 했던 헛발질 같아서 그렇게 화가 났었던 걸까.
아들은 곧 축구를 그만뒀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축구 얘기를 했다. 코치님께는 늘 혼이 났었고 골키퍼만 하고 싶진 않았는데 골키퍼만 시켰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자기를 밀기만 했고 공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괜찮아, 못 해도 돼. 속상했을 텐데 몰라줘서 엄마가 많이 미안해.
한참이나 늦었던 위로와 사과에 아들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들이 친구들과 다시 축구를 시작했다. 3시에 놀이터 뒤 공터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모습을 보면서...... 기뻤다. 토요일에는 볼에 빨개지도록 축구를 하고 와선 재잘거렸다.
"내가 못 한다고 애들이 놀렸어. 근데 괜찮아. 즐길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잘해야 해? 내가 손홍민이야? 그리고 엄마! 사실 나 그렇게까지 못하진 않는데? "
축구화를 신으면 좀 달라질 테니 축구화를 사러 가자고 약속했다. 아들이 다시 축구화를 신으면 나는 어쩌면 주책맞은 아줌마처럼 찔끔찔끔 눈물을 찍어낼지도 모르겠다. 참내.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들이 축구하는 소리. 한 시절이 무사히 지나가고 있다는 소리.
때때로 엉터리 같고 조금은 속물 같은 엄마가 쓸데없는 욕심을 내어도 아들은 그저 제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다. 차가운 베란다에서 아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얼마나 안심했는지, 얼마나 따뜻했는지, 절대 잊지 말아야지.
그제야 맘이 놓여 조금은 멍해진 시선으로 고맙다, 중얼거렸던 그 순간을 잊지 말아야지.
정말이지 기특했던 그 엉성한 킥을 잊지 말고 꼭 간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