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하루하루 잘 놀며 웃고 있으니......
'어머니, 통화 가능하신가요?'
시작이 항상 똑같아서 덕분에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었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지금까지, 공교육부터 사교육까지, 참으로 일관되게 '통화 가능하신가요?'로 시작되어 이제는 처음보다 많이 담담해졌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아들을 영어학원에 보냈다.
아들은 절대 싫다고 했지만 3학년부턴 영어가 교과과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
"친구들 모두 알파벳을 다 아는데 너만 계속 모를 거야?"라고 설득하고 있었는데 옆에선 남편이 "오락을 잘하려면 알파벳을 알아야 해. 키보드에 영어가 많아. 엑시트, 그게 뭔지 알아? 그걸 알아야 게임에서 나갈 수 있어. 스타크래프트를 하려고 해도 영어를 알아야 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나한테 설득된 건지, 남편한테 설득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사실 알지만 -_-;;) 어쨌든 아들은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웬일로 잘 다닌다 했더니 3주 차쯤 되었을 때 연락이 온 거다.
'어머니, 통화 가능하신가요?'
늘 상상한다. 이 대목에서 왜 나랑 통화하고 싶은 지가 궁금한 마음은 얼마나 산뜻할까. '선생님께서 왜 나랑 통화하고 싶어 하시지?' 하며 궁금해하는 마음은 약간의 설렘일까. 조금의 걱정도 함께 있으려나? 태초에 내게도 그런 적이 있었던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 또구나.' 하는 체념과 '이 자식을 어떻게 조져버리지?' 싶은 짜증과 '아, 뭘 또 그런 걸로 유난스럽게?' 싶은 피곤함이 뒤섞여 있다. 상황에 따라 그 감정들의 농도와 비율이 조금씩 달라질 뿐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아들이 어린이집 때부터 ADHD 검사를 해보라는 선생님들의 조심스러운 권유가 꽤 있었다. 1학년때 돌봄 선생님께서는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꼭 도움을 받으시라는 충고를 갑작스럽게 건네왔는데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그저 방치하고 있는 무책임한 엄마 취급을 하는 것 같아 몹시도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남편과도 이 문제에 대해 종종 상의한다. 우리의 생각은 검사를 하면 ADHD 진단이 나오긴 할 것 같다는 건데, 아직은 특별한 문제가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되는 부분(산만함과 집중력 장애)이 차츰 나아지고 있으니 이른 진단으로 아이에게 어떤 병명을 주는 것보단 조금 시간을 두고 아이의 성장을 믿고 기다려주자는 입장이다. 사실 이건 아직 내가 어떤 상황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이가 느린 속도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 가끔씩 검사를 생각했다가 다시 잊곤 한다.
영어선생님의 연락이 온 다음날 연가를 내고 학원을 방문했다.
선생님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할지 너무도 예상이 되어 건물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아들은 내가 학원을 같이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무슨 분위기인지 예상했는지 "나는 이번에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엄마, 나는 그냥 애들이랑 놀았던 건데?" 라고 했다.
'그냥 놀았던 게 문제라고, 이 자식아! 공부하라고 보냈더니'라고 소리를 빽! 지르고 싶었지만 기운이 없어서 눈빛만 쏘아줬다.
영어 선생님은 아들의 수업시간을 바꾸자고 하셨다. 아이들이 가장 없을 때의 시간을 제안하셨다. 내 아들이 너무 산만하고 주변의 아이들에게 장난을 많이 걸어서 아이들이 가장 몰리는 시간 때엔 수업이 곤란하다 하셨다.
"이런 아이들 많이 봤어요. 4~5학년쯤 되면 나아져요."라고 하셨다.
'이런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가요? 를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 4~5학년 때쯤엔 나아진다는 말에 덥석 마음이 기울어버려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 시간은 조정하겠다는 대답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을 하다가 나왔다.
아들은 방학 내내 친구들이 가장 오지 않는 시간의 수업을 들었다. 혹시나 선생님께 미움을 받고 있진 않나 싶어 "선생님은 좋아?"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금요일에 오는 선생님만 빼면 다 좋아."라고 했다. 요일마다 선생님이 다른지 매번 금요일 선생님이 너무 싫다고 한다. 아마도 금요일의 선생님이 아들의 산만함을 견뎌내기가 가장 힘든 가 보다.
월화수목금요일의 선생님이 모두 다 힘든 건 아니니까 금요일 선생님이 오는 날은 조금 더 집중해 보자고 격려해 준다.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들의 말대로 그저 놀기만 했을 뿐이다.
내 아이는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너무 중요하고 조금 외로워서 주변을 자주 기웃거릴 뿐인 거다.
"엄마, 영어에선 헤어질 때 안녕이랑 만날 때 안녕이 다른 거 알아? 어릴 때 엄마가 자주 읽어주던 '달님 안녕' 그 책에서의 안녕은 어떤 안녕이야?"
"글쎄, Hello도 있고 Goodbye도 있지 않을까?”
꽤 오래전에 읽어줬던 책이라 '달님 안녕'의 안녕이 어떤 안녕인지가 생각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우리, 주말에 달님 안녕 찾아보러 도서관에 갈까? 했더니 그러자 한다. '나는 그 안녕이 슬펐는데......' 하면서 아마도 헤어질 때 안녕 같았다고도 한다.
알파벳도 다 외웠고 Hello와 Good bye도 구별한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감정을 읽어낼 줄 알며 가끔은 행간에 숨어있는 슬픔까지 읽어내고 동요된다. 그 모든 과정이 조금 요란스럽긴 하지만 성장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며 오늘도 나를 설득해 본다. 곧 방학이 끝날테니 학원에 연락하여 수업시간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아들은 친구들이 많은 시간대의 수업을 듣고 싶어 하지만 학원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저 담담하게 처분을 기다리곤 있지만 내 아들이 여전히 방해꾼 취급을 받는 거라면 '엄마표 영어'라는 거, 그거 나도 한번 해볼까? 싶은 마음도 있다. 아들의 성장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저 방치만 하고 있는 엄마가 아니다, 나는. (.....라고 말하면, 옆에선 남편이 그렇게 공격적인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며 나를 달랜다. 아주 그냥 천하태평이시네 싶지만 사실 남편 말이 맞긴 하다.)
언젠가는 "어머니, 통화가능하신가요?"라는 전화가 와도 조금은 산뜻한 마음으로,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통화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설사,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그런 기대와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