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를 향한 고군분투 일지
한동안 육아일기를 썼었다.
아이가 4살부터 7살이 되는 해까지는 드문드문이지만 쓰곤 했던 것이다.
최근 관심 가는 일들이 많아(기후, 채식, 달리기, 위장장애, 요가 등) 다시 블로그에 빠져 있는 중인데 자주 기웃거리는 블로거가 자신이 쓰고 있는 다양한 주제의 다이어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너무 멋지다.' 하며 감탄하다가 늘 연초에만 반짝 쓰던 내 일기장과 메모장들이 떠올랐다. 다 끄집어내어 이것저것 살피다가 육아일기를 발견한 거다. 열어보니 2020년 7월 아이의 충치치료에 대해 쓴 것이 마지막이었다.
2020.7.24. 금요일
충치치료
많이 귀찮았는지 이게 끝이었다.
그래서? 충치치료가 어쨌는데? 이제 와서 2020년 7월 24일의 내 멱살을 붙잡고 어깨를 흔들며 '그래서어~? 그래서어~~?' 라고 해본들 기억날 리가 있나. 지금이라도 다시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세월을 훌쩍 뛰어넘고 쓰기 시작했는데.
2023.1.27. 금요일
ADHD 공부를 다시 할까 한다. 더 해야 한다.
정말 ADHD일까? 그렇다한들 그게 뭐 큰일이려고, 마음먹어 본다.
여기까지 쓰고는 역시나 좀 귀찮아져서 '암튼 육아일기를 다시 쓰기로 했다.'라는 말로 몇 년 만에 다시 시작한 어제의 일기를 후다닥 마쳐버렸다.
역시나 쓰기보단 읽는 것이 훨씬 재밌어서 2017년도부터 썼던 일기를 설렁설렁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그 시절의 나와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혼자 훌쩍이다가 결국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 정말이지 느닷없고 극적인 감정 흐름이다. 게다가 그곳은 회사 앞 이디아였는데...;;)
아이를 위해 더 많은 꿈을 꿔야겠다고 다짐했던 나를 떠올리며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 옮겨본다.
2017년 12월 18일
- 엄마, 코끼리는 코가 길어서 슬퍼요?
- 아니 괜찮은데?
- 피노키오는 코가 길어서 슬픈데 코끼리는 왜 안 슬프고 괜찮아요?
아, 4살 내 아들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성적인 아이다. 엄마가 네 맘을 읽어주려면 더 많은 꿈을 꿔야겠구나.
2018년 1월 17일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더니 선생님이 웃으며 소곤소곤 얘기한다.
얘가 선생님께 '엄마는 나를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왜 소리를 지를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내가 소리를 그렇게 많이 지르나 싶어 반성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아들이 요즘 나한테 자주 말한다.
-엄마 또 화낼 거야? 소리 안 지르기로 했잖아.
-엄마, 내가 잘못했으면 혼을 내야지. 소리는 지르면 안 돼.
남편이 늘 말하길 내가 아이를 혼낼 때는 감정을 섞어서 짜증을 내기만 할 뿐이라고, 제발 그러지 마라 하는데 아이도 그걸 느끼나 보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선 좋은 사람부터 되어야 함을 다시 깨닫는다. 미안해, 아들아.
2018년 2월 25일
-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게 뭐야?
- 얼음을 만지고 싶어.
내가 못 만지게 했던가.
2018년 6월 25일
어린이집 알림장에 장난이 심해서 주의를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어린이집 밴드에 올라온 사진 속에서 다들 손을 들고 있는데 아들만 발을 들고 웃고 있었다.
너 왜 자꾸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 안 듣고 장난치며 다른 소리를 해? 했더니 억울한 표정이다.
아닌데, 엄마!라고 한다.
엄마, 나는 그날 발이 손이었는데? 그리고 한*(어린이집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들의 친구다.) 웃기려고 그랬던 건데 한*가 웃어서 좋았어.
장난을 치려고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날은 발이 손이었다는 아들의 말에 고민이 된다. 아들이 타고난 기질과 상상력을 눌러가며 공동체의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내가 지금 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대부분의 '안 된다'는 크게 의미가 없다. 아들의 상상력, 밝음, 즐거움, 엉뚱함.
내가 굳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크게 문제 될만한 것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내 아이의 웃음과 상상력을 지켜주는 것이 내가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은 아닌지, 고민이 많이 되는 날이다.
2018년 6월 27일
잠들기 직전에 나눈 대화다.
- 엄마 우리 이야기하면서 잠자자.
- 그래 무슨 이야기할까?
- 음...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
- 엄마는 요리를 잘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어. 너는?
- 나는 말 잘 듣고 밥 잘 먹는 아이가 되고 싶어. 그런데 내가 자꾸만 장난이 치고 싶고, 맛있는 거만 먹고 싶어서 마음이 힘들어. (힘든 마음이야,라고 했던 가...)
- 괜찮아. 아기 때보단 스스로 밥 잘 먹고 있어. 장난은... 정의의 용사니까 조금만 장난쳐야지, 생각하면 될 거야.
2018년 7월 8일
며칠 비가 오다가 환하게 개였던 날 아침.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그런다.
- 엄마 나 아침에 정말 예쁜 파란 하늘 봤다? 엄마랑 같이 가는 소풍 같은 하늘이었어.
작은 반딧불이처럼 아이가 잠들기 전에 쏟아내는 말들이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뱅뱅 날아다닌다. 아주 신비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맘이 울렁거린다. 이런 말들을 잘 기억해 주고 잘 들어주고 잘 지켜주는 일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일들 같다. 아이가 쏟아내는 언어들이 내가 쓰는 언어에 쌓인 먼지까지 털어내줘 각각의 말들이 지닌 의미가 선명해지고 깊어진다.
"엄마, 사랑이 뭐야?" 하던 아들
여전히 '사랑해'라는 말이 지닌 무게를 이해 못 하는 듯하다가도 가끔은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그 말을 알고 있는 듯하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도 내 보물이야."라고 잠들기 전에 아들이 잠결에 중얼거리면 나야말로 비로소 그 말의 본질에 겨우 닿아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2018년 11월 4일
보슬보슬한 머리로 파마를 했다.
엄마 이뻐? 했더니 단호하게 아니,라고 한다.
머리가 볼록볼록하다며 과속방지턱 머리라고 한다.
과속방지턱 엄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면 안 돼?라고 울먹이는데 너무 사랑스러웠다. ㅠㅠ
2018년 12월의 어느 날(날짜가 안 적혀 있음)
- 그건 울 일이 아니니까 그쳐, 네가 잘못한 일이니까 울지 마.
야단칠 때 울어서 이렇게 말했더니 어느 날 따지듯 항의한다.
- 엄마한테 혼나니까 슬퍼서 우는 건데 그게 왜 울 일이 아니야? 내 머리엔 슬픔이 없어?
아들의 슬픔. 내 마음대로 아이의 감정을 재단했나 싶어 흠칫했다.
자유로운 아이로 키워야지. 하고 싶은 말은 가능한 다 표현할 수 있게 키워야지.
2019년 1월의 어느 날(또 날짜가 안 적혀 있음)
아기 때부터 발이나 손을 어딘가에 꼭 끼워 넣고 잠자는 버릇이 있더니 요즘은 발을 거의 무릎까지 내 어깨나 등에 밀어 넣고 잔다. 당연히 등이 너무 아프다.
- 엄마는 이제 등이 너무 아파. 네가 많이 커지고 발도 두꺼워지고 다리가 길어져서 엄마가 아파
라고 말하며 손만 꼭 잡고 자자고 했더니 또 운다.
-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맨날 못하게 해. 화장대 위에도 못 올라가게 하고.
- 이제는 네가 많이 커져서 화장대 위에 올라가면 화장대가 부서져
잠시 조용해서 자는 가 했더니 이런다.
- 엄마, 내가 크니까 침대방에서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 엄마 등에 발도 못 넣고 화장대에서 못 올라가고......
속상한 일이 아니고 중요한 일(뭔가 신기한 느낌의 일)이라는 표현을 써줘서 고맙고 기특한 6살 아들.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궁금하다, 아들의 머릿속. 중요한 일이라니.
그래, 그래, 아들.
엄마도 지금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네가 더 자라기 전에 좀 더 너를 많이 안아주고 네 눈을 들여다보며 어리고 맑은 네 미소와 목소리를 많이 담아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네가 어느덧 6살이 되다니. 잘 자라고 있어서 참 고마워. 엄마가 너만큼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게 참 미안해.
2019년 2월의 어느 날(왜 날짜를 안 적어뒀을까)
아들은 아직도 빙봉이 사라질 때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 엄마 끝나면 불러.
- 끝났어? 엄마, 눈물이 날 것 같아.
빙봉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하며 라일라가 다시 빙봉을 생각해 내면 빙봉이 나타날 수 있는지 물어본다.
내가 샐리를 잊으면 샐리도 저렇게 되는 거야? 하며 울먹인다.
아직 작고 여린 저 마음을 내가 잘 만져줘야 할 텐데. 아들의 감정을 잘 지켜주고 싶다.
* 빙봉: 인사이드아웃에 나오는 상상 속의 친구 / 샐리: 아들의 애착인형이자 생애 첫 친구
2019년 10월 10일
유치원에서 금연교육을 받고 온 아들이 일산화탄소를 아느냐 묻는다.
- 엄마, 담배를 피우면 일산화탄소가 나와서 죽는대.
그러다가 다시 가만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또 말한다.
- 엄마, 아빠는 그걸 몰라서 담배를 피나보다. 아빠한테 말해주자. 근데, 엄마! 그렇게 되면 아빠는 좀 좋을 수도 있겠다.
무슨 말인지 몰라 가만히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빠는 좀 좋을 수도 있다니?!
- 엄마, 아빠는 하늘나라에 가면 아빠의 아빠를 만나잖아. 그래서 담배 피우는 거 아닐까?
남편한테 카톡으로 아이를 씻기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주니 일하다 말고 'ㅠㅠ' 하고 있다.
'네가 담배 피우는 건 싫대. 아빠는 좋겠지만 우리는 아빠가 없으면 안 되잖아,라고 하는데?'
카톡을 보내주니 천사 같다며 계속 'ㅠㅠ' 이런다. (담배 끊을 생각은 없고 그저 울기만 한다. -_-;;)
우리 천사는 여전히 생각이 맑고 이쁘다. 저 맑고 여린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단단해지는 법을 알려주는 엄마가 되어야 할 텐데.
2020년 5월 31일
아들은 식탁에서 주스를 마시고 있고 나는 빨래 때문에 세탁기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부른다.
- 엄마,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 이뻐. 엄마는 참 예뻐.
뜬금없이 저런 소릴 하곤 다시 주스를 마시며 초콜릿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엄마를 사랑해 줘서 진짜, 진짜 고마워 ㅠㅠ
이렇게 쓰다가, 충치 치료를 끝으로 일기가 끝이 나버린다.
한참이나 잊고 있던 시간들이었다. 읽으면서 그 시절의 다짐들을 떠올렸다. 꼭 기억해야지, 했던 시간들이었고 언제까지나 지켜줘야지, 하던 다짐들이었다. 왜 이렇게 쉽게 잊고 있었을까. 잊혀진 순간들과 미뤘던 약속들 때문에 아들이 상처받진 않았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후회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계속 눈물이 났다.
언제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저 막막하다. 과연 될 수 있긴 한 걸까.
좋은 사람도 되기 힘들고 그게 뭔지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좋은 엄마는 또 대체 뭐란 말인가. 언제나 조금씩 커져만 가는 물음표를 끌어안은 채 한발 늦은 후회로 그저 울고만 있진 않을까 두려워서 다시 쓰기를 결심했다.
아들은 잊는다 해도 나는 엄마니까, 내가 엄마라서, 꼭 기억해야만 하는 순간들과 다짐들이 있을 테다.
말에는 저마다의 자그마한 힘이 있고 그 말에 대한 기록이 쌓이면 언젠가는 큰 힘이 될 테니, 그 힘을 믿고 이번엔 끝까지 기록하길 다짐한다. 정말이지, 우선은 그것부터 시작해 본다. 언젠가는 이 시간들이 어떤 구원이 되어주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사실 구원 같은 건 너무 거창하고 그저 이 시간들에 대한 기록들이 우리를 이어주는 끈정도만 되어 준다 해도 충분하다 여겨본다.
기억 속의 시간들을 떠올려 오늘의 햇살 위로 투영하며 지금의 너와 나를 온 맘으로 끌어안는 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구원일테다, 생각해 보며 다시 노트를 펼쳐 쓰기 시작한다. 아무튼 나는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