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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Sep 19. 2023

보라카이에서 가성비 찾기

보라카이에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한 후로 매일같이 보라카이를 검색하고 있는데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검색창에 함께 입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가성비'다.

가성비 숙소, 가성비 맛집, 가성비 마사지, 가성비 호핑, 가성비 투어...(어서 오세요, 가성비 지옥입니다)


처음 항공권을 구매했을 때 3인 가족 직항 항공권이 백만 원대였던 터라, 마닐라 경유까지 각오했음에도 170~180만 원까지 하는 항공권 구매는 여전히 망설여진다. 코로나 이전과 바로 얼마 전까지도 보라카이 왕복 항공권은 1인 30만 원 초반이 무난한 가격인 듯했다. 지켜보다가 조금이라도 가격이 떨어졌을 때 구매해야지 싶은데 좀처럼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아 살짝 불안하다. 혹시 오늘이 제일 싼 가격 아닐까? 그냥 178만 원에 결제해야 하나. 아니지, 보라카이를 이 가격에 다녀오면 호구 아닐까? 방금 전까지도 내내 이런 고민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경유를 해서 가다 보니 이동 자체에 시간이 많이 걸려 실제로 보라카이에 머무는 날을 늘여야 했다. 여행 경비에 숙박비가 더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빠듯한 예산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검색창이 온통 가성비로 뒤범벅되고 있다. 보라카이를 검색하고 있는 건지 가성비를 검색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사람마다 '가성비'에 대한 기준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싶어 혼자 좌절하기도 한다. 가난뱅이 주제에 무슨 보라카이야, 이럴 거면 그냥 가지 말까. 하루에도 몇 번씩 되돌이표가 붙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후 슨배는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하얀 마이너스 통장(사실, 내 마통은 하얗지도 않다. 이미 땡겨 쓴...;;; 돈으로 얼룩덜룩하다)과 바람의 속도로 그어질 수 있는 신용카드만 쥔 채 어디라도 가보려 하니 이렇게나 고민이 많아지나 보다.


보라카이 가성비 숙소를 검색할 때 단연코 많이 추천되는 곳은 라임호텔, 페어웨이즈 앤 블루워터, 오션클럽, 휴호텔 등이다. 한적하고 수영장이 이뻤으면 좋겠다는 기준으로 고르다 보니 '결국' 페어웨이즈 앤 블루워터로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다. 이곳엔 투숙객들만 이용 가능한 전용 비치가 있고 커다란 수영장이 6개나 있다.(코로나 이후로 3~4개만 운영하고 있다지만.) 깨끗하고 조용한 전용 비치와 하늘을 품은 수영장 사진을 보니 아들이 꽤나 좋아할 것 같긴 한데, 그럼에도 앞의 문장에서 사용한 부사 '결국'에 긍정의 의미만이 담겨 있지 않는 이유는 이곳의 시설이 좀 오래되었고 화이트 비치에서 다소 떨어져 있으며 너무 커서 리조트 내의 수영장을 가려고 해도 셔틀을 타야 한다는 불편함 때문이다. 수영장에서 놀다가 깜빡하고 숙소에 두고 온 책이 읽고 싶어질 때면 셔틀버스를 기다렸다가 잡아 타고 다녀와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냥 어딜 가든 다 셔틀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아무래도 이런 점은 좀 많이 불편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1박에 8~10만 원 정도의 숙박비가 너무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이 정도 가격이면 3~4일 더 머무를 수 있겠다 싶어 화면 속의 풍경과 이용 후기를 살펴보며 치열한 가성비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항공권을 구매한  일정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 결국  숙소 중에서 가성비가 좋은 룸을 골라 최저가로 예매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페어웨이즈 앤 블루워터 수영장 사진

사실 가성비와의 진짜 싸움은 여행을 다녀온 후가 될 것 같아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다녀오면 생활비 잔고는 더욱 치열해져 있을 테고, 아마도 나는 일상의 모든 분야에서 가성비와의 맹렬한 전투를 치르게 되겠지.


이번 생에 이런 하늘을 만날 수 있다고? 여기가 내가 사는 별이라고?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이라곤 도무지 믿기 힘들었던 노을 질 무렵의 보라카이 사진에 끌려 충동적으로 여행을 결심했다. 여행에서 찾고 싶은 것은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픈 낭만과 결코 이번 생 같지가 않은 환상이었는데, 그 낭만과 환상을 위해 가성비를 찾아 헤매야 하고 엑셀 파일 위에 여행경비를 정리하며 끝도 없이 계산기를 두드려야만 한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현실을 살아가는 이상 주머니 사정을 외면한 낭만과 환상이 존재할 순 없는 노릇이겠지. 스스로에게 변명이라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도 전투적인 자세로 검색창에 가성비를 두드려 본다. 아직도 찾아내야 할 가성비가 많다. 각종 여행 용품, 물놀이 용품, 비치웨어 등 갈길이 머나멀다.


보라카이 바다 저 너머에서 가성비가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음하하하!


어디 계속해 보시지. 누가 질 줄 알고.


# 사진 출처 페어웨이즈 앤 블루워터 네이버 예약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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